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필요없고 트럼프 매운맛 싫으면 지도 내놔라? [IT큐레이션]

구글의 도 넘은 집념 '공간 데이터 주권 우려 증폭' 구글 '지도 주권' 시험대 오른 대한민국… 고정밀 지도 반출 결정 앞두고 '후폭풍 예고' 정부, 오는 15일 세 번째 반출 요청 심사… 美 '비관세 장벽' 압박 속 고뇌 깊어져 국내 IT 생태계 "시장 종속 심화" 촉각… '공간 데이터' 경쟁력 좌우할 분수령

2025-05-06     최진홍 기자

대한민국의 '지도 주권'과 미래 산업 경쟁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세 번째로 요청하며 촉발된 논란이 오는 15일 정부 심사 회의를 기점으로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가 안보 및 데이터 유출 우려를 이유로 구글의 요청을 두 차례(2011년, 2016년) 모두 불허했지만, 이번에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통상 압박이 가세하면서 승인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는 자칫 국내 정보기술(IT) 생태계 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업계와 시민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 번째 요청, 달라진 환경… 가속화되는 美 압박
구글이 반출을 요청한 데이터는 1대5000 축척의 국내 고정밀 지도다. 

50m 거리가 지도상 1cm로 표현될 정도로 상세한 지형 정보와 건물, 도로망 등을 담고 있어 사실상 국가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데이터나 다름없다.

현재 구글은 공개된 1대2만5000 축척의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하고 있으며, 국내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제공받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국내 서버에 두고 활용하며 정교한 길찾기, 대중교통 정보, 배달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구글은 지도 서비스 개선을 명분으로 1대5000 데이터 반출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문제는 이번 요청이 미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비관세 장벽' 해소 압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수년째 한국의 위치 기반 데이터 수출 제한을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 즉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목하며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러한 통상 압력이 구글의 세 번째 반출 요청에 힘을 싣고 있으며, 일부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통상 환경 변화를 고려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하지만 안보 우려와 국내 산업 보호라는 해묵은 과제는 여전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정부가 과거 두 차례 구글의 지도 반출을 불허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안보'였다. 군사 시설, 국가 기반 시설 등 보안 관련 정보가 담긴 상세 지도가 해외 서버로 이전될 경우 정보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글 측은 이번에 주요 보안 시설을 가리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관리의 어려움, 그리고 데이터 자체가 해외에 나간다는 근본적인 위험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단 국가라는 한국의 특수한 안보 환경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더욱 민감한 문제로 만든다.

여기에 구글이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는 행태와 맞물린 '조세 회피' 논란은 지도 반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구글 코리아는 국내에 서버와 같은 물리적인 '고정 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실제로 작년 구글 코리아가 납부한 법인세는 네이버의 6.2%에 불과했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구글이 지난 20년간 회피한 법인세 규모가 수십조 원에 달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세금으로 국민이 구축한 공공 자산인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정작 한국에는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해외 기업이 가져가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경제학 교수는 "세금 부담 없이 공공 데이터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만약 정부가 반출을 승인한다면 이는 구글의 편법적인 조세 회피를 정부가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연합뉴스

미래 산업의 핵심 '공간 데이터' 경쟁력… 국내 IT 생태계 '초긴장'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그토록 집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공간 데이터'가 가지는 미래 산업적 가치 때문이다. 도로, 건물, 지형지물 등 정밀한 공간 데이터는 자율 주행, 스마트 시티, 디지털 트윈, 스마트 물류, 증강현실(AR)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이미 자회사 웨이모를 통해 자율 주행 택시 사업을 운영 중인 구글은 정밀 지도를 통해 방대한 공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인공지능(AI) 학습에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지도 기능 향상을 넘어, 미래 먹거리인 '공간 데이터 경제'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구글의 행보는 국내 IT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현재 국내 지도 시장은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이 주도하며 다양한 위치 기반 서비스와 연계돼 있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압도적인 플랫폼 영향력을 가진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손에 넣고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설 경우, 국내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지도 서비스를 통해 다른 서비스로 이용자를 유입시키는 핵심 채널로 활용하고 있어, 지도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는 플랫폼 전반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글 지도 데이터의 API 이용료가 국내 업체들에 비해 10배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진 점도 국내 산업계의 불안감을 키운다. 현재 국내 지도 서비스 기업들은 일정량까지 무료로 API를 제공하거나 초과분에 대해 건당 0.1원 수준의 저렴한 비용을 받고 있다. 반면 구글은 무료 제공량이 적고 초과 비용도 훨씬 높아, 만약 구글이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공간 데이터를 활용하는 국내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그리고 승차 호출, 배달 등 관련 서비스 산업 전반의 비용 부담이 급증하고 구글에 대한 종속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고뇌… 안보, 통상, 산업 균형점 찾아야
정부는 현재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각 부처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구글의 요청에 대한 최종 결론을 조율 중이다. 국방부와 국정원의 안보 우려, 산업통상자원부의 자율주행 산업 육성 필요성, 외교부의 통상 관계 고려 등 각 부처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정부의 고뇌는 깊어지고 있다.

결국 이번 구글의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안보와 주권, 그리고 미래 경제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한 정책 결정이다. 정부는 안보 위험을 최소화하고 국내 IT 생태계를 보호하면서도, 국제적인 통상 압력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어려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 환경 속에서 혁신을 이어가고,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된 공공 데이터가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의 신중하고도 면밀한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15일 열릴 심사 회의 결과와 향후 정부의 행보에 업계와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