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자경단, 무디스 경고에 다시 움직일까?

무디스는 ‘뒷북’이라는 베센트 vs. 5%를 넘긴 30년물 국채

2025-05-20     황유진 기자
사진=연합뉴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Moody’s)가 5월 17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1917년 등급 평가를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자, S&P(2011년), 피치(2023년)에 이어 마지막 남은 'Aaa'마저 잃은 것이다. 미국은 이로써 모든 주요 신용평가사로부터 최고등급을 상실하게 됐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를 “후행적 지표(lagging indicator)”라고 일축하며, 강등의 책임은 바이든 행정부가 남긴 과도한 지출에 있다고 주장했다. 18일 NBC 인터뷰에서 그는 “무디스는 시장보다 한참 느리다. 모두가 신용평가사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며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등급 강등 발표 직후인 19일 아침,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5%를 돌파했고, 주가지수 선물도 하락세를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정정책에 반발하며 금리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라는 단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다시 등장하는 채권 자경단

AI 생성 이미지(ChatGPT). 채권 자경단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은 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훼손될 조짐이 보일 때, 국채를 매도해 금리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정책 당국에 압박을 가하는 투자자 집단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1980~90년대 미국에서 등장했으며, 특히 1990년대 초 클린턴 행정부가 복지 확대를 추진하던 시기 시장의 반발로 금리가 급등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당시 클린턴의 정치 고문이었던 제임스 카빌은 “다시 태어난다면 채권시장이 되고 싶다. 모두를 위협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채권시장이 정부의 ‘보스’처럼 행동했던 사례다.

블룸버그는 5월 19일자 칼럼에서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채권 자경단의 활동을 자극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에 대한 시장의 신뢰 부족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은 감세와 함께 복지 지출 삭감도 추진하고 있지만, 시장은 감세 규모에 비해 지출 축소가 제한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재정 수지 개선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기금리 상승을 유도하는 채권 자경단의 경고는 다시 강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대규모 감세법…확대되는 신뢰 리스크

트럼프 대통령은 신용등급 강등과 무관하게 감세안을 핵심 경제정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5월 18일 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이 미 하원 예산위원회를 간신히 통과했다. 이 법안은 2017년 감세를 영구화하는 동시에, 팁·초과근무수당·자동차 대출이자에 대한 세금 면제를 도입하고, 국방 및 국경안보 예산을 확대하는 반면, 메디케이드와 식료품 지원 예산은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향후 10년간 연방 부채를 3조~5조달러 늘릴 것으로 전망되는 이 법안은 시장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 우려는 채권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투자자 신뢰 약화로 연결되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무디스는 이번 등급 강등의 배경으로 “누적된 재정적자와 이자지급 부담이 커지고 있음에도 의회와 정부가 구조적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5% 근접…채권 자경단의 경고

출처: FRED.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

20일 현재 시장은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지만, 금리 상승 압력과 투자자들의 불신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은 5%에 근접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가지수 선물은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무디스의 강등이 국채 매도를 유도해 금리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채권 자경단’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정 수지 개선 없이 대규모 감세안과 같은 확장적 재정 기조가 이어질 경우, 미국의 조달 비용은 더 높고 변동성 큰 방향으로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