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밈(meme) 따라잡기

TINA에서 TACO까지, 밈으로 읽는 시장의 심리

2025-06-18     황유진 기자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시장에는 경제 이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흐름이 많다. 월가에서는 이런 현상을 TINA나 RINO같은 ‘밈(meme)’으로 풀어내곤 한다. 투자자의 심리와 시장의 방향성, 때로는 정치인의 말 한마디까지, 네 글자짜리 약어에 압축되곤 한다. 2025년엔 ‘TACO’가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고, 2023년엔 ‘RINO’와 ‘TINA vs TARA’가 시장 해석의 열쇳말처럼 회자됐다.
 

TINA: There Is No Alternative (대안은 없다)

TINA는 “결국 투자할 곳은 주식뿐”이라는 인식을 압축한 표현이다. 원래는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며 사용한 정치 구호였지만, 이후 월가에서는 주식 투자 논리로 재해석됐다.

2010년대 초, 초저금리와 양적완화(QE)로 채권 등 안전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지자,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으로 몰렸다. 이 같은 흐름은 “TINA”라는 한 단어로 요약됐다.


“Investors kept buying tech stocks under the TINA logic.”
(투자자들은 TINA 논리에 따라 기술주를 계속 매수했다.)

2022~2023년에도 이 논리는 여전히 유효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이어졌지만, 시장은 인공지능과 기술주 중심으로 상승세를 지속했고, 투자자들은 “대안이 없기에 산다”는 TINA 인식 아래 매수세를 유지해다.

TARA: There Are Reasonable Alternatives (합리적인 대안이 있다)

2023년 하반기, 연준(Fed) 금리가 5%를 넘어서자 더 이상 TINA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국면이 펼쳐졌다. 고금리 환경에서 예금과 채권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은 주식 외에도 ‘쓸 만한’ 대안이 많다며 TARA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TINA 논리의 반격”이라 표현했다.

“TARA promotes the opposite – there are better assets to invest in compared to stocks.”
(TARA는 TINA와 반대다 — 주식보다 나은 자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이 흐름을 TAPAS(There Are Plenty of Assets to Sell)라는 약어로 확장하기도 했다. 주식만 고집할 필요 없이, 다양한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재 분배 할 수 있다는 의미다.

RINO: Recession In Name Only (이름뿐인 침체)

RINO는 2023년 주식시장의 ‘이해할 수 없는 강세’를 설명하는 데 쓰인 용어다. 연준의 고금리 정책, 은행 시스템 불안, 경기 침체 경고가 이어졌지만,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견조했고 S&P 500은 24% 이상, 나스닥은 28% 넘게 상승했다. 이런 상황을 골드만삭스는 ‘이름뿐인 침체’, RINO라고 불렀다.

“This has led to a new acronym (courtesy of Goldman): the ‘Recession In Name Only’ (R.I.N.O).”
(이에 따라 골드만삭스는 새로운 약어를 만들었다: 이름뿐인 침체, RINO.)

경기 침체 우려와 달리 고용은 탄탄했고, 소비도 꺾이지 않았다. 이런 괴리를 설명하는 데 RINO만큼 직관적인 표현은 없었다.

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선다)

S&P500 지수의 ‘TACO 패턴’을 보여주는 최근 흐름.

2025년, 월가에 새로운 밈이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발표하면 시장은 급락하고, 며칠 뒤 유예나 철회 발표가 나오면 다시 반등하는 패턴이 반복되자, 이를 ‘타코(TACO)’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주가 흐름을 선 그래프로 그리면 반달형 타코처럼 보인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TACO,” for Trump Always Chickens Out. It refers to the tendency of markets to tumble when the president announces tariffs only to rebound quickly after he pauses them.
(TACO는 ‘트럼프는 늘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관세를 발표하면 시장이 급락하고, 철회하면 곧 반등하는 패턴을 말한다.)

이 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도 화제가 됐다.

한 기자가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TACO라는 말이 돈다”고 하며 입장을 묻자, 그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가장 못된 질문(the nastiest question)”이라며 쏘아붙였다.

스스로를 강단 있는 리더, 협상의 달인으로 포장해온 그에게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표현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그의 반복적인 후퇴를 투자 전략으로 받아들였고, 그 흐름에 ‘TACO 트레이드’라는 이름까지 붙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