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 택한 의대생 0.8%…“의과학자 예산 지원해야”

14일 ‘노벨생리의학상,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토론회 개최

2025-03-14     이혜진 기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의사과학자 양성은 구조적인 문제로 계속 가로막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사과학자는 환자 진료 대신 바이오 신약과 첨단 의료 장비 등 의료 신기술을 연구해 산업 활성화 등에 기여하는 의사를 의미한다.

김종일 서울대 의과학과 학과장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노벨생리의학상,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토론회에서 “미국 비국방 국가연구비의 약 47%(2018년 기준)가 미 국립보건원(NIH)를 통해 지급되는 의생명과학 분야 연구비”라며 “반면 국내 연구개발(R&D) 예산의 14% 정도만 의생명과학 분야에 지급(2019년 기준)되고 있어 연구비 예산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날 류승원 가천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국내 의대 연간 졸업생 중 해마다 배출되는 전일제 의사과학자는 10명도 안 된다고 밝혔다. 김은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지난해 발간한 ‘바이오헬스산업 육성 등을 위한 의사과학자 양성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의대 연간 졸업생 3800여명 중 의사과학자가 되기 위해 기초의학을 전공한 사람은 30명(0.8%) 정도다. 이 가운데 의사과학자보다 임상 의사가 더 많이 배출된다는 것이 류 교수의 설명이다.

홍승령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 과장이 14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류 교수는 의사과학자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기피과 의사보다 낮은 처우’를 꼽았다. 현재 국내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의 담당 부처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분산돼 있다. 각 사업을 연계해 정부 지원을 받기 힘든 구조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소 25곳 직원의 평균 연봉(2022년 기준)은 9370만원인 반면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평균 연봉(2020년 기준)은 1억9115만원이다. 특히 의사과학자 교원은 기피과 전공의(인턴∙레지던트)보다 급여가 적다고 류 교수는 설명했다.

류 교수는 “기피 임상과와 같은 선상에서 국가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기관별 천차만별의 양성 체계와 직무∙직위에 대한 제도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과학분야 교육과정은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학부 때부터 기초의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지원해 의사과학자 양성체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시작했다. 미국이 1950년대부터 관련 양성체계를 만들기 시작한 데 반해 한국은 그 역사가 짧은 것이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가 14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의학적인 지식과 기초 과학 지식이 섞이고 있는 만큼 어떻게 하면 기초 과학적인 지식을 의학에 응용할 수 있을 인재들을 잘 키워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혜진 기자

한국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반 방역 대응에서 선전하다가 이후 백신 개발국들에 의지하게 된 것은 의과학 역량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 백신을 10개월 만에 개발한 우구르 사힌 독일 바이오엔테크 창업자와 외즐렘 튀레지 박사, 미국 모더나에서 백신 개발을 맡았던 주요 인력도 의사과학자다.

의사과학자가 됐지만 연구자로 남는 비율이 소수에 불과한 만큼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단 목소리도 높다. 이들이 연구에 집중하려면 진료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이는 병원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병원이 연구에 투자하기보다는 의사의 진료를 원해 의사들은 연구보다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단 것이다.

홍승령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 과장은 “진료라는 의료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의사과학자가 되는데 분명히 허들이 된다”며 “의사과학자는 진료보다 연구를 택해야 하지만 좀 더 고민해서 두 분야의 협업이 잘 이뤄질 수 있는 환경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