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의 뜻 거스르는 중국 기업이 있다? 위메이드, 발 동동 구른 사연은?
8400억 '미르' 소송 이기고도… 中 킹넷 '배상 회피'에 국제 중재 승소 불구, 현지 집행 난항… "킹넷, 불법 자산은닉" 공론화
위메이드가 자사의 핵심 IP '미르의 전설 2'를 둘러싼 중국 기업들과의 지난한 법적 다툼에서 연이어 승전고를 울리고도, 정작 받아야 할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승자의 역설'에 빠졌다.
싱가포르 국제상공회의소(ICC), 대한상사중재원(KCAB) 등 세계적인 중재 기관들이 잇따라 위메이드의 손을 들어주며 중국 기업들에 총 8400억원에 달하는 배상 책임을 물었지만, 중국 현지에서의 강제 집행은 온갖 난관에 부딪히며 '차이나 리스크'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미국과의 패권전쟁을 벌이며 자국 경제가 휘청거리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유치에 적극 나서는 등 입체적인 유화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국제경제의 이단으로 몰아가며 중국을 합리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드려는 전략이다.
다만 중국 기업 킹넷의 행보는 딴판이다. 위메이드는 최근 설명회를 통해, 여러 분쟁 중에서도 특히 "중국 킹넷의 미지급 로열티 문제가 현재 가장 핵심적인 쟁점"임을 강조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중국 법원의 판결 집행"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미르' 신화의 그림자: 20년 넘게 이어진 배신과 분쟁
2000년대 초반, '미르의 전설 2'는 중국 게임 시장을 석권하며 '게임 한류'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 초기 중국 파트너였던 샨다게임즈(現 성취게임즈)가 2002년부터 로열티 지급을 회피하고, 심지어 IP를 침해한 '전기세계'를 서비스하며 분쟁이 시작됐다. 샨다가 2005년 공동 저작권자인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하며 상황은 더욱 꼬였다.
위메이드는 성취게임즈와 액토즈가 IP를 무단 도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도 로열티를 미지급한다며 2017년 싱가포르 ICC에 중재를 제기했다. 수년간의 공방 끝에 ICC는 2023년 최종 판정을 통해 성취게임즈와 액토즈에 총 3000억원 규모(이자 포함)의 배상 및 연대 책임을 명령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사실상의 '배째라'였다. 2년 가까이 성취게임즈로부터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위메이드는 중국 법원에 중재 판정 승인 및 강제 집행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이 와중에 위메이드는 '미래'를 위한 고육책을 택했다. 2023년 액토즈소프트와 '미르의 전설 2, 3' 중국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5년간 연장하며 총 5000억원(연 1000억원)을 받기로 한 것이다.
과거 분쟁은 법의 판단에 맡기되 미래 사업은 이어가겠다는 '투트랙 전략'이다. 위메이드 측은 성취게임즈와 액토즈소프트에 대한 싱가포르 ICC 중재 판정에 대해 "양국 법원에서 공정하게 후속 절차가 진행되기를 바라며 과거의 분쟁에 대해서는 법원의 공정한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동
시에 "2023년 체결된 라이선스 독점권 계약을 바탕으로 미르 IP의 보호와 발전, 지속 가능한 사업환경 조성을 위해 액토즈소프트 측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액토즈의 연대 책임분(약 1500억원)에 대해서는 한국 법원에서 집행 판결을 받아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더 노골화된 '계약 무시'… 킹넷의 조직적 자산 은닉 의혹
성취게임즈 사례가 복잡한 역사와 지분 관계로 얽혔다면, 중국 상장사 킹넷 네트워크 및 자회사들과의 분쟁은 더욱 노골적인 '계약 무시' 패턴을 보인다. 위메이드는 2016년부터 킹넷 자회사 절강환유('남월전기'), 지우링('용성전가', '전기래료') 등과 직접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으나, 이들 역시 게임 출시 후 막대한 성공에도 로열티 지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위메이드는 각 건에 대해 ICC와 KCAB 중재를 통해 승소하며 총 5400억원이 넘는 배상 판결(이자 포함)을 확보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중국 법원이 중재 판정에 따른 강제 집행 결정을 내렸음에도, 킹넷 측은 자회사들의 '책임 재산 부족'을 내세우며 집행을 막아섰다. 위메이드는 킹넷이 판결 전후로 자회사들의 자산을 고의로 빼돌리거나 은닉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최근 열린 설명회 역시 "국제중재법원의 판정과 자국 법원의 최종 판결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정당한 집행을 방해하고 있는 중국 게임사 킹넷의 행위와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도 지급해야 할 로열티를 주지 않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행태를 공론화하기 위함"이라고 위메이드 측은 그 목적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절강환유 건에서는 위메이드가 상해 법원에서 힘겨운 '법인격 부인 소송' 끝에 모회사 킹넷의 연대 책임을 인정받았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킹넷 은행 계좌에 150억원 상당을 가압류했지만, 중국 법원은 킹넷 측 반발을 이유로 이 돈마저 내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킹넷이 중재 판정 후 자회사 지우링 지분을 매각해 연결고리를 끊으려 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법망을 피하려는 악의적 시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위메이드는 "강제집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집행을 면하기 위한 재산 은닉 행위는 중국법에 의하여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의 '개방 약속'은 공염불? 中 사법 시스템 신뢰도 '흔들'
위메이드가 겪는 집행 난항은 ▲판결 후 집행까지 과도한 시간 소요 ▲채무 기업의 명백한 자산 은닉 시도에 대한 소극적 대처 ▲근거 부족한 이의 제기 수용 등 중국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한국 법원의 신속한 액토즈 상대 집행 결정과 대조되며 중국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신뢰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미지급된 8400억원은 위메이드 연간 영업이익의 수 배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으로, K-콘텐츠 가치가 중국 시장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최근 시진핑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외국 자본 유치와 공평한 경쟁 환경 보장을 연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위메이드 사례는 이러한 약속과 현실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드러낸다. 국제 중재 판정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은 국제 사회에서의 중국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 게임 산업 전체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위메이드 측은 "한국 게임사와 계약한 회사의 재산을 모두 외부로 빼돌리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이러한 행위가 한국 기업을 상대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해당 중국 기업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간다면, 이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게임사들이 IP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어 "한국의 콘텐츠를 중국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생긴 피해에 대하여 정부 차원의 관심과 다각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고도 그 결실을 얻지 못하는 위메이드의 기나긴 싸움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그리고 이 사건이 향후 한중 콘텐츠 교류 및 투자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