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리스크 엇갈리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5월 다시 불붙나

법원의 정기주주총회 효력 인정 여부 관건 장기전 돌입 시 출구전략도 고려해야

2025-04-23     박상준 기자
지난 3월 28일 열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 사진=고려아연

지난 3월 28일 정기주주총회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놓였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다시 점화될 낌새다.

오는 5월 예정된 정기이사회에서 정기주총 의결 안건을 본격적으로 다룰 전망이기 때문이다. 현재 11명인 고려아연 측 이사진과 4명인 영풍 연합 측 이사진이 신경전을 벌이리란 예상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 과정을 둘러싼 법원의 위법성 판결 여부에 따라 판이 크게 흔들릴 예정이다.

5월 정기 이사회서 힘싸움 예고돼

고려아연은 지난 16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개별 이사의 구체적인 보수 금액과 지급 기준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다. 정기주총에서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을 의결한 지 3주 만이다. 통상 기업은 주총 이후 바로 이사회를 열어 의결 안건의 세부 사항을 처리하지만, 대주주와 분쟁 중인 고려아연 특성상 주요 논의 안건을 확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만 임시이사회에서도 정기주총 관련 구체적 후속 안건은 논의되지 않았다. 이사회 재편 이후 양측 이사진의 첫 대면인 만큼 급한 충돌은 피한 모양새다.

고려아연과 영풍 연합은 현재 서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정기주총 직전까지 치열한 여론전을 벌이고, 당일 현장에서 고성이 오갔던 것과는 다른 그림이다. 아직 정기주총 의결 안건의 효력을 결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법원 판결에 따라 현재까지의 정세가 완전히 역전될 수 있다.

의결권 제한 놓고 “장군, 멍군”…칼자루는 법원에

영풍 연합은 현재까지는 수세에 몰려있다. 영풍 의결권을 제한하려는 고려아연과 의결권을 사수하려는 영풍 연합의 수싸움에서 고려아연이 판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난 1월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아연은 당시 임시주총을 하루 앞두고 해외 유한회사이자 손자회사인 SMC를 통해 영풍 지분 10.3%를 확보했다. SMC는 고려아연이 호주에 세운 자회사 SMH의 자회사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SMH-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현행 상법은 계열사 간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특정 회사가 소수의 자본으로 상호출자를 반복해 다수 계열사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고려아연은 이 점을 이용해 SMC와 영풍의 순환출자고리를 형성, SMC와 영풍의 상호주 외관을 만들어 임시주총서 영풍 의결권 25.4%를 제한했다.

영풍 연합은 격하게 반발하며 법원에 ‘임시주총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고려아연의 상호주 의결권 제한 방식이 위법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영풍 연합이 내세운 건 ‘SMC가 유한회사’라는 점이었다. 현행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은 주식회사에만 적용 가능하다. 주주도 주식도 없는 유한회사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내 법원이 3월 7일 영풍 연합의 가처분을 일부 인용했다. 순환출자고리에 유한회사를 끼워넣은 것이 적절치 않았다는 판단이다. 이로 인해 고려아연이 영풍 측의 이사회 장악을 막기 위해 내세운 ‘이사 수 19인 상한’ 안건이 무효화됐다.

고려아연의 정기주총 제1 목표는 영풍 측 추천 이사가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법원이 문제삼은 유한회사 리스크를 없애고자, SMC가 보유한 영풍 지분을 주식회사인 SMH에 넘기며 상호주 외관을 재차 형성했다.

영풍은 이에 또다시 반발하며 법원에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이번엔 법원이 고려아연의 손을 들며 영풍의 가처분을 기각했다. 결국 정기주총 현장에서도 영풍 연합 의결권은 제한됐고, 고려아연은 무리 없이 이사회 상한 19인 제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관건은 법원의 판단이다. 아직까지 가처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며 지연되고 시간이 끌리는 모양새다. 영풍은 과거 임시주총 효력정지 가처분을 일부 인용 받으며 1승을 따냈지만, 이번엔 고려아연이 유한회사 변수를 없애며 똑같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려아연 경영진 사법 리스크, 변수 될 수 있나

고려아연에 새롭게 닥친 법적 리스크도 주목된다. 서울남부지검은 23일 오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고려아연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압수수색 대상은 본사 등 6곳과 경영진 주거지 5곳이다. 현재 검사와 수사관을 파견해 PC와 서류 등 증거물을 확보 중이다.

검찰은 고려아연이 지난해 10월 30일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자사주 공개매수가 끝나기 전에 유상증자를 계획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지난 1월 7일 금융감독원이 검찰에 이첩한 사건이다. 불성실 공시 의혹이 발생하자 금융감독원은 11월 6일 정정신고를 요구했다. 고려아연은 일주일 뒤인 13일 유상증자 방침을 철회했다.

다만 현재로선 해당 압수수색은 경영진 사법 리스크를 증가시킬지언정 정기주총 효력을 뒤집을 카드는 되기 힘들어 보인다. 유상증자는 최종 철회됐을뿐더러, 고려아연의 상호주 전략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혐의가 인정될 경우 고려아연 경영진의 도덕성을 공격할 명분이 될 수는 있다.

문제는 영풍과 손잡은 MBK 역시 도덕성과 여론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홈플러스 사태로 정부와 국회, 소액주주로부터 전방위 십자 포화를 당하고 있다. 과거 MBK가 인수한 홈플러스가 최근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며 사모펀드의 투기행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MBK로서도 당장 고려아연과 신경전을 벌이며 여론을 자극하기 보단, 법원 결정을 기다리며 홈플러스 관련 여론을 수습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모습이다.

경영권 분쟁 장기전 돌입하나…출구전략 필요성 제기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있다. 영풍이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고려아연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MBK 역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며 자본은 자본대로 투입했으나 여론만 악화된 상황이다. 기호지세다.

양측은 5월 정기 이사회에서 핵심 안건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한편, 장기전 준비에 돌입할 전망이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상호주 의결권 제한을 무효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며, 고려아연 경영진 역시 시간을 번 만큼 추가로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열릴 각종 주주총회에서 ‘표심’을 담당할 소액주주연대와 기관투자자들은 사실상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정확히는 3사가 대승적 타협을 이뤄내 분쟁을 빠르게 종식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고려아연 2대주주 국민연금은 지난 2월 말 MBK의 6호 블라인드 펀드에 3000억원 출자를 확정하며 “대적 M&A 전략에는 출자금 투입 금지”를 조건으로 걸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매출이나 기업 역량을 향상시키지 않고 자산 매각에 대한 성과로 운용하는 회사(PEF)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MBK가 고려아연 대주주인 영풍과 손잡았으니 적대적 M&A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일축한 셈이다.

소액주주연대 헤이홀더 역시 지난 4일 논평을 내고 “MBK가 고려아연 적대 인수에서 손을 떼고 출구전략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헤이홀더는 “영풍과 고려아연, MBK가 주총 효력정지 가처분 결과를 지켜본 후 다 같이 출구전략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