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큐레이션] "웨이브-티빙을 다시 위대하게"

합병 전략 드라이브 걸린다 "시장 흔들 수 있을까?" "더 지켜봐야"

2025-07-07     최진홍 기자

웨이브와 티빙이 합병을 선언한 가운데 양사의 시너지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결합 요금제를 출시한 데 이어 콘텐츠 교류를 늘리기 시작하자 월간활성이용자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일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 증가폭이 가장 컸던 OTT는 4위 웨이브며, 티빙과 결합요금제를 선보인 지난달 전월 대비 이용자는 17만6017명이 늘어 430만1300명을 기록했다. 2위 티빙은 전월 대비 12만4368명이 늘어난 728만3168명으로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아직은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합병의 사례를 고려하면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넷플릭스

"나랑 오징어 게임 할래? 자신있어?"
한국 OTT 시장은 넷플릭스의 강력한 지배력 아래 놓여 있다. 넷플릭스는 단순한 시장 선두 주자를 넘어 시장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헤게모니'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넷플릭스의 월간활성이용자는 1449만9273명에 달한다.

그 영향력은 단순히 이용자 수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연간 6,000억 원에서 8,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한국 콘텐츠 투자금은 국내 콘텐츠 제작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유의 지식재산권(IP) 통제 전략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와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넷플릭스는 제작 단계에서 모든 IP 권리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한국 제작사들이 세계적인 히트작을 만들어내더라도 장기적인 수익은 대부분 넷플릭스에 귀속되고, 제작사는 정해진 마진만을 얻게 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넷플릭스가 만든 이 구조는 한국 콘텐츠 시장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글로벌 파이프 라인을 통해 한국 콘텐츠가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약탈적인 미디어 플랫폼 권력을 해체하고 말 그대로 콘텐츠로 승부할 수 있는 극적인 무대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국내 미디어 생태계가 재투자에 필요한 막대한 성공 보수를 확보하지 못하게 만들어 생태계의 선순환이 막히는 현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한국 OTT 시장은 단순히 콘텐츠의 질로 경쟁하는 시장이 아니라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장기간의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지를 겨루는 '자본 시장'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결국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제작비를 상승시키는 '군비 경쟁'이 터진 이유다.

국내 OTT에 대한 구조적인 불리함도 컸다. 실제로 국내 OTT는 전통 방송사(매출의 0.75~1.25%)보다 높은 음악 저작권료율(1.5~3%)을 부담해야 하며,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해 제작비 세액공제 혜택도 미미한 수준이다. 

당연히 이러한 제도적 환경은 국내 사업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로 인한 막대한 콘텐츠 불법 유통 피해 와 가계 통신비 인하를 명분으로 한 정부의 구독료 인상 자제 압박 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OTT 사업자들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뭉쳐야 산다"
국내 OTT 시장은 '1강 다중(一强多中)' 구도로 요약된다. 거칠게 말하면 '넷플릭스와 아이들'이다. 

다만 '아이들'의 구도는 의외로 복잡하다. 티빙이 KBO 프로야구 독점 중계와 같은 전략적 콘텐츠와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온 반면 웨이브는 MAU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티빙과 쿠팡플레이에 모두 뒤처지는 등 하락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쿠팡플레이의 부상은 주목할 만하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유사하게 쿠팡의 거대한 이커머스 및 물류 생태계를 활용한 '락인(lock-in)' 전략을 구사하며, 파급력 있는 스포츠 중계권과 독점 예능 콘텐츠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서 성공적인 OTT 전략이 단순히 콘텐츠 라이브러리만으로는 부족하며, 결국 성공을 위해서는 강력한 모기업 생태계나 고도로 차별화된 변칙적 틈새시장을 필요로 함을 시사한다. 디즈니플러스와 왓챠가 사실상 경쟁 레이스에서 탈락한 상태에서 넷플릭스 독주 및 쿠팡플레이의 변칙 플레이를 바라보며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시사한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가뜩이나 수익성도 나빠지는 상황에서 "뭉쳐야 산다"는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다.

구체적으로 티빙은 성장을 위한 자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웨이브는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아가 두 회사는 각자의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합병이라는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다만 본질적으로 이 합병은 방어적 통합의 성격이 강하다. 두 플랫폼의 이용자 기반을 합쳐 외형상으로나마 넷플릭스와 견줄 수 있는 '메가 K-OTT'를 탄생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기 때문이다. 여기에 CJ ENM의 트렌디한 예능·드라마와 지상파 방송사들의 방대한 아카이브 등 파편화된 K-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높이고, 콘텐츠 제작사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공격적인 목표가 따라오는 구조다.

사진=웨이브

"함정을 피해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10일 티빙·웨이브 임원겸임 방식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 상태다. 그러나 난관은 여전히 험난하다는 평가다. 특히 공정위가 수직적(콘텐츠 공급) 및 혼합적(통신사 결합상품) 측면에서는 심각한 경쟁 제한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으나 한동안 재정적으로 제약된 상태로 움직여야 하는 족쇄를 채운 것은 의미심장하다.

각사의 현행 요금제 유지, 통합 서비스 출시 시 현행 요금제와 유사한 수준의 신규 요금제 출시 및 유지, 기존 가입자는 현행 요금제로 서비스 계속 이용 보장, 해지 후 1개월 내 재가입 요청 시 동일 조건으로 허용 등을 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티빙의 2대 주주인 KT스튜디오지니(지분 13.54%)가 반대하는 것도 뇌관이다. 강력한 '메가 K-OTT'의 등장은 KT의 핵심 사업인 지니TV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데다 주주가치 희석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KT는 자사 OTT '시즌'을 티빙에 흡수시키면서 약 2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으나 현재 합병 논의에서 거론되는 티빙의 가치는 그 절반 수준이다. 이는 KT에게 엄청난 손실이다. 여기에 자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의 수가 줄어드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급하는 중소 제작사(CP)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 문제도 있다. 티빙이 최근 콘텐츠 사용료 정산 방식을 기존의 '전체 가입자 풀' 기준에서 '해당 콘텐츠 시청 가입자' 기준으로 변경하면서 특히 부각되는 논란이다. 

웨이브가 2019년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2024년 11월까지의 IPO(기업공개)를 조건으로 발행했던 2,0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문제도 있다. IPO 약속이 무산되면서 채무 상환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두고 "웨이브의 빚은 웨이브가 해결해야 한다"는 티빙 측 주주들과 "합병 회사가 승계해야 한다"는 웨이브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바 있다. 이 문제는 2024년 11월 CJ ENM과 SK스퀘어의 전략적 투자금으로 해당 CB를 상환하면서 일단락됐으나 최종 합병 비율 산정 단계에서 또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웨이브와 티빙이 합쳐진다고 당장 넷플릭스를 압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 가입자가 하나의 합병 법인에 모두 집중될 것이라 믿는 것도 어설프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 가입자 중복 등을 따지면 '1+1=2' '1+1=10'이 아니라 '1+1=0.7'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

사진=갈무리

다만 가장 큰 함정은 역시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 합병의 교훈'이다.

WBD는 2023년 5월, 기존의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 플러스를 통합한 '맥스'를 선보인 바 있다. '왕좌의 게임', '석세션' 등 HBO의 명작 드라마부터 디스커버리의 인기 리얼리티 쇼까지 방대한 콘텐츠를 한곳에 모아 "모든 사람을 위한 단 하나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표방했다.

당시 데이비드 자슬라브 WBD 최고경영자(CEO)는 "두 서비스의 결합은 모든 연령대의 시청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맥스'의 실험은 실패했다. HBO가 가진 '프리미엄 콘텐츠' 이미지가 디스커버리의 대중적이고 방대한 라이브러리와 섞이면서 브랜드 정체성이 희석되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HBO 콘텐츠를 찾기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결국 WBD는 '양'보다는 '질'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HBO 맥스'를 다시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정했다. 흑역사다.

웨이브-티빙 합병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실제로 WBD 합병은 AT&T가 부채가 많은 타임 워너를 분사시키면서 시작되었고, 그 결과 탄생한 WBD 역시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 역시 막대한 재정 손실과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어적 결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WBD가 HBO를 버린 장면도 젊은 층 중심의 티빙 브랜드와 전통적 지상파 기반의 웨이브 브랜드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브랜드 희석 리스크를 연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WBD는 세금 감면을 위해 콘텐츠를 삭제하고 거의 완성된 프로젝트를 취소하는 등 '질'과 '양' 사이에서 전략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복잡한 주주들로 구성된 웨이브-티빙 합병 법인도 피할 수 없는 리스크로 볼 수 있다.

사진=갈무리

"그래도 승부 걸어볼만한 게임"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은 방어적 목표를 가지고 있고 격변하는 시장 상황에 내밀려 추진된 뉘앙스가 강하다. 태생부터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방어와 수성 그 이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당장 업계에서는 콘텐츠 독점 공급에 대한 법적 구속력 있는 장기 계약을 확보한 후 강력한 권한을 가진 단일 통합 책임자를 임명하고, 이용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여기에 요금 인상이 동결된 상황에서 광고 기반 요금제(AVOD)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프리미엄 라이브 이벤트, 굿즈 판매,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탐색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단순 이용자 수를 넘어 광고를 포함한 '가입자당 평균 수익(ARPU)'과 플랫폼의 충성도를 보여주는 '낮은 이탈률(Churn Rate)'을 핵심 성공 지표로 삼는 새로운 각도를 보여야 하며, 무엇보다 거버넌스 실패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여기에 정부가 합병 플랫폼 자체에 대한 지원을 넘어 독립 제작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승부 걸어볼만한 게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