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아람코 인사이트 [ER매트릭스]
탄화수소 넘어 미래 에너지로…글로벌 거인 사우디 아람코의 대전환과 한국 전략
세계 에너지 시장의 지배자이자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의 심장부인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가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다. 단순히 원유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석유 회사'를 넘어, 미래 에너지 지형을 선도하는 '종합 에너지 및 화학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적 움직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개혁 비전인 '비전 2030'과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가지 축 위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리튬, LNG, 석유화학, 신재생에너지, 수소 등 다양한 분야로의 적극적인 투자가 눈길을 끈다. 나아가 중국의 전기차(EV) 및 배터리 강자인 BYD와의 파트너십은 아람코가 미래 모빌리티 산업까지 그 시야를 넓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도 아람코의 글로벌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아람코 코리아의 활동과 에쓰-오일(S-Oil)과의 견고한 관계는 양국 에너지 협력의 미래를 더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중이라는 평가다. 여기에 ESG를 매개로 한 다양한 전략적 포인트도 눈길을 끈다.
글로벌 에너지 거인의 역사와 현재
사우디 아람코의 역사는 1933년 사우디 정부와 미국 석유 회사 간의 석유 탐사 협정에서 시작된다. 끈질긴 탐사 끝에 1938년 '번영의 우물'로 불리는 담맘 7호 유정에서 상업 생산이 시작되며 사우디와 아람코의 찬란한 미래가 열렸다.
1944년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Aramco)'로 사명이 변경된 후 텍사코, 엑손, 모빌 등 미국 주요 석유 회사들이 파트너로 참여하며 급격한 성장을 거듭했다. 1950년 세계 최장 파이프라인이었던 트랜스-아라비안 파이프라인(Tapline)도 완공, 1951년 세계 최대 해상 유전인 사파니야 발견 등 기록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1970년대부터 사우디 정부의 단계적인 국유화가 진행되어 1980년에 100% 국영 기업이 되었고, 1988년 공식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안 오일 컴퍼니(Saudi Aramco)'가 출범했다.
사우디 정부는 급진적 방식 대신 협력적인 단계적 국유화를 선택하며 운영 전문성과 기술 이전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국유화 이후 아람코는 단순 원유 생산자에서 벗어나 통합 석유 기업으로 변모했다. 미국 정유사 모티바의 단독 소유, 최첨단 연구개발센터 설립 등 가치 사슬 하류 부문으로 확장하며 기술 혁신에 투자했다.
2019년 사우디 증권거래소(Tadawul) 상장은 아람코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글로벌 자본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현재 아람코는 확고한 핵심 사업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다각화와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아람코는 2700억배럴 이상의 입증된 원유 매장량(세계 2위)과 세계 최대 규모의 일일 생산 능력을 자랑한다. 2024년 기준, 총 탄화수소 생산량은 일일 1240만 석유환산배럴(mmboed)에 달하며, 99.7%의 높은 공급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 세계 4위 기업으로 평가받는 아람코는 사우디 국내는 물론 한국 에쓰-오일 울산 공장과 같은 주요 해외 자산을 통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래 에너지로의 다각화
아람코의 미래는 '탄화수소 너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전 2030' 실현과 글로벌 에너지 전환 대응을 위해 리튬, LNG, 석유화학, 신재생에너지, 수소 등 다양한 에너지 및 소재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리튬 생산 분야 진출은 마덴(Ma'aden)과의 합작 투자를 통해 사우디 내 리튬 및 에너지 전환 광물 탐사·추출을 가속화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 수요에 대응하려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으며 LNG 시장에는 미드오션 에너지(MidOcean Energy) 지분 인수로 공식 진출하며 통합 글로벌 LNG 사업 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원유의 화학제품 전환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며 중국, 사우디 등지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래 에너지 및 저탄소 솔루션 개발을 위해 전담 조직인 신에너지 조직(New Energies Organization)을 설립하고 자본 지출의 약 10%를 이 분야에 배정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를 중심으로 삼아 2030년까지 12GW 신재생에너지 설비 구축, 연간 1100만 톤 블루 수소 및 암모니아 생산 , 주바일 탄소 포집·저장(CCS) 허브 구축 등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아람코 벤처스를 통한 벤처 캐피털 투자 역시 지속가능성 기술 확보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석유 및 가스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강점인 지하 탐사 지식, 대규모 프로젝트 관리 능력, 자본력 등을 활용하여 인접 및 미래 에너지 및 소재 분야로 신중하게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탄화수소로부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저탄소 미래에 대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시도이며, 사우디의 국가 경제 목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BYD와 만났다
아람코의 미래 에너지 전략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신에너지 자동차(NEV) 분야로의 접근 방식이다. 2025년 4월 아람코의 기술 자회사(SATC)가 중국의 BYD와 공동 개발 협약(JDA)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협력의 핵심은 양사의 R&D 역량을 결합하여 운송 기술의 효율성과 환경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배터리 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포함하는 NEV 전반에 걸쳐 에너지 효율 개선, 저탄소 연료 개발, 첨단 동력 전달 장치 연구 등 운송 효율을 최적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 파트너십은 사우디의 공격적인 EV 보급 목표(향후 5년 내 30% 점유율)와 BYD의 사우디 시장 진출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협력의 진정한 전략적 중요성은 아람코가 단순한 EV 제조업체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리더인 BYD로부터 전기화 및 배터리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전략적 영감을 얻는 데 있다. 이는 아람코 자체의 미래 연료 전략(e-fuel, 수소 등), 차량용 첨단 소재 및 화학제품 개발, 나아가 운송 부문의 미래 석유 수요 예측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심지어 아람코의 리튬 투자와도 시너지를 내며, 다각화된 아람코의 제품 포트폴리오에 대한 미래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결국 BYD와의 협력은 아람코가 미래 운송 기술을 이해하고 영향을 미침으로써 핵심 및 다각화 사업에 정보를 제공하려는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아람코, 한국의 좋은 친구
사우디 아람코에게 한국은 단순한 고객을 넘어선 핵심적인 전략적 파트너이다. 이러한 관계는 아람코 코리아의 활동과 에쓰-오일 합작 투자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2012년에 설립된 아람코 코리아는 서울에 위치하며 사우디 아람코를 대표하여 한국 내 사업을 총괄한다.
한국 파트너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촉진하고 한국 기업들이 사우디 아람코와의 협력 기회를 탐색하도록 돕는 '가교'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원유, LPG, LNG 등 에너지 제품의 마케팅 지원은 물론, 신규 사업 및 전략적 파트너십 모색, 한국 내 공급업체 관리 및 사우디 현지 부가가치 창출(iktva) 프로그램 지원, 품질 관리, 기술 서비스 제공, 그리고 핵심 합작 투자사인 에쓰-오일과의 비즈니스 활동 조정까지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아람코가 한국을 기술, 산업 역량, 전략적 파트너십의 중요한 원천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쓰-오일과의 관계는 아람코의 한국 내 발자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1976년 설립된 에쓰-오일은 울산 정유 공장을 기반으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정유/석유화학 회사로 성장했다. 아람코는 1990년대 에쓰-오일의 합작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2015년 한진그룹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며 단독 최대 주주가 되었다. 이는 아람코가 에쓰-오일의 전략적 방향성을 주도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다.
에쓰-오일은 일일 66만 9천 배럴의 정제 능력과 세계 최대 규모의 파라자일렌 생산 시설, 고도화된 잔사유 고도화 설비(RUC)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 등을 통해 아람코 원유의 안정적인 판매처이자 아시아 핵심 시장 내 정교한 정유·석유화학 복합단지 운영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샤힌(Shaheen) 프로젝트' 역시 에쓰-오일을 통한 추가적인 가치 사슬 통합 전략의 일환이다.
2015년 에쓰-오일 온산 공장 내 도로가 아람코 CEO의 이름을 따 'A. I. 나세르 로드'로 명명된 것은 양사 간의 깊고 상징적인 관계를 잘 보여준다. 에쓰-오일 투자는 아람코의 다운스트림 및 글로벌화 전략의 핵심 축이며, 아시아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와 석유화학 사업 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비즈니스 외 영역이다. 책임감 있는 기업 시민으로서 한국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다양한 ESG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사우디 아람코의 글로벌 지속가능성 약속을 한국 현지에서 실천하는 중요한 노력이다.
특히 사회(Social) 분야에서 아람코 코리아는 한국 사회의 필요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한 장학금 지원, 미래 세대 육성을 위한 과학 및 기술 교육 프로그램 후원, 소외 계층 및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지원, 문화 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한 후원 등이 대표적인 활동이다.
환경(Environmental) 보호에도 관심을 기울여 해변 정화 활동과 같은 환경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국내 환경 보호 프로젝트 및 단체를 지원하는 등 지역 환경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아람코 코리아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함께 이루어지며, 단순히 재정적 지원을 넘어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반영한다. 이러한 일련의 ESG 활동은 아람코가 한국에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추구하며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영역에서도 활발하다. 실제로 아람코는 자사가 완전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Scope 1 및 Scope 2)을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상태다. 2035년까지 업스트림 부문의 탄소 집약도를 15% 감축하고, 사업 예상 시나리오 대비 연간 5200만 톤의 CO2 환산량을 감축하겠다는 중간 목표도 제시했다.
아람코의 기후 전략은 '순환 탄소 경제'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하며,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CCUS), 신재생에너지, 수소 등 기술 솔루션에 대규모 투자도 단행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 주바일에 구축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CCS 허브(1단계 목표 연간 900만 톤 CO2 포집)와 연간 1,100만 톤 블루 암모니아 생산 목표는 아람코의 기술 기반 탈탄소화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2030년까지 자체적으로 12GW 규모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를 구축하여 운영 시설 전력의 탈탄소화를 추진한다.
다만 아람코의 넷제로 목표가 제품의 최종 사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배출량(Scope 3)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동시에 탄화수소 생산 능력 증대 계획을 유지하고 있어 전반적인 기후 목표 달성과의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아람코가 운영상의 탈탄소화에는 적극적이지만, 핵심 사업인 화석 연료 생산 자체를 줄이기보다는 기술적 해결책과 상쇄 메커니즘에 크게 의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글로벌 1.5°C 목표 달성과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이사회 산하 위원회와 회사 차원의 위원회를 통해 지속가능성 경영을 감독하고 있다. 안전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으며, 사우디 현지화(Saudization) 및 현지 조달(iktva)을 통해 사우디 경제 기여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여성 직원 비율 등 일부 다양성 지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아람코의 비전
현재 아람코는 사우디 '비전 2030'과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대담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리튬, LNG, 석유화학, 신재생에너지, 수소 등 미래 에너지 분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으며, 특히 BYD와의 협력은 미래 운송 기술에 대한 아람코의 전략적 깊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은 이러한 아람코의 글로벌 전략에서 기술, 산업, 그리고 중요한 시장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아람코 코리아의 다양한 ESG 활동과 에쓰-오일을 통한 협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ESG 경영 측면에서 아람코는 운영 자산의 탈탄소화를 위한 야심찬 목표와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Scope 3 배출량 문제와 탄화수소 생산 확대 계획은 지속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아람코의 미래는 탄화수소 시장 전망, CCUS 및 수소 등 핵심 기술의 상용화, 글로벌 기후 정책 변화, 그리고 신규 다각화 사업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에너지 거인인 사우디 아람코의 향후 행보는 세계 에너지 지형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과의 협력 역시 에너지 안보 강화와 미래 에너지 기술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