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머니' 지켜라... 보험업계, 초고령사회 대응 본격화 논의

치매 고령자 800만명 넘본다… 보험업계 자산관리 역할 주목

2025-06-27     박수아 기자

"한국도 이제는 치매를 관리와 부담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삼께 살아가는 '공생'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류재광 일본 간다외국어대학교 준교수는 26일 서울 종로구 소재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초고령화 사회, 치매와 보험의 역할' 한·일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하며, 치매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과 보험업계의 보다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생명보험협회, RMI 보험경영연구소, 보험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행사로,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보험사의 치매 리스크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제는 '치매 대중화' 시대...치매는 '부담' 아닌 '공생' 되어야" 

류재광 일본 간다외국어대학 교수가 '일본 치매환자 현황 및 치매정책 동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수아 기자

세미나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류 교수는 '일본 치매환자 현황 및 정책 동향'을 주제로, 일본이 '치매 대중화' 시대에 접어든  현황과 이에 대응한 정책 변화를 설명했다.

현재 일본은 2024년 기준 6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가 362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9.3%를 차지하고 있다. 80세 이상 인구만 해도 1290만 명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 경기도 인구 (약 1381만 명)와 비슷한 수치다.

자료=통계청, 보건복지부, 류재광 일본 간다외국어대학 교수 발표 자료 캡쳐

이 중 치매 고령자 수는 치매 환자 471만 명과 경도인지장애 환자 564만 명을 포함해 총 1035만 명으로, 요양원 및 고령자용 돌봄주택(약 240만 명), 그룹홈(돌봄주택 및 치매 환자 전용 입주시설, 21만 명)에 거주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사회와 자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류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치매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정책 기반을 마련해왔다. 2000년 '공적 개호보험법'을 통해 법적 틀을 갖추고, 2004년에는 치매의 명칭을 '인지증'으로 변경해 사회적 인식 개선을 시도했다. 2005년부터는 '인지증 서포터' 양성 사업을 통해 일반 시민들을 교육하고, 치매 고령자와 가족을 일상에서 도울 수 있는 지역 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18년에는 정책 추진 주체를 내각부로 격상시켜 범정부 차원의 정책 조정 체계를 구축 및 내각부에 '인지증 관계부처 각료회의'를 설치해 본격적인 치매 정책을 추진하고, 지난해에는 치매 고령자의 존엄성과 자립을 보장하는 '공생사회 실현을 위한 인지증기본법'을 제정했다. 

류 교수는 이를 두고 "일본 정부가 치매를 단순 질환이 아닌 사회적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하려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라며 "한국 치매 정책 역시 정책 패러다임을 기존의 '부담과 관리' 중심에서 '공생'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치매 당사자 및 가족의 의견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수렴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치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주무부서를 보건복지부에서 국무총리실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보험업계 또한 "보험 설계사와 임직원을 치매 파트너즈로 양성하고, 치매 전문 요양보호사를 육성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치매 친화적 사회를 만들이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신탁까지...日 치매머니 운용 전략에 주목해야"

김명중 일본 닛세이기초연구소 상석연구원이 '일본 지자체 및 보험회사의 치매대응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수아 기자

두 번째 발표자인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상석연구원은 '일본 지자체 및 보험회사의 치매 대응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일본이 지역 중심의 치매 대응 체계를 구축해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5400여 개의 지역포괄지원센터와 1620만 명 규모의 치매서포터 양성 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자체들도 적극적으로 치매 대응에 나서고 있다. 고베시는 치매 진단을 받은 시민에게 최대 2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손해배상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매 환자가 일으킨 사고로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는 최대 3000만엔 까지 급부금을 지급하고 있다. 

보험업계도 치매 단계에 따라 보험금을 차등 지급하는 치매보험, 개호보험 등 다양한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경도치매 진단 시 일부 보험금이, 중증 치매 진단 시 전액 보험금이 지급된다. 개호보험 및 특약 가입률은 2012년 14.2%에서 2024년 20.1%로, 치매보험 가입률도 2021년 6.6%에서 2024년 7.6%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이와 함께 고령자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에서는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가족신탁과 톤틴연금 같은 금융 상품이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일본의 60세 이상 고령층이 일본 전체 금융자산의 약 60%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절반은 현금과 예금 형태"라며 "이러한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족신탁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톤틴연금은 연금 개시 전 사망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면 적립액보다 적은 금액을 지급받지만, 생존기간이 길어 계약을 오래 유지하면 수령액이 늘어나는 구조다. 김 연구원은 "일본 보험사들도 톤틴형 연금을 포함해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끝으로, "치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고, 치매 고령자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 치매 서포터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며 "보험회사 등 민간 주체들이 치매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치매 자산 154조...보험업계, 신탁시장 새 역할 찾아야"

류건식 RMI 보험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이 '한국 치매신탁시장과 보험회사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사진=박수아 기자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류건식 RMI 보험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 치매신탁시장과 보험회사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2025년까지 치매 고령자 수가 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이들이 보유한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는 154조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만큼, 치매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대 건강금융센터, RMI보험경영연구소 류건식 연구위원 발표자료 캡쳐

류 연구위원은 "보험사의 신탁업 겸영이 허용돼 현재 7개 보험사가 시장에 진입해 있지만, 명시적인 치매신탁 상품을 운용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신탁업무 위탁 금지 등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보험사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신탁 수탁고 비중을 살펴보면, 은행(47%), 부동산신탁사(31%), 증권사(20%)에 비해 보험사는 2%에 그치는 상황이다. 

그는 또 "치매신탁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늘고 있음에도, 관련 입법 부재와 시장에 적합한 상품 부족으로 신탁시장 활성화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부분의 보험사는 퇴직연금 중심의 금전신탁 상품에 머물고 있으며, 실질적인 치매 자산 보호 기능을 갖춤 상품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진=RMI건강보험연구소 류건식 연구위원 발표자료 캡쳐

류 연구위원은 보험회사가 단순한 보장 제공자 역할을 넘어, 치매 예방 및 관리 서비스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치매 리스크 관리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치매교육 프로그램 도입  ▲치매보험과 연계된 신탁 상품 개발 ▲보험설계사 중심의 신탁 전문가 양성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공적 장기요양보험과 민간 치매신탁을 연계하는 공사 협력 모델을 구축해, 보다 실질적인 치매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경도 인지장애 등 치매 전단계에 해당하는 이들을  위한 조기 진입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 연구위원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보험회사는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치매신탁을 신성장 사업 포트폴리오로 설정해야 한다"며, "치매신탁을 통해 치매 자산의 체계적 관리를 지원하고,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 더 이상 가족만의 몫 아냐...보험의 공적 역할 논의

참석자들이 패널토론을 진행하는 모습.(왼쪽부터)보험연구원 김규동 연구위원, 보건사회연구원 이선희 부연구위원, 교보생명 종합자산관리팀 김계완 팀장, 경희대학교 이봉주 명예교수, 한양대학교 제철웅 교수, 국립군산대학교 지광운 교수, 금융감독원 황기현팀장. 사진=박수아 기자

패널토론에서는 치매 고령자 수 증가와 이에 따른 지출 확대 속, 보험업계의 실질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김계완 교보생명 종합자산관리팀 팀장은 "현재 70대 이상 독거노인은 자녀가 많아 부양이 용이했지만, 이후 세대는 그렇지 않다"며 "치매에 걸려 보험금을 수령한다고 해도 이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현물급부 시스템'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치매 환자와 가족을 위한 돌봄은 국가와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공생'구조여야 하며, 보험업계 또한 이 역할을 해내야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제철운 한양대학교 교수는 "보험업계는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서, 치매 고령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실무에서 여전히 보호자가 치매 환자 대신 동의하는 관행이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치매 정책은 치매환자 개인보다는 가족 중심의 시각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치매에 걸린 부모의 재산을 미리 분배하려 하거나, 치매 어르신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의사결정 지원 체계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또 "보험업계가 규제를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 규제를 우회해 창의적인 모델을 만들어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기업이 가진 신뢰성을 바탕으로 공공기관이나 비영리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사회적 기여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이 나서면 오힐 규제는 따라 바뀌게 되고, 치매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제도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세미나 '초고령사회, 치매와 보험의 역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박수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