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SKT 사태, 뼈아픈 책임은 기본… 국가 경제 위한 ‘질서 있는 수습’ 절실하다

명확한 책임소재와 생산적 사고방식

2025-07-04     최진홍 기자

정부 민관합동조사단이 4일 발표한 SK텔레콤(SKT)의 대규모 유심 정보 유출 사태의 전말은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선 국내 1위 통신사업자의 총체적 기강 해이와 도덕적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준다. 

2696만 건에 달하는 가입자 식별번호(IMSI)를 포함한 핵심 정보가 유출되는 동안, 회사는 가장 기본적인 보안 조치조차 외면했다. 유심 복제의 ‘마스터키’나 다름없는 인증키(Ki) 값을 암호화하지 않은 채 방치한 것은 경쟁사들이 일찌감치 암호화 조치를 적용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기술적 문제 이전에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증명한다.

과거 악성코드 발견 사실을 인지하고도 관계 기관에 신고하지 않아 법적 의무를 위반하고 정부의 자료 보전 명령마저 무시한 채 증거가 될 서버를 임의로 조치한 행태는 국민의 신뢰를 배신한 행위 그 자체다. 

일개 기업의 실수를 넘어, 국가 기간 통신망을 위탁받은 사업자로서의 공적 책임감을 망각한 처사다. 따라서 정부 조사단이 이번 사태를 명백한 ‘회사의 귀책 사유’로 규정하고, 약관에 따라 이용자들이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지극히 온당하며 법리적으로도 타당하다. 회사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의 무게추가 소비자에게 단 1g이라도 옮겨져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다만 이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숙고와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모든 피해 이용자에게 ‘위약금 면제’라는 단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따져봐야 한다. 이는 분노한 여론에 부응하는 가장 명쾌한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자칫 기업의 존립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로 추정되는 위약금 손실은 단순히 회사의 이익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급격한 현금 유동성 위기는 당장 진행 중인 6G,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미래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를 급격히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SKT는 한 해 수조 원의 설비 투자를 집행하고 수많은 협력사와 IT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동력 중 하나다. 이러한 기업이 한순간에 재무적 위기에 내몰려 휘청거린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당장의 투자 중단은 국가 전체의 ICT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기술 종속과 성장 잠재력 상실이라는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결국 통신비 안정, 서비스 품질 향상 등 소비자의 편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SKT를 벌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국내 통신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전가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을 넘어선 ‘질서 있는 수습’이다. SKT의 책임은 그 무게에 걸맞게 단호히 물어야 한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강력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경영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며,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수준의 고강도 정보보호 개선책을 명령하고 그 이행 과정을 수년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회사가 쓰러지지 않고 재기하여 책임을 이행하고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숨구멍도 열어주어야 한다. 위약금 면제 대신 모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통신비 인하, 장기적인 피해보상 기금 마련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방안을 모색하는 지혜가 아쉽다. 기업에 대한 처벌의 최종 목표는 ‘파괴’가 아닌 ‘개선과 재건’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