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매트릭스] 고통의 터널 지나는 신학철의 LG화학 …'과학기업' 명운 건 대수술 통할까
석유화학 구조적 한계 직시, 뼈아픈 손실 털고 첨단소재·바이오에 승부수 재무부담 속 성장 투자 '딜레마'…선택과 집중·수익성 증명 시험대
LG화학이 근본적인 사업 체질 개선의 시험대에 올랐다. 전통적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의 구조적 침체가 현실화된 가운데 분리막 사업과 미국 생명과학 자회사 아베오 관련 대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하며 과거 투자의 그림자를 털어내는 한편 전지소재·친환경소재·혁신신약이라는 3대 신성장 동력에 기업의 미래를 거는 분위기다.
‘글로벌 Top 과학 기업’으로의 전환을 향한 고강도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 다만 생존과 미래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LG화학의 행보에 시장의 평가는 냉정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뼈아픈 성적표’…석유화학 구조조정, 속도와 깊이가 관건
2024년 LG화학의 실적표는 참담했다. 연결 매출 48조 9161억원, 영업이익 9168억원을 기록하며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연간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밑돈 것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지배주주 순손실도 6조 909억원에 달했다. 이는 단순한 업황 부진을 넘어 과거 투자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와 미래를 위한 사업구조 재편의 고통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분리막 사업에서 약 4000억원, 생명과학 자회사(아베오 관련)에서 발생한 손상차손은 업계에 상당한 충격이었다.
실적 악화의 진앙지는 석유화학 부문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며 2024년 1360억원의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LG화학이 NCC(나프타분해시설) 가동률 조정, 한계 사업 정리 등 비용 절감 노력과 함께 여수 NCC 2공장 매각 또는 분사 검토라는 고육지책까지 꺼내든 배경이다.
신학철 부회장이 "여러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만큼 사업 재편의 강도와 속도에 따라 향후 석유화학 부문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분석이다.
3대 신성장 동력,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 연다
LG화학은 현재의 위기를 '과학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규정하고, 3대 신성장 동력 육성에 전사적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2030년까지 이들 분야의 매출 비중(LG에너지솔루션 제외 자체 사업 기준)을 57%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선 정체성 변화의 의지를 담고 있다.
먼저 전지소재다. 2030년 매출 30조원을 목표로 하는 핵심 성장축이다.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력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 테네시 양극재 공장(약 4조원 투자) 등 글로벌 4각 생산 체제를 구축 중이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성장 둔화(Chasm)와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은 부담으로 여겨진다. 이에 LG화학은 고객 다변화(2030년 신규 고객 비중 40% 목표)와 함께 LFP(리튬·인산·철), 망간리치(Mn-Rich) 양극재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시장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수혜는 기회 요인이지만, 공급망 다변화 요구는 과제로 여겨진다. 가능성과 리스크가 혼재된 상황이다.
친환경 소재에도 힘주고 있다. 2030년 매출 8조원 목표로 재활용·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PFAS(과불화화합물) Free 소재, CO2 활용 플라스틱 등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중이다.
자체 브랜드 'LETZero'를 앞세워 규제 강화와 친환경 시장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회적 책임을 넘어 새로운 사업 기회로 연결하려는 전략과도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신약이다. 2023년 약 7072억원을 투입해 인수한 미국 아베오 파마슈티컬스가 믿을맨이다. 글로벌 신약 시장, 특히 미국 항암제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삼아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LG화학은 2030년까지 4개 이상의 혁신 신약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R&D 투자를 확대(2024년 생명과학 R&D 4330억원)하고 있다. 다만, 통풍 치료제 '티굴릭소스타트'의 일부 임상 중단 결정에서 보듯이 아베오 항암 파이프라인 중심의 R&D 포트폴리오 재편과 자원 배분 효율화는 지속적인 과제다.
리스크와 가능성의 사이
LG화학은 공격적인 전략으로 2025년을 차분히 풀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당장 대규모 신성장 동력 투자가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분기 말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97.7%에 달하며, LG화학 자체 CAPEX(설비투자)만 2025년 2조원 후반대, LG에너지솔루션 포함 시 약 13조원의 투자가 예상된다. 반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약 6조 5000억원으로 추정돼 외부 자금 조달 및 비핵심 자산 매각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투자 우선순위 정교화와 운영 효율성을 통한 현금흐름 관리, 그리고 재무 건전성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연결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LG에너지솔루션의 존재감도 양날의 검이다. IRA 세액공제 등 수혜로 실적에 기여하는 동시에, 전기차 시장 변동성에 따른 실적 출렁임은 LG화학 전체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기도 하다. 전기차 캐즘 등 변수가 너무 많다.
LG화학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아직 신중한 이유다. 실제로 다수 증권사가 2024년 실적 부진과 지속적인 시장 불확실성을 이유로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단기적인 실적 가시성이 낮고,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 주요 사업의 회복 속도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석유화학 부문의 성공적인 구조조정 완료, 3대 신성장 동력의 가시적인 성과 도출, 그리고 재무 건전성 회복이 향후 기업 가치 평가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ESG 경영 내재화와 리스크 관리 강화 역시 필수적이며 원만한 노사관계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