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빵을 굽습니다” [권영규의 나눔이 일상인 사회]
3년째다. 세리정보기술 대표는 조끼를 입고 빵을 굽는다.
처음엔 혼자였다. 어느새 직원들이 하나둘 함께 조끼를 입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동호회가 생겼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빵을 굽는다. 자녀와 함께하는 직원들도 늘어났다.
세리정보기술은 금융정보시스템 전문 IT기업이다. 평일에는 차가운 데이터를 다루고, 매달 주말에는 따뜻한 빵을 만든다. 그 빵들은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이들이 봉사 조끼를 입고 참여하는 활동은 대한적십자사의 ‘빵나눔 봉사’다.
“우리가 환원하는 건 매출이 아니라 마음이다.” 대표의 말은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은 말보다 깊은 울림을 주었고, 솔선수범은 직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 결과 조직 분위기가 달라졌다. 봉사는 조직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나눔 활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고, 브랜드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고객사와 관계도 깊어지고, 신규 프로젝트 수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필자가 적십자사 서울지사에 와서 깨달은 게 있다. 봉사는 의외로 용기가 필요하다. 빵을 만드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잘 빚어질까, 잘 구워질까. 그렇게 처음에는 누구나 망설인다. 그런데 리더가 움직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조직 전체에 자연스럽게 퍼진다. 실제로, 빵 굽는 봉사 현장에서는 서툰 손길이지만 함께 웃고 격려하며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나눔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누군가의 ‘구움’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이 구운 고소한 나눔의 향이 조직을 채우고, 다시 사회로 퍼진다. 그게 영향력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영향력을 지닌 주체다. 그 영향력은 크기보다 방향과 꾸준함에서 나온다. 세리정보기술을 비롯한 20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나눔의 향을 굽고 있다.
오늘, 나눔으로 당신의 마음을 정성껏 구워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손길이 오늘 누군가의 하루를 채우는 따뜻한 빵이 될 수 있다.
※ 권영규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회장은 1980년부터 서울시 공직을 시작으로 부시장직, 스포츠·국제협력·자원봉사 분야의 행정, KOICA 자문과 저술 활동까지, 다양한 공공 영역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디자인해 온 행정가 출신이다. 2023년부터는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에서 ‘나눔이 일상화된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나눔이 일상인 사회’는 기부·나눔·자원봉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현장에서 경험한 동화 같은 진짜 따뜻한 이야기들을 통해,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디자인해 가는 길을 독자와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