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태광’의 경영시계…이호진 복귀 가능성은?

10년 넘게 이어지는 태광의 ‘오너리스크’ 정지된 M&A·투자…트러스톤 “경영 정상화 이뤄야”

2025-04-03     김효경 기자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이 지난해 5월 1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당초 재계에서는 이 전 회장의 복귀가 올 상반기에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태광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받는 만큼, 복귀를 위해 완벽한 ‘리스크’ 해소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경영 정상화, 이 전 회장 복귀해야”

이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421억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3000여만원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후 2019년 6월 징역 3년형을 확정,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 2023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취업제한규정이 해소된 바 있다.

공개 석상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이 전 회장은 재계에서도 ‘인수·합병(M&A)의 귀재’로 꼽힐 만큼 추진력 있는 경영스타일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2004년 회장직에 오른 뒤 적극적인 M&A를 통해 기존 석유화학, 섬유 중심의 사업분야를 대폭 확장, 그룹을 계열사 50개의 대기업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2018년에는 재계 순위 36위까지 올랐지만, 이 전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며 2023년 52위로 하락했다.

태광은 오너의 공백으로 그동안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이어갔다. 지난 2022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향후 10년 간 1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이 전 회장의 사법리스크로 태광그룹의 인수합병(M&A) 시계도 멈춘 상황이다.

태광산업 울산공장 전경. 사진=태광산업

주주들이 이 전 회장의 복귀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광그룹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트러스톤)은 지난 3월 20일, 경영 정상화를 위해 이 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 지분 6.09%를 소유하고 있다.

트러스톤은 이날 공개주주서한을 통해 이 전 회장의 등기임원 선임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태광산업에 정식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성원 트러스톤 ESG운용부문 대표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소수주주의 추천을 받아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했고 이후 회사 경영진과 함께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왔으나 최근 태광 측과 모든 대화가 중단됐다”며 “태광산업의 경영정상화와 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는 최대주주이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전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정식 복귀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태광산업은 섬유 화학 등 주력사업의 부진으로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신성장 동력 발굴 등 회사 미래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비전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최대주주의 책임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전 회장은 현재 태광산업의 경영고문으로 재직하면서 회사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현재 상태보다는 차라리 이사회 정식멤버로 참여해서 투명하게 책임경영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강조했다.

“건강상의 이유, 복귀 시점 불분명”

태광그룹 CI. 사진=태광그룹

트러스톤의 요구에 태광산업은 “이 전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희망하는 트러스톤의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이 전 회장의 의사와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주총회를 소집해 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2023년 8월 복권 이후 경영 복귀를 준비해 왔으나 경영활동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료진의 권고를 받았다”며 “대주주 역할과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 한해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러스톤은 이 전 회장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라고 요구했다. 기타비상무이사는 비상근이지만 이사회 멤버로 이사회 의결에만 참여해 경영활동을 하는 임원을 의미한다.

이 전 회장이 지금도 경영고문으로 근무하며 최근까지 차기 최고경영진을 내정하는 등 사실상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비상근인 기타비상무이사로서의 경영참여는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성원 대표는 “이 전 회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해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트러스톤의 기본입장”이라며 “다만 회사 주장대로 비상근 기타비상무이사 근무도 힘들 정도로 이 전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면 상법에 근거한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 전 회장의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사법리스크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경찰은 수십억 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이 전 회장을 지난해 9월 불구속 송치했다.

한편 태광산업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복귀 시점과 관련해 “구체적인 일정을 정해 놓지 않았다”며 “건강 호전 상황 등을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