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면 족해" – 사라지는 Serial CEO

2025-07-02     황유진 기자

Serial CEO는 여러 기업을 거쳐 CEO를 역임하는 전문 경영인을 뜻한다.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가 강한 한국 기업 환경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전문 경영인 제도가 발달한 시장에서는 익숙한 용어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CEO 유형은 점점 줄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최근 몇 년간 격화된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 속에서 Serial CEO는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전했다.
 

Serial CEO (연속 CEO)

2025년 6월 11일, 파리 비바 테크놀로지 컨퍼런스에 참석한 루카 데 메오. 현재 르노 CEO인 그는 9월 15일 케어링(Kering) 그룹 CEO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다양한 기업에서 CEO를 맡아온 그는 대표적인 ‘Serial CEO’로 꼽힌다. 사진=연합 뉴스.

자동차 회사 르노(Renault)에서 프랑스 명품 그룹 케어링(Kering)으로 자리를 옮기는 루카 데 메오.
구찌와 생로랑을 포함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책임지게 된 그에겐 한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바로 Serial CEO. 이번이 무려 여섯 번째 최고경영자 자리다.

한때 다양한 업종을 넘나들며 전이 가능한 경영 역량(transferable managerial skills)과 새로운 시각(fresh perspective)으로 주목받던 이런 유형의 CEO는, 이제 기술 산업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Outside of the tech sector, the serial CEO is rare.
(기술 산업을 제외하면 반복 CEO는 드문 존재가 됐다.)

글로벌 서치펌 러셀 레이놀즈 어소시에이츠(Russell Reynolds Associates)에 따르면,
지난해 13개 글로벌 주요 주가지수에 속한 기업에서 임명된 신임 CEO 220명 중 85%인 187명이 생애 첫 CEO직을 맡은 이들이었다.
초임 CEO의 비중은 2018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으며, 경험 많은 CEO의 신규 임명은 이제 소수 사례에 불과하다.

One and done (한 번이면 끝)

더 주목할 점은, CEO직을 한 번 맡은 뒤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4년 퇴임한 CEO 중 3분의 1은 극심한 압박, 끊임없는 감시, 실수에 대한 낮은 관용도와 과도한 책임 부담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The path to retiring with your reputation intact is narrow and for many leaders, once is enough.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길은 좁고, 많은 리더에게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

 

The margin for error is shrinking (실수에 대한 여유가 줄어들고 있다)

CEO 직책은 본래도 부담이 큰 자리였지만, 지금은 ‘모든 일을, 모든 곳에서, 동시에’ 해내야 하는 존재가 됐다.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글로벌 경기 침체, 기후 위기까지 — 지난 몇 년간의 혼란은 CEO에게 끊임없는 위기 대응을 요구해왔다.
여기에 AI의 부상, 행동주의 주주의 압박, 그리고 사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감성까지 더해지며 리더십의 무게는 더욱 커졌다.

The margin for error is shrinking.
(실수할 수 있는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Step-up CEO (승진형 CEO)의 부상

기업들은 외부에서 경험 있는 CEO를 영입하기보다, 내부 인재를 키워 승진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step-up CEO다.

운영총괄(COO), 재무책임자(CFO), 해외 법인장 등이 내부 승진을 통해 최고경영자에 오르는 방식이다.
유니레버가 전 CFO였던 페르난도 페르난데스를 CEO로 임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Businesses have sought to strengthen their talent pipelines so they have a wider choice of internal candidates to promote.
(기업들은 내부 인재 풀을 강화해 승진 가능한 후보군을 넓히고 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한 사람들

2025년 6월 10일, 라스베이거스 스타벅스 리더십 행사에서 발언 중인 브라이언 니콜 CEO. 치폴레와 타코벨의 CEO를 거쳐 스타벅스를 이끄는 Serial CEO 중 한 명이다. 사진=연합 뉴스.

12년간 익스피디아를 이끈 뒤 우버 CEO가 된 다라 코스로샤히, 치폴레와 타코벨을 거쳐 스타벅스 CEO에 오른 브라이언 니콜처럼, 여전히 최고경영자 자리에 다시 도전하는 리더들도 있다.
FT는 일부 경영 자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대형 상장기업의 CEO 자리는 특히 중소기업 CEO들에게 여전히 도전할 만한 목표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For ambitious, driven people, this is still as attractive, If you want an easy life, this is not for you.”
(야망 있고 추진력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자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편한 인생을 원한다면, 이 일은 당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