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비바테크 2025, 생각하는 AI와 퀀텀에 홀리다
기술 특이점 분석
프랑스 파리에서 11일부터 14일(현지시간)까지 이어진 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 '비바 테크놀로지 2025'는 인류가 기술적 특이점을 향해 얼마나 빠르게 다가서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현장이었다.
올해 행사는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의 시대가 본격적인 산업 현실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한편,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양자 컴퓨팅' 역시 머나먼 미래가 아닌, 손에 잡히는 변곡점에 도달했음을 선언했다. 나아가 미국과 중국 중심의 ICT 패권에 도전장을 던진 유럽의 저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길은 엔비디아로
올해 비바테크의 담론을 지배한 단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였다. 그의 기조연설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를 넘어, 기술의 미래 경로 자체를 재정의하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는 AI의 진화가 이제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과업을 실행하는 ‘에이전틱 AI’의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는 정보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닌 가치를 생산하는 'AI 팩토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전은 AI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황 CEO는 "양자 컴퓨팅이 변곡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단언하며, 불과 몇 달 전 "상용화까지 20년은 걸릴 것"이라던 자신의 비관론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는 엔비디아의 하이브리드 양자-고전 컴퓨팅 플랫폼 '쿠다 큐(Cuda Q)'를 언급하며, 양자 컴퓨터와 기존 슈퍼컴퓨터를 결합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프랑스의 양자 스타트업 파스칼(Pasqal)과의 만남으로 구체화되며, 엔비디아가 AI를 넘어 차세대 컴퓨팅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겠다는 야심을 분명히 드러낸 대목이다.
이러한 선언은 유럽의 심장부에서 펼쳐지는 정교한 '기술 외교' 전략과 맞물렸다. 황 CEO는 프랑스의 대표 AI 스타트업 미스트랄 AI와 자사의 최신 칩 '블랙웰' 18,000개로 구동되는 클라우드 플랫폼 구축 계획을 밝혔고, "유럽에 세계 최초의 산업용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2년 내 유럽의 AI 컴퓨팅 용량을 10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유럽이 AI 경제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하기를 갈망하는 심리를 정확히 파고든 것으로, 엔비디아를 단순한 공급업체가 아닌 유럽의 '디지털 주권'을 실현해 줄 필수불가결한 동반자로 각인시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혹독한 현실 속 빛나는 혁신
혁신을 향한 뜨거운 열망과 달리,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실은 냉혹했다. '2025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GSER 2025)'는 전 세계 스타트업 가치가 5년 만에 처음으로 31% 급감했음을 알리며, 거품이 꺼진 시장의 '대전환기'를 공식화했다. 자금은 명확한 수익 모델과 독보적 기술력을 가진 소수의 기업으로만 쏠렸고,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생존의 기로에 섰다.
다만 혹독한 환경은 역설적으로 진짜 혁신을 가려내는 시험대가 되었다. 올해 비바테크 어워드 수상 기업들은 막연한 구호가 아닌,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올해의 혁신상'을 받은 프랑스의 시피롱(Chipiron)은 양자 센서 기술을 활용, 기존 대비 10분의 1 가격의 휴대용 MRI를 개발해 의료 접근성의 민주화를 이끌었다.
'변화를 위한 기술상'의 제네시스(Genesis)는 토양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지속가능한 농업의 과학적 기준을 제시했으며, '아프리카테크 어워드'의 이집트 레메디(REME-D)는 저온 유통이 필요 없는 진단 키트로 글로벌 보건 불평등 해소의 길을 열었다. 이들은 기술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한편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서 비바테크의 중요성을 인식한 한국 역시 중소벤처기업부 주도하에 역대급 규모의 K-스타트업관을 꾸려 조직적인 공세를 펼쳤다. AI 기반 패션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는 '코디미'부터 스마트 병원 솔루션 '피플앤드테크놀러지', 로봇 의수 '만드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혁신 기술들은 유럽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