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불가' 숙박, 싼 가격 뒤에 숨은 플랫폼의 생존 전략인가 소비자 선택권의 확장인가

"가격 할인 대가, 자발적 선택" vs "소비자 권익 침해 우려"

2025-06-02     최진홍 기자

숙박 예약 플랫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불불가' 조건. 소비자에게는 더 저렴한 가격이라는 달콤한 유혹이지만, 유사시에는 꼼짝없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 환불불가 조항의 정당성을 둘러싼 법적, 사회적 논쟁이 제주에서 다시 한번 불붙었다. 과연 이 조항은 플랫폼과 숙박업소의 합리적인 경영 전략의 일환일까, 아니면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불공정 행위일까. 그 의미와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주목된다.

지난달 30일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2025 한국재산법학회·한국소비자법학회 제1회 공동 판례연구회’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논쟁의 중심에는 지난해 9월 글로벌 숙박예약 플랫폼 부킹닷컴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이 자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소비자에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킨다'며 부킹닷컴에 환불불가 조항 사용금지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이번 판례연구회는 이 판결의 의미와 파장을 되짚는 자리였다.

사진=회사 제공

이날 토론자로 나선 오서영 놀유니버스(NOL) 법무실장은 환불불가 조항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오 실장은 “환불불가 조항은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된 불이익이 아닌, 가격 할인의 대가로서 제공된 옵션으로 명확한 고지 및 선택 과정을 거친 자발적 수락이다”라며 “이는 계약자유의 실현이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OTA(온라인여행플랫폼) 사업자는 중개자일 뿐, 실제 판매 조건 설정 권한은 개별 숙박업소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각 숙박업소에 개별적으로 시정명령을 부과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정이 OTA 사업자에 대한 시정명령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숙박서비스는 단기임대차계약으로 전자상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설령 통신판매로 보더라도 “시간이 지나 다시 판매하기 곤란할 정도로 재화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에 해당해 청약철회권이 제한된다는 논리를 폈다. 오 실장은 “소비자도 환불가능과 환불불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더욱 더 낮은 가격으로 예약을 확정할 수 있다는 명확한 경제적 이익이 존재한다”며 “환불불가 옵션은 부당한 불이익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 차별화와 자율적 선택 보장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오 실장의 주장은 가격 경쟁이 치열한 OTA 시장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환불불가 상품은 플랫폼과 숙박업소에게는 공실 위험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수익을 확보하는 수단이 된다. 소비자에게는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타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동일한 호텔 방이라도 환불 가능 조건보다 환불 불가 조건이 10~20% 저렴하게 제공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특히 가격에 민감한 젊은층이나 여행 계획이 확고한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 경쟁이 소비자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 발생 시 과도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가령,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가족의 사고로 여행을 취소해야 할 경우, 환불불가 조항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큰 상실감과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반면, 고형석 한국해양대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 문제를 제기했다. 고 교수는 “온라인 숙박플랫폼에서 체결된 숙박시설 이용계약은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에 해당해야 하는데, 통신판매는 재화 등의 판매를 의미하며 임대차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따르면 환불불가 약관은 무효임과 동시에 불공정한 약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의 논리적 모순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국 '환불불가' 조항은 플랫폼과 숙박업소에게는 운영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을,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번 논의는 이러한 양면성 속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갈 것인지, 그리고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한편, 이날 열린 공동 판례연구회는 한국재산법학회, 한국소비자법학회, 한국소비자원, 제주대학교 법과정책연구원, 고려대 ICR센터가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OTA 환불불가 상품 이슈 외에도 항공 마일리지, 확률형 아이템 등 최근 소비자법 분야의 뜨거운 감자들을 두루 논의하며 디지털 경제 시대에 더욱 복잡해지는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계약 관계에서 소비자 권익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앞으로 관련 법제 정비와 함께 사업자들의 자율적인 소비자 친화 정책 마련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