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도 속았다" 93년생 여성 CEO 찰리 재비스, 그리고 범죄의 재구성
충격적인 사기행각 드러나
세계 최대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를 상대로 2600억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학자금 대출 스타트업 '프랭크(Frank)'의 창업자 찰리 재비스(32)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미국 사회는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사기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테라노스' 사태에 이어 또다시 명문대 출신 유망주로 포장된 창업가의 사기극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13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달 28일 재비스가 JP모건을 속여 프랭크를 1억7500만 달러(약 2600억원)에 매각한 금융 사기, 통신 사기, 공모 등 혐의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다. 이에 따라 재비스는 최대 3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아름다고 덧없는 혁신의 불꽃에 눈이 멀어, 발 밑에서 스멀거리던 그림자를 보지 못한 비극의 미장센이다.
프랭크의 시작
1993년 3월 14일 뉴욕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의 부유한 가정(헤지펀드 근무 아버지, 라이프 코치 어머니)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미국인 재비스는 뉴욕 프랑스-미국 사립학교를 거쳐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 입학, 3년 만인 2013년에 졸업했다.
재학 중 소액 금융 동아리 지원 플랫폼 '포버업(PoverUp)'을 창립하는 등 일찍부터 스타트업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이어 재비스는 졸업 후 24세였던 2016년, 복잡한 연방 학자금 지원 무료 신청서(FAFSA)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목표로 프랭크를 설립하며 비즈니스의 세계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재비스는 빠르게 '핀테크 신성'으로 떠올랐다. 2019년에는 포브스 '30세 이하 30인', 크레인스 뉴욕 '40세 이하 40인'에 선정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포브스는 훗날 이 선정을 후회하며 그녀를 '수치의 전당(Hall of Shame)' 명단에 올렸다.)
그러나 이면에는 경고음도 울렸다. 특히 2017년 미 교육부는 프랭크가 정부 기관과 제휴한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재비스는 웹사이트 주소를 변경하는 합의를 해야 했다. 여기에 2020년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프랭크 서비스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고 서한을 보냈고, 의회 의원들은 코로나19 관련 학자금 지원금 허위 광고 문제를 지적하며 FTC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공동 창업자 아디 오메시는 임금 체불 등을 이유로 이스라엘에서 소송을 제기, 결국 2021년 재비스는 3만5000달러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JP모건, 걸려들었다
프랭크와 재비스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시장은 그 어둠에 주목하는 것이 아닌, 고학력 젊고 아름다운 여성 CEO의 화려함에 기꺼이 매료됐다.
JP모건이 여기에 걸려들었다.
이들이 프랭크에 주목한 이유는 단 하나 재비스가 주장한 '425만 명의 대학생 사용자 데이터베이스'였다. 결국 JP모건은 이 젊은 고객층을 미래의 평생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검증된 고객 확보 기계'로 보고 1억7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재비스는 프랭크 사용자 중 이름, 성,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를 제공한 개인이 425만 명에 달하며 2021년 말에는 10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2021년 9월 인수 계약이 체결됐다. 재비스는 JP모건의 학생 대상 상품 총괄 상무이사(Managing Director) 직함을 얻었고 970만 달러 이상의 주식 매각 대금과 2000만 달러의 잔류 보너스를 약속받았다. 이것저것 모두 다 더하면 앞으로 총 4500만달러(약 60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을 것으로 추산했다. 공모자 아마르 역시 약 500만 달러를 챙길 예정이었다.
무너진 거짓말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모두가 행복했다. 이 과정에서 JP모건은 실사에 들어가며 425만 명 사용자 명단 검증을 요구했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파국의 시작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비스와 프랭크는 425만 명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위기의 연속. 재비스는 잘못을 뉘우치며 진실을 고백했을까. 천만에. 그 즉시 재비스와 아마르는 프랭크 엔지니어링 이사 패트릭 보보에게 접근했다. 내부 조작을 위해서다. 그들은 "합법적인 일"이라며 안심시키려 했고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싶지 않다"는 농담까지 했다. 그러나 보보는 불법적인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의 증언은 이후 재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내부 조작이 막히자 재비스는 외부로 눈을 돌렸다. 와튼 스쿨 동문이자 데이터 과학 및 수학 부교수인 아담 카펠너에게 연락해 1만8000달러(약 2400만 원)를 지불하고 가짜 데이터 생성을 의뢰했다. 재비스는 이 과정에서 청구서에서 데이터 생성 관련 구체적인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그 즉시 카펠너 교수는 소수의 실제 데이터셋 패턴을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사용, '캐서린 고디'와 같은 가상의 이름, 이메일, 생년월일 등을 가진 425만 개의 '합성 데이터'를 만들어냈다.(다만 카펠너 교수는 합성 데이터가 어디에 쓰일 것인지는 몰랐다고 항변한다)
이렇게 조작된 합성 데이터가 JP모건에 전달됐다. 그러나 JP모건은 석연치 않았다. 이를 즉각 제3자 검증 업체로 보냈다. 그러나 이 업체는 데이터 행(row)의 수가 425만 개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해당 개인이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는 검증하지 못했다. 조작의 증거가 흐릿해지는 순간이다. 재비스는 이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했다. 결국 제3자 업체는 프랭크의 요청에 따라 데이터를 삭제했다.
그럼에도 불안했다. 특히 JP모건이 프랭크를 100% 인수하면 어차피 데이터 미흡은 들킬 것이 뻔했다. 결국 JP모건이 시스템에 접근할 것을 예상한 재비스와 아마르는 발각을 막기 위해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총 18만달러(약 2억4000만원)를 들여 실제 학생 데이터 명단 수백만 개를 구매하여 기존 데이터의 허점을 메우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도가 재비스의 발목을 강하게 낚아챘다. 이렇게 구매한 데이터가 JP모건의 실패한 마케팅 캠페인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JP모건은 프랭크 고객 명단 일부를 대상으로 테스트 마케팅 이메일을 발송했으며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이메일 전달률은 28%, 개봉률은 1.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준치(전달률 99%, 개봉률 30%)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즉각적인 내부 조사가 시작됐고 결국 재비스의 거대한 사기극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프랭크가 실제로 식별 가능한 데이터를 보유한 사용자는 30만 명 미만(일부 자료는 40만 또는 25만 명 추정)으로, 그녀가 주장한 수치의 7%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에 '추후 더해진 명단'까지 들어간 것이 확인되며 재비스의 사기 행각은 파국을 맞이했다. JP모건은 2022년 9월 재비스를 정직 처분하고 11월 해고했으며, 2023년 1월 프랭크 웹사이트를 폐쇄했다.
마지막 발악과 추락
JP모건은 2022년 12월 재비스와 아마르를 상대로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하며 "재비스가 사기 위에 사기를 쌓았다"고 맹비난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공개적으로 프랭크 인수를 "큰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재비스 측 변호인(호세 바에즈)은 반박했다. JP모건이 인수 후 성과 부진이나 규제 변화로 인한 '구매자 후회' 때문에 사기 혐의를 조작했으며, 심지어 JP모건이 실제 사용자 수를 알고도 경쟁사(캐피털 원) 때문에 거래를 서둘렀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재비스는 2023년 초의 해고를 부당 해고라 주장하며 약 2800만 달러를 요구하는 반소를 제기했지만, 이는 사기 혐의에 대한 방어 논리를 강화하지는 못했다.
2023년 4월, 마침내 DOJ와 SEC가 칼을 빼 들었다. 재비스는 4월 3일 체포되었고 5월에는 공모(최대 30년), 통신 사기(최대 30년), 은행 사기(최대 30년), 증권 사기(최대 20년) 등 4개 연방 형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SEC 역시 증권법 위반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며 벌금, 부당 이익 환수, 임원 자격 영구 박탈 등을 요구했다.
2025년 2월 시작된 재판은 5주간 이어졌다. JPMC 임원들, 내부 고발자 역할을 한 패트릭 보보, 가짜 데이터를 생성한 아담 카펠너 교수의 증언이 이어졌다. 검찰이 제시한 명백한 데이터 조작 증거 앞에서 재비스 측의 'JPMC 책임론'과 '증인 흠집내기' 전략은 힘을 잃었다. 이어 2025년 3월 28일, 배심원단은 약 6시간의 숙의 끝에 재비스와 아마르에게 제기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이는 피고 측 주장을 완전히 기각하고 검찰 측 주장을 전폭적으로 인정한 결과다.
재비스의 선고 공판은 오는 8월 26일, 아마르는 7월 23일로 예정되어 있다. 최대 형량은 수십 년에 달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실제 형량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한다. 재비스 측은 평결 기각을 요청했으나 항소할 가능성이 높다. 재비스는 선고 전까지 발목 감시 장치 착용 명령을 받았다.
홈스에게 얻어맏은 후에도...
찰리 재비스 사건은 혈액 한 방울로 수백 가지 질병을 진단한다던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스를 떠올리게 한다.
한때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며 차세대 기술 혁신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는 그녀가 설립한 혈액 검사 스타트업 '테라노스(Theranos)'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단 몇 방울의 피만으로 수백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기술을 내세워 실리콘밸리는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에디슨(Edison)'이라는 이름의 소형 혈액 검사 기기를 통해 소량의 혈액만으로 빠르고 저렴하게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은색 터틀넥을 즐겨 입으며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카리스마와 설득력 있는 비전 제시는 저명한 투자자들과 정계 거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루퍼트 머독, 래리 엘리슨 등 억만장자들의 투자가 이어졌고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유명 인사들이 이사회에 합류하며 테라노스의 신뢰도를 높였다. 한때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9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했고, 홈즈는 포브스 선정 '미국에서 가장 젊은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월그린(Walgreens), 세이프웨이(Safeway) 등 대형 유통업체와의 파트너십 체결 소식은 테라노스의 기술이 곧 상용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더욱 부풀렸다.
파국은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탐사보도로 시작됐다. 테라노스 기술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순간이다. 특히 기자 존 캐리루(John Carreyrou)는 내부 고발자들의 증언과 끈질긴 취재를 통해 테라노스의 '에디슨' 기기가 실제로는 극히 일부 검사만 수행 가능하며, 그마저도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대부분의 검사는 테라노스가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한 기술이 아닌, 지멘스 등 타사의 상용 혈액 검사 장비를 몰래 사용해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WSJ 보도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식품의약국(FDA),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 등 규제 당국의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테라노스의 거짓말은 속속들이 드러났다. 파트너십은 줄줄이 파기되었고, 투자자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8년, 테라노스는 공식적으로 폐업을 선언했다.
홉스와 재비스 사건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특히 젊고 매력적인 성공한 여성 CEO라는 이미지가 실제 데이터와 성과를 묻어버리는 마케팅 측면에서만 소구되는 비극이 대표적이다. 실리콘밸리와 월가 모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점이다.
JP모건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금융기관 중 하나인 JP모건도 '젊고 매력적인 성공한 여성 CEO라는 이미지'에 빠져 허우적댔기 때문이다.
허술한 실사 과정이 특히 도마 위에 올랐다. 재비스의 명성과 프레젠테이션에 현혹되어 기본적인 데이터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다. 일부 JP모건 내부 직원이 인수 전 데이터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묵살되었고, 외부 업체의 심층 검증 제안도 두 차례나 거절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심지어 미 통화감독청(OCC)은 이 스캔들이 터지기 전부터 JPMC의 공격적인 인수 전략에 대한 감사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히 한 건의 사기를 넘어, 거대 기업의 인수합병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