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매트릭스] LG엔솔ㆍSK온ㆍ삼성SDI "격랑 속으로"
전기차 캐즘·중국 공세·공급망 불안 속 기술 초격차·다변화로 돌파구 모색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던 국내 2차전지 산업이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하며 중대 기로에 섰다. 전기차 수요가 일시적으로 주춤하는 ‘캐즘(Chasm)’ 현상과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 불안정한 원자재 공급망, 그리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글로벌 정책 변수들이 겹치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단기적인 수익성 악화와 정책 의존도 심화라는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차세대 기술 투자, 글로벌 생산 능력 확대, ESG 경영 강화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K배터리, 거센 도전 직면했다
최근 국내 배터리 3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당장 1분기 SNE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10.7%, 3위), SK온(4.7%, 4위), 삼성SDI(3.3%, 7위) 등 국내 3사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합산 점유율은 18.7%로, 전년 동기(23.2%) 대비 하락했다. 반면 중국의 CATL(38.3%)과 BYD(16.7%)는 각각 1, 2위를 굳건히 지키며 중국 기업 전체로는 67.5%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했다.
‘전기차 캐즘’ 현상도 국내 배터리 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배터리 수요 증가율도 둔화됐고, 이는 국내 기업들의 최근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374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이는 4577억원의 미국 IRA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이를 제외하면 830억원의 영업손실로 분석된다. 삼성SDI 역시 434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고객사 재고 조정과 계절적 비수기의 영향을 받았다. SK온은 심지어 299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변동성과 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 역시 불안 요소다. 리튬, 니켈 등 핵심 광물 가격은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과거 급등락을 반복하며 업계에 부담을 준 바 있다. 또한, 주요 광물의 정제 및 가공이 중국에 집중되어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IRA와 유럽연합(EU) 핵심원자재법(CRMA)은 국내 기업들에게 기회이자 도전으로 작용하는 중이다. 실제로 IRA의 AMPC는 미국 내 생산시설을 갖춘 국내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재정 혜택을 제공하지만,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은 중국산 원자재 및 부품 사용을 제한하며 공급망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CRMA 또한 EU 역내 원자재 생산 및 재활용 목표를 설정하고 특정국 의존도를 낮추도록 요구하고 있어, 유럽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게 공급망 다변화와 현지화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는 평가다.
"위기 극복 위한 생존 전략"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국내 배터리 3사는 각자의 강점과 전략을 바탕으로 위기 극복과 미래 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질적 성장’을 통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김동명 사장은 최근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 팽창보다는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파우치형과 원통형 배터리 모두에서 강점을 가진 LG에너지솔루션은 고에너지밀도 배터리 기술은 물론,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LFP 배터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첫 전기차용 LFP 수주에 성공했다.
차세대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 초기 생산도 앞두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단순 배터리 제조를 넘어 ESS, 도심항공교통(UAM) 등을 아우르는 ‘에너지 순환 사업’으로의 확장을 비전으로 제시했다는 평가다. 이를 위해 한국, 중국, 미국, 폴란드를 잇는 ‘글로벌 생산 4각 체제’를 구축하고 GM, 스텔란티스, 혼다 등 주요 OEM과의 합작투자(JV)를 확대하고 있다.
원자재 확보에 있어서도 호주, 캐나다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 중심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으며, 프랑스 데리쉬부르와 배터리 재활용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순환 경제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2050년 전체 가치사슬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ESG 경영에도 힘쓰고 있다.
삼성SDI는 ‘초격차 기술’을 바탕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고, 특히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추진 중이다.
전통적으로 각형 배터리의 안전성과 수익성을 강조해 온 삼성SDI는 최근 전기차 캐즘의 영향으로 실적 부진을 겪었으나, 약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미래 기술 투자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인 상태다.
주력인 각형 배터리 외에도 46 원통형 배터리 양산을 시작해 BMW 등에 공급할 예정이며, LFP 배터리 개발에도 착수했다.
특히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전고체 배터리(ASB)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유상증자 자금 중 상당 부분을 이 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다. ‘2030년 글로벌 Top Tier 회사’ 도약을 비전으로 미국(스텔란티스 및 GM과의 JV)과 헝가리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원자재는 에코프로비엠 등 국내 주요 소재 업체와의 장기 대규모 공급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수급 체계를 구축했으며, 재활용 전문기업 성일하이텍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재활용 금속 사용률을 2030년까지 26%로 높일 계획이다. 2050년 Net Zero 달성을 목표로 ESG 경영에도 매진하고 있다.
SK온은 공격적인 글로벌 확장 이후 최근 ‘숨 고르기’에 들어가며 수익성 개선을 통한 턴어라운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생산 능력을 확대해왔으나 지속적인 영업손실과 높은 부채 규모는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기업인 SK그룹 차원에서 ‘리밸런싱’ 전략을 통해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내실 경영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력인 고니켈 파우치형 배터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형 및 원통형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으며 15분 내 80% 충전이 가능한 급속 충전 기술, LFP 배터리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투자하고 있으며 미국 솔리드파워와 협력하고 있다. 포드, 현대자동차그룹과의 북미 JV를 중심으로 생산 거점을 확장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 닛산과도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고객 다변화에 성공했다. 원자재 확보는 IRA 규정에 맞춰 북미산 흑연, 호주·칠레산 리튬 등 FTA 체결국 중심으로 다변화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금속 재활용(BMR) 사업과 연계해 순환 경제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RE100 달성을 목표로 ESG 경영을 추진 중이다.
기회는 있나?
단기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장의 장기 성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전기차 캐즘’ 이후 시장 회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운영 효율성 극대화,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LFP, 고성능 제품 병행), 그리고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은 K-배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전력망 안정화 수요 증가, AI 열풍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 등으로 ESS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