당신의 건물 · 5천만원, 누구에게 남기겠습니까? [권영규의 나눔이 일상인 사회]

남겨진 유산, 이어진 나눔 삶의 끝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희망

2025-07-21     권영규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회장
권영규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회장은 ‘나눔이 일상화된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나눔이 일상인 사회’에서는 현장에서 경험한 동화 같은 진짜 따뜻한 이야기들을 전하며,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디자인해 가는 길을 독자와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

당신이 떠난 뒤, 어떤 흔적이 남길 바라는가?

재산, 명예, 기억… 혹은 누군가의 삶을 바꿀 기회? 삶의 끝자락에서 특별한 나눔이 시작됐다. 바로 누군가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바꾼 유산의 이야기다.

2004년, 대한적십자사 봉사원 고(故) 문복남 씨는 남편과 함께 평생을 아껴 마련한 3층 건물을 기부했다. 이 고귀한 뜻을 바탕으로 ‘형호안나장학회’가 설립됐다. 형호안나장학회라는 이름에는 부부가 평생 지켜온 절제와 헌신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후 지난 20년간, 271명의 청소년에게 총 4억 1천만 원이 넘는 희망이 전해졌다. 이 장학금은 단발성 지급이 아니다. 졸업까지 책임지는 ‘학업 보증’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형편이 꿈을 막지 않도록.” 장학회의 이 신념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대대적인 홍보 없이, 장학회는 늘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청소년들의 곁을 지켜왔다.

이러한 조용한 나눔은 또 다른 한 사람에게도 이어졌다. 바로 고(故) 이춘조 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40년 넘게 소년원에서 퇴소한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했다. 무료 숙식 제공은 물론, 기술 교육과 학업 지원, 취업 알선까지. 그녀는 100여 명의 청소년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품어 안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은 유언에 따라 대한적십자사에 5천만 원을 기부했다. 이 기금은 현재 청소년 복지시설 개선과 운영에 소중히 사용되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떠났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청소년들의 삶 속에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나눔은 생전에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아니 그 이후에도 누군가의 내일을 바꿀 수 있다. 진정한 나눔은 삶의 끝에서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그들의 고귀한 결단은 수십 년을 이어지는 희망이 됐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진정한 ‘유산’ 아닐까? 실제로, 이들의 삶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 당신의 마지막 선택이, 누군가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故 이춘조 고문이 적십자사 서울지사에 청소년을 위한 기부금 5천만 원을 전달했다. 왼쪽부터 적십자회원유공장 최고명예장을 전달받은 손녀 김지윤 씨, 딸 김유숙 씨, 권영규 적십자사 서울지사 회장.

※ 권영규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회장은 1980년부터 서울시 공직을 시작으로 부시장직, 스포츠·국제협력·자원봉사 분야의 행정, KOICA 자문과 저술 활동까지, 다양한 공공 영역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디자인해 온 행정가 출신이다. 2023년부터는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에서 ‘나눔이 일상화된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나눔이 일상인 사회’는 기부·나눔·자원봉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현장에서 경험한 동화 같은 진짜 따뜻한 이야기들을 통해,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디자인해 가는 길을 독자와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