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압박에...신한·KB·우리銀, 대출금리 잇따라 인하

금융위, '금리 낮추되 대출 증가도 관리하라' 주문 일단 0.2%p 내에서 인하...가계대출 총량 관리 '고심' 토지거래허가 제한 푼 후 서울 아파트價 역대최고 집단대출·정책자금 늘며 2월 가계대출 증가세로 전환

2025-03-02     김호성 기자
서울 한 은행에서 시민이 대출창구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금융당국의 압박까지 더해지자 주요 은행들이 속속 대출 금리를 낮추고 있다. 우리은행이 선제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린데 이어 신한, KB국민 등 다른 은행들도 최대 0.2%포인트(p)내에서 금리 인하를 검토중이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 내내 억눌렸던 대출 수요가 연초 금리 하락, 규제 완화 등으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은행들도 섣불리 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7월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시행 등의 영향으로 상반기 주택거래와 가계대출이 전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금리를 낮추되 대출 증가도 관리하라'는 당국의 모순적 주문 속에 은행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이번 주 가계대출 상품의 가산금리를 낮출 예정이다. 이번 주 초 결정될 인하 폭은 최대 0.2%p 정도로 검토되고 있다.

앞서 1월 14일 가계대출 가산금리를 0.05∼0.30%p 일제히 낮춘 데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 인하다. 지난달 25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한데 이어 시장금리도 하락세를 보인 점을 반영한 것이다.  

KB국민은행도 3일 은행채 5년물 금리를 지표로 삼는 가계대출 상품의 금리를 0.08%p 낮춘다. 가산금리 조정은 아니지만,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분을 최대한 빨리 대출금리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6일 대출금리를 내리겠다고 공지했다. 이어 우리은행은 지난달 28일부터 주택담보대출 5년 변동(주기형) 상품의 가산금리를 0.25%p 인하했다. 이달 5일부터 개인신용대출 대표 상품인 '우리WON갈아타기 직장인대출' 금리도 0.2%p 내릴 예정이다.

해가 바뀌어 가계대출 총량 관리 압박에서 벗어난 은행권은 올해 초부터 가산금리 인하나 우대금리 확대 등을 통해 조금씩 실제 금융소비자에게 적용되는 대출금리를 하향 조정해왔다.

하지만 대출금리 인하 폭이 예금금리 하락 폭에 미치지 못하고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대금리)가 커지자 여론이 나빠졌고, 이를 의식한 금융당국 수장들까지 잇따라 "대출금리를 낮출 때가 됐다"고 경고하면서 은행권은 계속 기대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아야 하는 처지다.

실제로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여전히 4%대에 머물고 있다.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대출금리가 쉽사리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 속 대출금리가 일제히 올라가면서 실수요자의 이자 부담만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주요 5대 은행이 지난 1월 취급한 가계대출 금리는 연평균 4.634%로 전월(4.75%) 대비 0.116%p 떨어졌다. 그러나 신규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평균 4.436%로 전월(4.424%)보다 0.012%p 올라갔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인 9월 이들 은행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금리가 3.63~4.15%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금리인하 이전 시기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높이거나, 가감조정금리(우대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대출금리를 인상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올해는 최소한 신규대출 금리에 대해선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24일에도 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하 후 시간이 지났기에 이제는 반영할 때가 됐다"고 압박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2025년 가계부채 관리방향' 사전 브리핑에서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당국이 대출관리를 하라고 하면서 금리를 내리라고 이야기하니까 볼멘소리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렇지만 우리은행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맞춰 먼저 금리를 내렸는데 다른 은행들은 시차를 갖고 우물쭈물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다만 최근 가계대출 추이를 보면, 은행이 서둘러 큰 폭으로 대출 금리를 낮추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열풍과 함께 한 달에 약 7조~9조원씩 불었던 지난해 7~9월 정도는 아니지만, 가계대출이 올해들어 다시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2월 27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모두 736조2772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2조6184억원 늘었다. 1월 4762억원 감소했다가 한 달 만에 반등했고, 증가 폭도 지난해 9월(5조6029억원) 이후 가장 크다.

종류별로는 주택담보대출(잔액 582조6701억원)이 2조6930억원 늘었고, 1월 1조5950억원 뒷걸음쳤던 신용대출도 1101억원 다시 증가했다.

2월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으로는 금리 하락, 규제 완화, 이사철 수요, 집단대출·정책대출 증가, 전반적 부동산 거래 회복 등이 거론된다.

특히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이문동 래미안 라그란데 등 대단지 아파트의 집단대출과 디딤돌대출, 보금자리론, 버팀목대출과 같은 정책자금이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선 토지거래허가 제한이 풀린데 이어 금리 인하 추세로 유동성 공급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강남권 등의 아파트 가격이 올해 더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R114가 서울 25개 자치구의 아파트 155만가구(임대 제외)의 평균 가격(호가와 시세, 지역별 평균 등을 반영해 산정)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13억8289만원으로, 이전 최고점인 2022년 5월의 13억7532만원을 상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수치에 반영되려면 2∼3개월의 시차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난해부터 아파트 구입 등을 이유로 가계대출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잠재 수요가 빠른 속도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