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직접 챙긴다” 재계 총수들 ‘글로벌 외교전’ 본격화
삼성 이재용, 美 선 밸리 콘퍼런스 참석 LG그룹 경영진 일본行…전장 세일즈 속도 SK 최태원, 이달 말 구글캠프 참석 가능성도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잇따라 ‘조용한’ 글로벌 외교전에 나서고 있다. LG그룹 경영진은 일본을 찾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미국으로 향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이달 말 열리는 ‘구글캠프’ 참석 가능성이 거론된다.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네트워크 확장과 신사업 기회 발굴을 위한 전략적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경영 행보 본격화…사업 전략 논의할까
11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미국 아이다호주 선 밸리 리조트에서 진행되는 ‘선 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9일부터 13일(현지시간)까지 진행되는 행사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컴퍼니가 1983년부터 매년 7월 초 주최해온 국제 비즈니스 회의로, 정식 명칭은 ‘앨런&코 콘퍼런스’다. 애플과 아마존, 메타 등 대형 IT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하며 ‘억만장자의 여름캠프’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행사에는 아마존의 앤디 제시 CEO와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력인 반도체 사업 부진이 이어지면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가 필요한 가운데, 이 회장의 글로벌 행보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단순한 네트워킹을 넘어 삼성의 글로벌 경영 전략과 향후 협력 방향을 엿볼 수 있는 행보로 해석된다. 최근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연이어 진행한 가운데, 핵심 분야에서 미국 내 기술 기업들과 네트워크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상무 시절인 2002년부터 매년 행사에 참석해 왔다. 올해 행사에도 국내 재계 인사 중 유일하게 초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는 선 밸리에서 쿡 CEO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2017년 국정농단 재판 당시에는 “선밸리 콘퍼런스는 1년 중 가장 바쁘고 신경 쓰는 출장”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달 말 열리는 ‘구글캠프’에도 4년 연속 초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구글 캠프에 처음 참석한 최태원 회장도 올해 2년 연속 초청돼 참석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LG그룹 경영진 ‘원팀 세일즈’ 출격
LG그룹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인 전장 사업 강화를 위해 주요 경영진이 총출동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LG그룹은 계열사 경영진이 함께 일본 혼다 본사를 방문, 비공개 ‘테크데이’를 개최했다. 배터리부터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 등 전장 기술력을 직접 선보이기 위한 전략적 행보다.
현장에는 권봉석 LG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해 조주완 LG전자 CEO,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문혁수 LG이노텍 대표 등도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LG그룹은 그동안 핵심 고객사를 직접 찾아가 기술력을 알리는 테크데이를 진행해 왔다. 지난해 3월에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본사에서 첫 테크데이를 열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일본 도요타 본사를 찾은 바 있다.
당시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회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는 주로 자동차 산업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며 LG그룹과의 협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LG 경영진의 전장 사업 ‘원팀 세일즈’는 구광모 회장의 장기 전략 기조와 맞닿아 있다. 구 회장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배터리와 같은 산업은 미래의 국가 핵심 산업이자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반드시 성장시킬 것”이라며 신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해 LG의 대표적인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2분기 실적 부진 예상…신시장 개척 집중
재계 총수들의 잇단 해외 출장은 장기화되는 경기 침체와 관세 등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실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특히 주요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장기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8일 삼성전자는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며 매출 74조원, 영업이익 4조6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09%, 55.94%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낸드 플래시 시장 불황,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누적 적자와 더불어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E 12단 제품이 엔비디아 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점이 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LG전자도 올해 2분기 매출액 20조7400억원, 영업이익 6391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 46.6% 줄었다. 가전 사업 경쟁 심화와 대미 보편관세 등의 영향이 실적에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실적 부진이 가시화되면서 총수들은 직접 해외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기술 협력과 공급망 확보, 신시장 개척 등 실질적 성과 모색에 집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총수들이 직접 움직이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며 “현지 파트너들과의 신뢰 형성이 결국 미래 사업 확장의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