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상생금융으로 경기침체 돌파한다

은행권,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총력 보험업계도 상생금융 동참…취약계층 지원 강화

2025-01-27     박수아 기자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상생금융' 실현에 발 벗고 나섰다. 내수 침체와 탄핵 정국의 장기화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돕기 위함이다.

"지금이야말로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같이 말하며 2025년 금융감독원의 핵심 주제로 '안정', '상생', '미래'를 꼽았다.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또한 신년사에서 "시장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며 "시장 안정 조치와 기업자금 지원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권에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 지원 강화를 적극 주문했다.

3일 '범금융 신년인사회' 개최 후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 나성린 신용정보협회장,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김성태 기업은행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최재만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수석부행장(아랫줄 왼쪽부터)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윤창현 국회의원,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강신숙 수협은행장. 사진 = 은행연합회.

금융권 또한 이에 적극 발맞추고 있다. 금융사 CEO들은 지난3일 '2025 범(汎)금융 신년인사회'에서 "'경제 방파제로서의 역할'을 굳건히 하고 상생금융에 나서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가계 대출 금리 부담 완화, 중소기업 금융 지원 확대 등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설 자금 지원 총력전, 은행권 73조 원 투입

먼저, 은행권은 설 연휴를 앞두고 자금난에 직면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특별 금융 지원에 나섰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총 73조4000억 원의 특별자금을 통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 경감 및 자금 조달 지원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설 명절을 앞두고 '중소기업 설 특별자금'을 다음 달 14일까지 지원한다.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신규 대출 6조1000억 원과 만기 연장 9조 원 등 총 15조1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최대 1.50%p의 금리 우대 혜택을 더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이자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준다는 방침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은행권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에 나선다. 사진제공=연합뉴스

KB국민은행 역시 같은 기간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총 15조1000억 원(신규 대출 6조1000억 원, 만기 연장 9조 원)의 금융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최대 1.50%p 의 금리 우대 혜택도 제공된다.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중소기업을 위해 총 15조1000억 원 규모의 설 자금을 지원한다. 특히, 업체당 최대 10억 원의 신규 대출, 원금 일부 상환 조건 없는 만기 연장, 분할 상환금 납입 유예 등의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경영 안정 자금과 임금 체불 해소 자금 등 총 15조1000억 원을 지원한다.

NH농협은행은 다음 달 13일까지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에 신규 대출 5조 원, 만기 연장 8조 원을 포함한 총 13조 원 규모의 명절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강태영 농협은행장은 "농협은행의 핵심가치는 오직 고객과의 동반성장"이라며 "국가경제의 기반인 중소기업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금융지원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상생금융으로 내수 침체 돌파구 모색

은행권의 이 같은 상생금융 행보는 위축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소비 시장이 위축되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경제 침체가 더욱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민간 부채 비율은 GDP 대비 207.4%로,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높아진 부채 부담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축소시켰고, 이는 곧 국내 소매판매 감소로 이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11월까지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동기 대비 2.1% 감소하며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21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소비 부진은 내구재, 준내구재, 비내구재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같은 내구재(-2.8%), 의류 등 준내구재(-3.7%), 음식료품 같은 비내구재(-1.3%) 소비가 모두 줄어들며 소비 전반의 위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모든 소비 항목이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소비 침체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22년 0.50%에서 2023년 1.56%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폐업률 또한 같은 기간 0.8%p 증가한 9.0%를 기록했다. 고금리와 고물가가 맞물리며 이자 부담이 커지고,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급증함에 따라 폐업을 선택하는 영세사업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내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국내 비상계엄 사태와 고환율의 영향으로 소비 심리는 다시 급격히 위축됐다.

이에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지속되는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끊고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상생 금융'을 강화한다. 소비 회복과 경제 안정화를 위한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보험업계, 상생금융 실천에 속도…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

보험업계도 상생금융 실현에 발맞추며 서민과 취약계층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IFRS17 도입 이후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보험사들은 상생금융을 주요 과제로 삼고,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여의도에 위치한 한화생명 본사 63빌딩 전경. 출처=한화생명

청년·취약계층 지원 : 저축보험, 취약계층 어린이 보험 개설

한화생명은 2023년 7월 '2030 목돈마련 디딤돌 저축보험'을 출시하며 상생금융을 강화했다. 이 상품은 가구소득 중위 200% 이하의 만 20~39세 청년층을 주요 가입 대상으로 하는 저축성 보험이다. 가입자가 납입이 어려운 경우 일정 기간 납입유예를 신청할 수 있으며, 결혼이나 출산 시 납입금 일부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구조를 통해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한화생명의 '상생친구 어린이보험' 또한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상생금융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보험은 장애우, 저소득 한부모 가정, 차상위 다문화 가정 등 0~30세 자녀를 대상으로 하며, 월 1만 원대의 저렴한 보험료로 각종 질병에 대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해당 상품은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을 덜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같은 해 금융감독원이 선정한 '상생·협력 금융 신상품' 우수사례 1호로 뽑히며 주목받았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상생친구 어린이보험은 사업비를 절감해 보장내용이 유사한 일반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금감원 우수사례로 선정된 만큼 앞으로도 취약계층을 위한 보험상품 확대로 상생금융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저출산 극복 : 출산·육아휴직 보험료 납입유예 제도 도입

한화손해보험은 2023년 정부의 저출산 극복 정책에 부응하여 출산과 육아휴직 기간 동안 보험료 납입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출산·육아휴직 보험료 납입유예 제도'를 개발·도입했다.

해당 제도는 출산·육아로 경제적 부담이 커진 여성 고객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최대 1년간 보험료 납입을 미룰 수 있도록 했다. 납입 유예 기간에도 보험 보장은 유지되며, 납입지연으로 인한 이자는 보험사가 부담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기존 보험 혜택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해당 제도가 민간 차원의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 '상생·협력 금융 신상품' 우수사례 1호로 선정했다. 이를 통해 한화 생·손보는 '상생금융기업'으로서 이름을 나란히 올렸다.

한화손해보험이 시작한 출산·육아휴직 보험료 납입유예 제도는 다른 보험사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 제도를 보험업권 전체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존 계약에 소급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권의 협력적 노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부터 전통시장 안전점검 까지…지역사회와 상생 실현

윤희승 KB손해보험 상무(오른쪽), 조진식 의정부제일시장 번영회장(왼쪽)이 18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제일시장에서 안전점검을 받은 소상공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KB손해보험

KB손해보험은 구본욱 대표 체제 아래 청년 일자리 창출, 소상공인 지원, 전통시장 환경 개선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상생금융 실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KB손해보험은 지난해부터 경기도 화성시와 함께 SIB(Social Impact Bond)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SIB는 쉽게 말하면 '사회 성과 보상 사업'이다. 민간 투자자가 공공사업에 투자한 뒤 성과를 달성하면 정부나 지자체가 투자금을 상환하는데, 특히 복지·교육·고용 등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사업 모델로 알려져있다.

KB손해보험은 이 사업을 통해 청년들이 외식업 기반 매장에서 취업하거나 창업할 수 있도록 4년간 25억을 기부할 예정이다.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신학기를 앞두고 소상공인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전국 영세 소상공인의 초·중등 자녀를 대상으로 책가방, 교복, 학습교재 등 학습 물품을 지원했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아이들의 학업 의욕을 높이고 소상공인 가정의 부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전통시장 화재 예방과 안전한 영업 환경 조성을 위한 활동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KB손해보험은 '안전한 점포 만들기' 사업을 통해 전통시장 점포를 대상으로 전기 배선, 가스 배관, 소방시설 등 주요 안전 요소를 점검했다. 특히 의정부 지역 20개 점포의 안전 점검과 시설 교체를 완료하며 화재 및 안전사고 예방에 기여했다.

KB손해보험 윤희승 상무는 "KB손해보험 스타즈 배구단의 연고지인 의정부에서 지역사회와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실현하고 지역 안전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상생금융 행보는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내수 침체와 경기 침체라는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적인 돌파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과 업계는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위축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금융업계의 이러한 노력이 단기적인 경제 회복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