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파나마 운하 운영권 욕심… 글로벌 해운 업계 혼란 '부채질'
지난해 4월 볼티모어 다리 붕괴 후폭풍으로 미국 항구와 해운업 약세 대형 선박 수에즈 운하 통행량 감소·포트 유니언 파업 여파 등 美 해운 업계 피로도 ↑ 트럼프 특유의 '남 탓 외교' 부활했단 평가도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장악하고 있는데 미국이 운하를 되찾아야 한다. 군사적·경제적 강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약속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 주 팜비치 마러라고에서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이후 두 번째 기자회견을 갖고 한 말이다.
파나마·수에즈(홍해) 운하가 각자의 사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파나마 운하와 관련해서 군사력 도입을 배제하지 않은 발언이라 특히 시선이 집중된다. 이는 지난해 4월 발생한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 붕괴 사태와 맞물리며 글로벌 해운 업계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망가진 볼티모어 다리의 나비효과… 美, 동부 최대 항구 충격 후폭풍 ‘골머리’
볼티모어 항구는 지난해 4월 다리가 붕괴되는 사고를 입은 바 있다. 그 여파로 10개월이 지난 현재 기존보다 약 60~70% 수준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 연간 110만 TEU(약 20피트 컨테이너)를 소화하던 지난 2023년에 비하면 아쉬운 수치다.
항구 폐쇄로 인한 일일 경제 손실도 약 1500만 달러(약 218억 5000만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 중이며 이 여파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에서 9번째로 가장 바쁜 항구의 비정상 운영에 미국 해운 업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볼티모어 항구는 5230만 톤의 국제 화물을 처리하고 연간 8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수입해 오는 가장 큰 항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미국이 공급망 위기에 처했을 때 효율성, 공급망 개선 측면에서 우수함을 보이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미국 해운 유통의 ‘허브’ 역할을 한다고 극찬했다.
붕괴 이후 메릴랜드 주는 지난해 5월 700피트(약 213미터) 너비의 항로를 개방하고 최대 2억 7500만 달러(약 2915억원)의 비상기금을 활용해 사고 피해 복구 및 피해 노동자, 기업을 지원했다.
다만 외신들은 다리 복구에만 최대 19억 달러(약 2조 7696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으며 재건축을 서둘러도 오는 2028년에나 새 다리를 완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치 분쟁 파나마·후티 반군 수에즈… 운하 둘러싼 글로벌 해운 네트워크 여전히 혼란
문제는 해결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주장하며 해운 분야 약세를 국내 문제에서 국제 문제로 관심을 돌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볼티모어 항구 사태가 여전한 가운데 이러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파나마 운하라는 '외부의 이슈'에 주목하며 전형적인 물타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파나마를 강타한 가뭄이 채 해결되기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말려든 것이다.
파나마 운하도 빌미를 줬다. ‘포트 유니언’ 파업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까지 직면하며 파나마 운하 통제에 대한 당위성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포트 유니언 파업이란 지난 10월 뉴욕, 볼티모어, 마이애미, 휴스턴 등 미국 동부·걸프 항만에서 약 2만5000명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자동화 관련 계약 조항 개정을 요구하며 파업한 사건이다.
JP모건에 따르면 당시 파업으로 인한 하루 경제 손실 예상치는 최대 45억 달러(약 6조 5642억원)였으며 항만 업무가 중단돼 컨테이너 화물과 자동차 선적이 멈춘 바 있다. 이는 “파나마가 부과하는 수수료는 터무니없고 매우 불공평하다”며 “관대한 배려에도 도덕적, 법적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파나마 운하를 전액, 신속하고 의심 없이 우리에게 반환하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통상적으로 파나마 운하를 건너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통상 약 50만 달러(약 7억3000만원) 정도이나 미국 선박에게는 과도한 비용이 청구됐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논지다.
팀 한센 도리안 LPG 팀 한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해 3월 “파나마 운하의 통과권을 확보하기 위해 400만 달러(약 58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추가로 낸 업체도 있다”며 “그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해운 문제로 시야를 확정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당장 ‘홍해 운하’로 불리는 수에즈 운하도 여전히 예멘 후티 반군에게 덜미가 잡혀있다.
글로벌 해운 조사 전문기관 알파라이너와 영국 해양정보회사인 로이드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이집트 수에즈 운하 컨테이너 통항량은 중소 선박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초대형 선박은 여전히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통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인 통계 수치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선박의 78%는 3000~5100 TEU 크기인 파나막스 사이즈의 소형 컨테이너선이었으며 대형 컨테이너 급인 7500만~1만8000 TEU 크기의 선박은전년 대비 90% 넘게 감소한 월 20회 미만의 통행량을 기록했다.
또 1만8000 TEU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들의 지난 9개월 간 수에즈 운하의 통항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세계 해운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수에즈 운하지만 정작 대형 선박들은 반군의 무리한 요구에 아프리카로 키를 돌린 것이다.
수에즈 운하는 지난 2023년 기준 약 1만 9000척의 선박이 통과했고 유럽 수입 물량의 약 15%, 글로벌 컨테이너 운송량은 약 30%가 지나가는 해상 핵심 경로다.
예멘 후티 반군이 수에즈 운하 통행 선박을 괴롭히는 이유는 돈이다. UN 안전보장이사회가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 후티 반군은 선박 소유주들로부터 ‘안전운항’을 담보로 매달 1억 8000만 달러(약 2511억 1800만원)에 달하는 불법 수수료를 징수해왔으며 후티 반군의 ‘안전통항료’는 연간 약 22억 달러(약 3조 2149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남 탓으로 핑계 찾기”… 파나마 운하 분쟁, ‘트럼프식 외교’로 사태 커지나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남 탓 외교(Blame Diplomacy)’가 재임 전부터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내지 않는다고 비판하거나 불법 이민자 문제의 책임을 멕시코에 돌리며 국경 장벽 건설 비용을 멕시코에 부담시키려 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보였던 ‘우파 포퓰리즘’ 현상과 파나마 운하 이슈가 결을 같이 한다고 바라봤다. 내부 개혁보다는 외부에서 문제 해결책을 찾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가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인하대학교 정재환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파 포퓰리즘은 주로 내부의 문제를 다른 국가로 전가하려는 성향을 띠고 트럼프 정부는 과거 이러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왔다”며 “국내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 바깥에서 원인을 찾으면서 미국 내 지지율 확보에 무게를 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