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오너 3세’ 김정균의 우주사업, 약될까 독될까 [CEO파일]
몽상가 아닌 합리적인 이상주의자…31일 주총서 단독대표 ‘신고식’
“그동안 공들여온 ‘휴먼인스페이스(HIS∙우주 스타트업 프로그램)’의 가치를 (유럽 최대 위성 기업인) 탈레스알레니아스페이스가 공감하게 되면서 협력을 진행하게 됐다.”
김정균 보령 대표(39)는 작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를 찾아 이같이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 우주학술 발표장에서 제약사 대표가 우주 사업 협력 현황을 밝힌 것이다.
지난달 26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우주항공 리더 조찬 포럼에 참여해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우주에서 인류의 생존이 가능하게 할 연구개발이 지속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인프라를 우리가 직접 만들고 소유해서 이를 촉진하겠다는 게 (사업의) 큰 방향이다.”
4개월 만에 또 우주사업에 대한 소신을 드러낸 것. 김 대표는 2023년에도 “세상에 없던 신약(First in class)을 만드는 것보다 우주산업의 성공 확률이 오히려 높다”며 주주와 2시간 동안 ‘끝장 토론’을 한 바 있다.
김 대표, 우주 사업 성공시킬 수 있을까
오너 3세인 김 대표가 새 먹거리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일본제약공업협회가 이달 발간한 ‘2025 참고자료서’에 따르면 2019~2023년을 기준으로 신약이 일본당국의 최종 허가를 받을 확률은 3만807분의 1에 불과하다. 3만개가 넘는 신약 후보 물질 가운데 1개만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국내 제약 산업은 일본과 달리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 중심인 만큼 신약개발보다 우주사업의 성공 확률이 더 높다는 그의 말은 몽상가적인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
이에 보령은 지난해 12월 미국 달착륙선 개발사인 인튜이티브머신스에 1000만달러(약 146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같은 해 10월 양사는 미국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를 위해 제작 중인 달 탐사 차량을 활용해 우주의학 실험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한 바 있다. 이미 미 항공우주국(NASA) 등 파트너들로부터 관련 수요를 확인한 뒤 내린 결정이다.
이에 앞서 2022년 보령은 미 우주 정거장 건설사 액시엄스페이스에 6000만달러(약 874억원)를 투자하고 지난해 합작사 ‘브랙스스페이스’를 출범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22년부터 보령이 집행한 사업 관련 투자 건수(13건) 중 11건은 우주사업에 대한 것이다.
김 대표 단독대표 체제로 ‘우주기업’ 발돋움할 전기 마련
장두현 전 대표가 지난달 돌연 사임하며 김 대표는 현재 우주사업뿐 아니라 장 대표와 이끌었던 제약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동안 두 사람이 경영 책임을 함께 지며 오너와 전문경영인 체제의 강점을 동시에 누려왔는데 이젠 그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최근에는 온라인 종목 게시판을 중심으로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커져 4년 전 2만원대 중반을 기록하던 회사의 주가는 1만원 내외로 주저앉은 상태다. 이에 김 대표는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고 나아가 추가적인 투자 등으로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오는 31일에 열릴 주주총회는 그가 단독대표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이자 보령이 우주기업으로 발돋움할 전기가 될 전망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미래 먹거리인 우주사업 육성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일라이 릴리∙BMS∙머크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등 해외 대형 제약사가 관련 사업에서 앞서며 격차를 벌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보령에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한정된 자원으로 이들 업체를 거세게 추격하면 스페이스 린텍과 같은 국내 우주의학 업체와 격차를 당분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인 제약 부문에서 중견 제약사들이 치고 올라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어서다.
시험대 오른 경영 실력, 어떤 리더십 보여줄까
보령의 우주사업 성과에 따라 김 대표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파도처럼 오르내릴 가능성이 크다. 장 전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후 리더십 공백을 어떻게 빨리 메울지 여부가 단지 그의 위기 관리 능력뿐 아니라, 회사 미래에 긍정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대한 시험대란 분석이 나온다. 브랙스스페이스는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약 3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사업 초기인 만큼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이젠 김 대표가 그간 축적해온 자신의 경영 실력을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