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트윈, 디지털 트윈과 경쟁하고 협력하다 결국 대세될 것" [ER초대석]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

2025-01-01     최진홍 기자

프랑스 기술자 마르셀 블로흐(Marcel Bloch)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국방군의 공군 전력인 루프트바페(Luftwaffe)가 순식간에 조국의 제공권을 무력화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조국 영공 수호 의지를 불태워 전투기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전 유럽을 놀라게 만든 '환상의' 베스트셀러 전투기인 미라주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다. 다쏘 그룹의 시작이다.

다쏘 그룹은 지금도 산하에 다쏘 항공을 둔 방산주력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쏘 그룹은 미디어 및 스포츠(피가로)는 물론 물류(소지테크), 전기차 솔루션(SVE) 등 다양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여기에는 우리에게는 3D캐드로 잘 알려진 PLM(Product Lifecycle Management)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업체 다쏘시스템도 포진해 있다. 

다쏘시스템은 여세를 몰아 3D 익스피리언스 등을 위시한 버추얼 트윈을 전면에 내세운 후 더욱 강력한 디지털 플랫폼 집약체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국내 ICT 대기업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트윈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태생부터 AI에 최적화된 버츄얼 트윈을 통해 입체적인 영역으로 파고드는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정운성 대표이사를 2024년 12월 23일 서울 강남구 사옥에서 만났다.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사진=다쏘시스템코리아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순한맛 '미스터 에브리씽'
정운성 대표는 대우자동차에서 기술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다 2005년 다쏘시스템코리아에 입사해 인더스트리 서비스 디렉터, 기술영업 디렉터, 대기업사업본부 본부장 등을 거쳐 2021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현장의 기술직부터 기술영업, 이어 전체 영업까지 총괄한 후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산 역사이자 모든 영역을 속속 꿰뚫고 있는 순한맛 '미스터 에브리씽'인 셈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정운성 대표는 부드러운 자세로 직원들을 대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인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보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커리어 자체가 다쏘시스템코리아라는 회사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어진 것 같다"면서 "특히 글로벌의 핵심 기술 솔루션을 한국 기업들에게 기민하게 소개하고 접목하려면 본사와의 관계도 중요하며,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다쏘시스템코리아와 한국의 인연은 길고 깊다. 실제로 정 대표는 "다쏘 항공에서 항공기 안전 테스트 등을 안전하게 진행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것이 다쏘시스템의 시작"이라며 "1981년 다쏘시스템이 탄생한 후 불과 2년 후인 1983년 다쏘시스템코리아가 한국에서 출범해 사업을 시작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_다쏘시스템_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이 볼보자동차 전기차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10년 진화의 끝은 '무한대'
다쏘시스템의 기술 진화는 10년을 주기로 진화를 거듭한다. 당장 1980년대 3D캐드 탄생, 1990년대 보잉777의 산파 역할을 자임한 디지털의 시대를 넘어 데이터의 중요성에 눈을 뜬 1990년대에서 2000년대초까지 약 10년을 주기로 다쏘시스템과 다쏘시스템코리아의 기술 혁명은 착실한 진화의 나선을 걸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키워드는 '확장'이다. 정 대표는 "2000년대 초까지 다쏘시스템코리아가 추진한 것은 제조업 기반의 제품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이라면 그 다음은 인프라와 사람(휴먼)"이라며 "자동차나 항공기 등 제품의 버추얼 트윈을 넘어 그 제품이 실제 움직이고 작동하는 공간인 인프라, 나아가 휴먼 버추얼 트윈의 영역까지 나아가는 것이 다쏘시스템코리아의 비전"이라 말했다. 구체적으로 12개의 주력 산업군이다.

정 대표는 "항공우주 및 국방, 비즈니스 서비스, 건축 및 엔지니어링, 생명과학 헬스케어, 산업장비, 하이테크, 도시 및 공공 서비스, 조선 및 해양, 자동차와 모빌리티, 에너지와 소재, 소비재, 홈 라이프 스타일 등의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액션플랜은 선명하다. 정 대표는 "자체적인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는 한편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중"이라며 "휴먼 버추얼 트윈을 완성하기 위해 임상 실험회사까지 인수해 인간의 장기를 3D 가상화로 구현해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품 분야의 경우 버추얼 트윈이 어느정도 완성수준에 올라왔다고 자부하며, 특히 휴먼은 물론 인프라 영역에서도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원도 영월군과의 협업이다. 정 대표는 "인구 유출 등으로 소멸위기를 겪고있는 영월군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관광 건축물을 대거 계획하는 상황에서 다쏘시스템코리아는 관광의 특성상 건축 난이도가 높은 건축물들을 3D 버추얼로 구축, 예산 낭비와 시행착오를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가상과 실제의 차이를 제로(0)로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 공공 기관과 의미있는 성과를 많이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사진=다쏘시스템코리아

버추얼 트윈, 플랫폼, 데이터, 그리고 생성형 AI
돌이켜보면 다쏘시스템코리아의 버추얼 트윈, 나아가 플랫폼에 기반한 데이터베이스 로드맵 및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전략은 마치 미래를 내다본 것처럼 딱딱 들어 맞는다. 

무슨 뜻일까. 다쏘시스템코리아가 추구하는 버추얼 트윈 비즈니스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 대표는 "버추얼 트윈은 특정 형상을 가상화시켜 두 개의 '싱크'를 맞춘다는 점에서 디지털 트윈과 유사하다"면서도 "디지털 트윈은 이미 존재하는 공장 등의 실제 형상을 가상화시켜 과거를 읽어 현재의 이슈에서 인사이트를 잡아낸다면, 버추얼 트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먼저 가상화시켜 싱크를 맞춘 후 운영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디지털로 옮기는 디지털 트윈과 비교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디지털로 옮기는 버추얼트윈은 더욱 방대한 디테일과 로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존재하는 것을 디지털로 복사하는 것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디지털로 옮기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디테일과 로직은 필수다.

여기서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신의 한수를 둔다. 정 대표는 "미래지향적 버추얼 트윈을 완성하려면 훨씬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에, 2013년 당시에는 생소했던 플랫폼이라는 개념을 소프트웨어에 도입했다"면서 "다쏘시스템코리아가 플랫폼을 제시한 후 그 위에 다양한 앱을 올려 이들을 연결해 유기적인 연결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다쏘시스템코리아의 구상이 단순한 수요공급조절의 플랫폼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정 대표는 "플랫폼에 올라가는 파일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면서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파일이 데이터베이스로 연결되어 유기적인 시너지를 내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조는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필연적인 위력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그는 "고객들 입장에서 다쏘시스템코리아는 단일한 플랫폼을 중심으로 잘 정돈되어 구축된 데이터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셈"이라며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존재감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처음부터 AI 시대를 예견하고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플랫폼을 중심으로 데이터베이스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구축한 덕에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생성형 AI 시대가 제시하는 달콤한 과실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다. 정 대표는 "최근 미스트랄AI와 협력해 고객들에게 LLM(Large Language Model)을 제공하는 등 AI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AI 전략을 과감하게 도입할 수 있는 배경에는 다쏘시스템코리아의 플랫폼 전략이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AI는 아직 초반이고 증명해야 할 것도 많다. 다만 정 대표는 "다쏘시스템이 추구하는 AI는 B2B AI며, 이는 조금의 오차도 용납될 수 없는 AI"라면서 "궁극적으로 사람을 배제하지 않은체 AI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정교하고 출처가 명확한 AI 기술을 가진 미스트랄AI와 함께 의미있는 기술협업을 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이는 다쏘시스템  3D 설계 소프트웨어인 카티아 고도화에도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2024년 성과를 공개하는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사진=다쏘시스템코리아

벨류체인으로 간다
다소시스템은 특유의 플랫폼 전략에 생성형 AI 전략이 가동하는 한편, 자체적인 클라우드 전략을 중심으로 벨류체인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 대표는 "AWS와도 협력해 다양한 영역에서 버추얼 트윈을 가동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OEM과 그 주변부의 협력사들을 하나의 벨류체인에 묶어 그들에게 원만한 데이터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는전략을 전개하는 중"이라 말했다.

다쏘시스템이라는 생태계 내부에서 자동차, 방산 등 다양한 영역의 파트너들이 모여 유기적인 시너지를 내는 전략이다. 정 대표는 "벨류체인으로 비즈니스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물론, 대기업(OEM)과 중소기업(부품사) 등의 동반성장을 끌어내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쏘시스템코리아의 버추얼 트윈 존재감이 더 강력해지는 순간이다. 정 대표는 "버추얼 트윈은 디지털 트윈과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꾸준히 발전할 것"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 버추얼 트윈이 시장의 진보를 이끌어낼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정 대표는 "12개 주력 산업군 중 자동차 분야에서 특히 성과를 많이 냈으며, 조선 분야에서는 HD현대와 차세대 조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방산에서는 현대로템 등과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면서 "특히 2024년에는 강원도 원주시, 충청남도 천안시 등 지자체들과 함께 공공 영역에서 협업하는 사례가 많았으며 2025년에도 비슷한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어 "다쏘시스템은 제조업에서 시작해 이제 인프라, 공공,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제조업의 중요도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특히 중국 제조업의 반격이 거세진 상황에서 우리의 제조업을 더 강화하려면 버추얼 트윈과 같은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야 하며,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이를 위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들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신 글로벌 기술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