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가 틔운 법인 '코인 투자' 꽃 봉오리… 시장 건전성·혁신 마중물 될까

정부 로드맵 1단계 시동, 월드비전 가상자산 매도 스타트…기관 참여 '물꼬' 글로벌 경쟁 속 韓 기업 '역차별' 해소 기대…회계·세무 등 산적한 과제는 '족쇄' STO·DeFi 등 미래 금융 가능성 주목…'투기' 넘어 '혁신' 동력 삼아야

2025-06-01     최진홍 기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오랜 숙원이었던 법인 투자 제한의 빗장이 마침내 풀리기 시작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가 1일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의 가상자산 매도를 성공적으로 지원하며 국내 비영리법인의 가상자산 현금화 첫 공식 사례를 기록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지난 2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로드맵' 1단계 조치의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개인 투자자 중심의 시장에서 벗어나 기관 참여를 통한 시장 성숙과 산업 혁신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두나무는 월드비전이 기부금으로 수취한 0.55 이더리움(ETH, 당시 약 198만 원)을 업비트 원화마켓을 통해 성공적으로 매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밝혔다. 해당 가상자산은 지난 3월 두나무와 월드비전이 진행한 '미래세대 치얼업(Cheer Up!) 캠페인'을 통해 모금된 것으로, 월드비전은 케이뱅크 법인계좌를 업비트 계정에 연결해 거래를 완료했다. 

이번 사례는 단순히 한 건의 거래를 넘어, 그간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직접 참여가 제도권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진=업비트

글로벌 기업은 뛰는데… 발 묶였던 국내 법인, '기회의 문' 열리나
글로벌 시장에서 가상자산은 이미 기업의 중요한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와 같이 비트코인을 주요 재무 준비 자산으로 공격적으로 편입하는 기업부터, 테슬라(Tesla)처럼 한때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사례, 넥슨(Nexon)과 같이 구매력 유지 및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매입한 기업까지 그 동기와 방식은 다양하다. 

이들은 인플레이션 헤지, 전통 자산과의 낮은 상관관계를 통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국경 간 결제의 효율성 증대, 나아가 Web3, NFT, 메타버스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위한 핵심 도구로 가상자산을 활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정부의 투기 과열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은행들이 법인 명의의 가상자산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국내 법인들은 시장에 직접 참여해 매매하거나 사업을 통해 취득한 가상자산을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기업의 '역차별' 문제로 이어졌고, 유망한 블록체인 기업들이 사업 기반을 해외로 옮기거나 해외 자회사를 통해 투자를 집행하는 '자본 및 기술 유출'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기업 해외 현지 법인이 보유한 가상자산은 약 6조 5000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의 단계적 법인 시장 참여 허용 로드맵은 국내 기업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다. 특히 1단계로 법 집행기관의 범죄수익 환수 및 비영리법인의 기부금 현금화, 가상자산 거래소의 운영비 목적 매도를 허용한 것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상징적인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두나무 관계자는 "건전한 가상자산 기부 문화 확립을 넘어, 향후 로드맵 2단계인 상장법인 및 전문투자자 등록 법인의 시장 참여 지원도 차질 없이 준비하여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밋빛 미래' 위한 선결 조건은?

이제 시장의 관심은 이제 2단계로 예고된 '전문투자자 자격을 갖춘 법인(금융회사 제외)'의 투자·재무 목적 거래 허용(2025년 하반기 이후 검토)과, 이후 관련 법제(가상자산 사업자 영업행위 규제,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등 포함 2단계 가상자산법) 및 외국환거래법, 세제 등이 정비되는 것을 전제로 한 3단계 '일반 법인 거래 전면 허용'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법인 투자의 문이 점진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의 불확실성'과 '제도의 미비'기 때문이다.

먼저 회계 처리의 복잡성이다. 금융당국이 2023년 12월 '가상자산 회계처리 감독지침' 및 '가상자산 주석공시 모범사례'를 발표하며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가상자산의 다양한 유형(유틸리티, 증권형, 하이브리드 등)과 변동성을 고려할 때 실제 기업 현장에서의 적용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특히 미국 GAAP이 특정 가상자산에 대해 공정가치 평가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반면, 국내 기준은 아직 보수적인 측면이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정합성 문제도 제기된다. 기업들은 보유 가상자산의 성격 규정, 가치 평가, 손상 인식, 공시 등 전 과정에서 신중한 판단과 투명한 정보 공개 부담을 안게 된다.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세무 문제 역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 먼저 법인의 가상자산 매매차익은 법인세법에 따라 과세되고 있지만 개인의 가상자산 양도소득세 시행이 2027년으로 추가 유예된 상황과 맞물려 과세 형평성 논란이 존재한다. 여기에 가상자산의 종류별 부가가치세 과세 여부, 에어드랍이나 스테이킹 보상 등에 대한 과세 기준 등 구체적인 세무 처리 지침이 부족해 역시 기업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OECD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암호자산 보고체계(CARF) 도입 등 국제적 과세 기준 변화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조달방지(CFT) 의무 준수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이 역시 그림자는 있다. FATF의 트래블룰 이행을 위한 시스템 구축과 운영은 물론, 고객확인의무(KYC), 의심거래보고(STR) 등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안전한 거래 환경 조성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마지막으로 시장 변동성과 보안 위험은 가상자산 투자의 본질적인 리스크다.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기업 재무제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으며 거래소 해킹이나 개인키 분실 등 보안 사고는 막대한 자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마운트곡스, FTX 파산, 테라-루나 사태 등은 시장 전체의 신뢰를 뒤흔든 사건들로 기업들은 강력한 내부 통제와 보안 시스템, 신뢰할 수 있는 커스터디(수탁) 서비스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개인 투자자들엑는 비명이, 기업들에게 지옥 그 자체로 열리는 고속도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갈무리

한국은 준비됐나?

이러한 도전 과제에도 불구하고 법인 투자가 가져올 혁신의 잠재력은 크다. 특히 주목받는 분야는 증권형 토큰 발행(STO)과 탈중앙화 금융(DeFi)이다.

STO는 부동산, 미술품, 지식재산권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발행·유통하는 것으로 기업에게는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를, 투자자에게는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당장 금융위가 2023년 2월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하며 제도화의 첫발을 뗐지만, 관련 법안(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지연은 시장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법제화가 완료되고 다양한 기초자산에 대한 명확한 증권성 판단 기준, 투자자 보호 장치, 안정적인 유통 시장이 조성된다면, 국내 STO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DeFi 역시 기업 재무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잠재력을 지녔다. 중개기관 없이 예금, 대출, 자산 교환 등이 가능한 DeFi 프로토콜을 통해 기업은 전통 금융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운용하거나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 계약의 취약점으로 인한 해킹 위험, 규제 공백, 거래상대방 위험 등은 DeFi 활용의 큰 장애물이다. 나아가 기술적 안정성 확보와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 조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는 요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