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증시, 4년 질주 제동
고평가·AI 소외·실적 둔화…2025년 상반기 외국인 순매도 90억달러
인도 증시의 질주가 한풀 꺾이고 있다. 미국발 관세 충격으로 글로벌 시장이 흔들렸던 지난 4월, 인도는 가장 먼저 낙폭을 회복하며 ‘회피처’로 주목받았지만, 상반기 성적은 아시아 평균에도 못 미쳤다. 실적 모멘텀 둔화, 고평가 부담, 인공지능(AI) 테마 소외 등이 맞물리며 외국인 자금의 이탈 조짐도 뚜렷해지고 있다.
MSCI 인도지수(MSCI India Index)는 올해 상반기 6.6% 상승에 그쳤으며, 이는 MSCI 아시아태평양지수 대비 약 8%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반면, 홍콩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 주식은 AI 수혜 기대와 신규 상장(IPO) 활황에 힘입어 약 20% 급등했다. 블룸버그는 “인도 증시는 4년간 이어진 상승 랠리 이후 피로감과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고평가 리스크, 투자 매력도 낮아져
현재 인도 증시의 가장 큰 약점은 과도한 밸류에이션이다. MSCI 인도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6.5배로, 최근 5년 평균인 21.5배를 크게 웃돈다. 이는 글로벌 신흥국 지수인 MSCI 신흥시장지수(14.4배)는 물론, 선진국 중심의 MSCI 월드지수(22.5배)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기업 실적 전망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도 기업들의 이익 증가율은 한국, 대만 등 역내 경쟁국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평가 상태에서 실적 모멘텀도 약해진 상황이라는 의미이다.
스위스 GAM 인베스트먼트의 펀드매니저 지안 시 코르테시는 “인도의 장기 성장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현재는 역사적 평균보다도 밸류에이션 부담이 더 크다”며 투자 비중 축소 배경을 설명했다.
글로벌 테마 소외, AI 없는 시장
〈MSCI 인도 vs 아시아태평양 지수 추이 (2025년 상반기, USD 기준)〉
글로벌 증시는 현재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홍콩과 미국에서는 반도체, 클라우드, AI 소프트웨어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인도는 이 흐름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인도 주요 상장사들은 금융, 소비, 인프라 업종이 중심이다. 기술 테마에 대한 노출도가 낮아, 글로벌 자금이 쏠리는 ‘핫 테마’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MSCI 인도지수에서 정보통신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9.89%에 불과하다. 이는 MSCI 아시아태평양지수(일본제외) 비중(22.31%)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런던 소재 자산운용사 카르미냐크(Carmignac)의 신흥시장 펀드매니저 아몰 고가테는 “2025년은 인도보다 중국이 더 매력적인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중 무역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중국 기업의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인도에 대한 투자 유인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이탈 가속…채권·환율도 부진
글로벌 자금 흐름은 이미 방향을 틀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2025년 들어 인도 주식을 약 90억달러 순매도했다. 이 흐름이 이어질 경우, 1999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순유출이 예상된다.
채권시장에서도 이탈이 일어났다. 4월 이후 외국인은 인도 국채(지수 편입 기준)에서 34억달러를 빼냈다. 주식과 채권 모두에서 외국인 수급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통화도 예외는 아니다. 2분기 들어 루피화는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드문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환율 방어력이 약하다는 점이 자금 유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장기 성장 기대 여전…‘조정은 기회’ 시각도
단기 조정과 고평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도를 장기 투자처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1년간 인도 증시는 신흥국 및 글로벌 시장 대비 수익률이 낮지만, 3년 이상 중장기 수익률에서는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의 안주희 CIO는 “조정 국면은 오히려 매수 기회”라며 “장기적으로는 인도 시장의 체력과 구조적 성장성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요 경제권으로, 내수 중심 구조 덕분에 외부 충격에 비교적 강한 편이다. MSCI의 분석에 따르면, 인도는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밸류에이션 지표상 고평가된 상태지만, 위험 대비 수익률에서는 다른 신흥국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