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달러 美 AI 산업단지 만드는 손정의 "야망인가 도박인가" [IT큐레이션]

손정의 승부수, '다크 팩토리'로 美 제조업 재편 막대한 자금·고용 충격 등 '첩첩산중'

2025-03-31     최진홍 기자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거대 기술 투자 기업 소프트뱅크 그룹이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투자를 구상하고 있다.

약 1조달러(약 1471조 원), 한국 연간 국가 예산의 두 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미국 전역에 차세대 인공지능(AI) 기반 산업 단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단순한 공장 건설을 넘어, AI 기술을 통해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격변하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미국의 정치 지형 변화 속에서 소프트뱅크의 미래 생존과 성장을 담보하려는 손 회장의 전략적 승부수로 풀이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연합뉴스

AI가 지배하는 '암흑 공장'
3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복수의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손 회장이 구상하는 '인더스트리얼 파크(Industrial Park)'는 AI가 설계부터 생산, 물류, 품질 관리까지 전 과정을 통제하는 고도의 자동화 단지다. 

핵심은 '다크 팩토리(Dark Factory)', 즉 '암흑 공장'의 구현이다. 인간 작업자가 거의 필요 없어 공장 내부에 불을 켤 필요조차 없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AI가 시장 수요를 예측하고 최적의 생산 라인을 설계하며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 로봇 등이 24시간 쉬지 않고 제품을 생산하고 검수한다. 스마트폰, 자동차, 에어컨 등 다양한 제품 생산 라인에 적용 가능하고 인간의 개입은 최소화된다. 목표는 인건비 절감과 생산성 극대화를 넘어 인간의 실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초정밀·고품질 제품을 일관되게 생산하는 것이다.

기술 파트너십 윤곽도 거론된다. AI 연산의 핵심인 반도체는 엔비디아로부터 조달하고, 로봇 기술은 소프트뱅크 산하 비전펀드가 이미 투자한 독일의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애자일 로봇(Agileroo)'의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과거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 생산을 위탁했던 세계 최대 전자기기 위탁생산(EMS) 업체인 대만 폭스콘(훙하이 정밀공업)을 제조 파트너로 합류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폭스콘은 이미 중국 내 공장 자동화에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천문학적 투자, 왜 미국인가? 지정학·AI 패권 노림수
1조 달러라는 규모는 소프트뱅크가 오픈AI 등과 추진 중인 5000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의 두 배에 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소프트뱅크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미국에 쏟아붓는 것을 고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정치적인 접근이다. 특히 '트럼프 리스크'와 지정학적 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그에 따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을 의식한 행보라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임 시절부터 강력한 관세 정책을 통해 글로벌 기업들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를 압박해왔다. 재집권 시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미국 외 지역에 생산 기반을 둔 기업들에게 심각한 위협이다. 소프트뱅크는 AI 기반의 초효율 생산 시스템을 미국 땅에 제공함으로써,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을 지원하고, 나아가 일본 기업 및 소프트뱅크 스스로가 미국의 통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활로를 모색하려는 전략이다. "일본이 AI 기술로 미국 제조업 부흥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 내 노동 문제 해결사를 자처하려는 후속전략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미 고령화, 높은 인건비, 특정 기술 분야의 인력 부족 등 만성적인 노동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프트뱅크는 AI와 로봇을 통한 완전 자동화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임을 강조하며, 미국 경제의 핵심 과제 해결에 기여하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려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더 내밀한 야망이다. 바로 AI 시대 '게임 체인저'가 되는 꿈이다. 

손정의 회장은 일찍부터 AI를 인류의 미래를 바꿀 핵심 동력으로 보고 막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AI의 두뇌 역할을 할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산업 단지 구상은 AI의 실제 적용, 즉 몸통과 팔다리를 만드는 작업에 해당한다. 데이터센터(AI 두뇌)와 첨단 공장(AI 응용)을 미국 내에 동시에 구축함으로써, AI 시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AI 제국' 건설의 야심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딜레마에 주목해야 "자금 조달과 '일자리 파괴' 논란"
손정의 회장의 노림수는 정치와 이상 그 사이에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까?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난관에 직면해 있다.

먼저 자금 조달의 벽이다. 당장 1조 달러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현재 시가총액(2025년 3월 기준 약 100조 원대)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다. 이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5000억 달러 조달 계획에 대해서도 "무리한 계획"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추가로 1조 달러를 어떻게 마련할지가 최대 관건이다. 

소프트뱅크는 특정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과 금융기관 및 투자 펀드로부터의 직접 융자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소프트뱅크의 높은 부채 비율과 과거 비전펀드의 일부 투자 실패 사례는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키울 수 있다.

다음으로는 딜레마다. 일자리 없는 공장 논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손정의 회장의 노림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기술적으로 완전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은 외국 기업 투자 유치의 명분으로 항상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왔다. 사람 없이 로봇만 일하는 '다크 팩토리'는 이러한 정치적 수사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노동조합은 물론 지역 사회와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미국 노동자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이러한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첨단 AI와 로봇 기술을 결합해 거대한 산업 단지 전체를 완벽하게 자동화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엄청난 도전이다. 계획대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그 다음의 특이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의 1조 달러 미국 AI 산업단지 구상은 AI 혁명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나온 담대한 비전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제조업의 역사를 새로 쓰는 동시에 소프트뱅크를 명실상부한 AI 시대의 절대 강자로 올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자금 조달 문제와 '일자리 파괴'라는 사회적 논란, 그리고 기술적 실행 가능성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존재한다. 손정의 회장의 야심 찬 구상이 시대를 바꿀 혁신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무모한 도박으로 끝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