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의 롯데 유통군 “구조조정, 속도가 관건”[포커스]
유동성 확보 총력, 점포‧토지 매각 수순 전국 각지 쇼핑몰 개발사업…추진 빨라야
유동성 위기설로 홍역을 치른 롯데그룹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렌터카업계 1위 롯데렌탈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소유한 롯데렌탈 지분 56.2%를 1조6000억원에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케미칼도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회사채 안정성 확보에 나섰다. 롯데칠성음료 부지 등 서울시 내 알짜 토지자산 매각도 언급된다. 유통분야에서는 유통군 중심인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유통 1번가’ 명성을 되찾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거듭된 희망퇴직, 인력 쇄신 주목
먼저 구조조정은 인적 쇄신부터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정기 인사에서 전체 임원수를 22% 축소했다. 인사 칼바람에도 롯데쇼핑은 김상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정준호 대표, 강성현 대표 3인 체제를 유지했다. 다만 내부는 전운이 감돌았다.
우선 실적 저하 백화점을 중심으로 지점장이 퇴출됐다. 부산본점을 비롯해 대구점, 광주점, 평촌점 등이다. 각 점포의 2022년 대비 지난해 매출 신장률은 소폭 증가한 평촌점(0.6%↑)을 제외하고 ▲대구점(-9.3%) ▲광주점(-7.9%) ▲부산본점(-1.0%) 등의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경기에 축소되는 명품 매출에 관련 사업 강화를 위해 2022년 영입한 지방시코리아 지사장 출신 이효완 전무도 짐을 싸게 됐다.
올해 인력 구조조정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됐다. 최근 반년만에 두번째 희망퇴직을 결정지은 롯데온을 비롯해 롯데면세점(8월), 세븐일레븐(10월), 롯데호텔앤리조트(11월) 등이 올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 중에서 세븐일레븐은 창사 36년만에 첫 희망퇴직을 받아 충격을 줬다. 롯데그룹 측은 희망퇴직이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인력 감축과 재배치가 포함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실 매장 매각
지난달에는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이 매각 대상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예상 매각가는 2000억~3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이외에도 올해 6월 폐점한 롯데백화점 마산점을 비롯해 저성과 매장이 매각 대상으로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백화점 매출 기준 60위 이하 매장은 센텀시티점(66위)과 마산점(70위)을 제외하고 미아점(60위), 건대스타시티점(62위), 상인점(67위), 관악점(68위) 등 4곳이 있다.
강도 높은 매각계획은 코로나19 위기가 닥친 2020년 롯데쇼핑의 고강도 구조조정과 닮아있다. 같은해 롯데쇼핑은 강희태 전 부회장의 진두지휘 하에 전국 700여개 오프라인 점포의 30%에 해당하는 200개를 축소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가전양판점 업황 축소로 롯데하이마트도 2019년말 정점(466개)을 찍고 매장을 줄여 지난 9월말 기준 327개점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알짜 자산’이 포함됐다는 데 있다. 지난달 28일 기업설명회에서 롯데그룹은 L7과 롯데시티호텔 2~3곳 매각으로 약 6000억원의 자금 조달 계획을 밝혔다. 이 중 L7은 서비스 고도화와 함께 젊은 감각을 강조한 브랜드로 호텔롯데 차세대 엔진으로 통했다. 호텔롯데가 지난 6월 시카고 진출 당시 선택한 호텔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치를 짐작할 만하다.
토지 가치 재평가
롯데의 히든카드로 평가받는 ‘땅’도 재평가 수순을 밟는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현재 그룹 내 부동산 가치는 총합은 56조원 수준이다. 서울 시내 알짜 부지 3곳만 더해도 자본이 4조→14조원 상당으로 10조원 이상 증가한다. 롯데그룹으로서는 현금으로 바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든든한 자산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롯데월드타워(서울 송파구, 32만8350㎡) 장부가액 1조4000억원, 시장평가액 약 4조4000억원 ▲롯데칠성음료 부지(서울 서초구, 4만3438㎡) 4000억원, 2조6000억원 ▲롯데호텔 본점(서울 중구, 31만9008㎡) 1조2000억원, 약 7조원 등이 있다. 지난 11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서초구에 위치한 롯데칠성음료 부지를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토지는 자산재평가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자산은 자본과 부채를 더해 책정되기 때문이다. 유형자산에 속하는 토지 가치가 늘어나면 전체 자산이 증가해,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부채비율 조정만으로도 재무건전성이 향상돼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달 28일 기관투자자를 위한 기업설명회(IR)에서 2009년 이후 15년 만에 7조6000억원 상당의 토지자산 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계열사 선택과 집중 본격화
롯데 유통군에서 구조조정에 집중하고 있는 곳은 면세점, 편의점, 이커머스 부문 계열사다. 호텔롯데의 매출 80% 이상을 책임지던 롯데면세점은 업황 악화로 올해 3분기말 기준 65.41%로 점유율이 대폭 축소됐다. 사정이 이렇자 지난 6월 비상경영에 돌입한 롯데면세점은 롯데월드타워 매장 영업을 종료하는 등 임차료 줄이기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호텔롯데의 지급임차료는 3228억원으로 영업이익(1326억원)의 2배를 훌쩍 넘어설 정도다. 일각에서 인력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글로벌 매장 축소가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도 올해 3분기 적자전환을 하는 등 경영 악화로 고전 중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2018년부터 임차해 있던 도심 내 중구 시그니쳐타워에서 보증금과 임차료가 더 저렴한 강동구 이스트센트럴타워로 사옥을 옮겼다. 코리아세븐의 실적 악화는 올해 3월 합병을 마무리한 미니스톱 인수 시너지가 나지 않은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코리아세븐은 지난해 판매비와관리비 비중이 매출액(5조6918억원)의 20.3%로 높은 수준으로 내년에 이 부분의 축소를 목표로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커머스 부문 롯데온은 사업 철수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 13일 롯데온은 근속 2년 이상 사원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공지했다. 지난 6월 첫 희망퇴직을 받은 후 반년 만이다. 당초 롯데 식품‧유통군과 시너지를 기대했으나 사업 4년째 요원한 상태다. 올해 1~3분기 누적 기준 615억원의 영업손실, 4년간 5000억원 상당의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매각이나 사업정리 지적도 제기된다.
신사업 기대↑, 투자비가 문제
롯데가 긴축 재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놓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복합몰 사업이다. 지난 12일 롯데쇼핑은 경영 효율성 제고를 이유로 완전자회사인 롯데인천타운을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합병기일은 내년도 2월 18일이다. 롯데인천타운은 인천 내 알짜 지역인 구월농산물도매시장 부지 일대를 ‘인천판 롯폰기 힐스’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통해 롯데가 추진하는 인천 개발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롯데그룹이 전국에서 추진하는 굵직한 개발사업이 인천을 포함해 3~4개로 상당하다는데 있다. 롯데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부산광역시 중구에 ‘부산롯데타워’를 건설 중이다. 대구에서도 ‘타임빌라스수성’을 이달까지 착공하고 2026년 6월까지 준공한다는 목표다. 지역별 사업비만 각각 1조원과 7500억원 상당으로 2조원에 육박할 정도다. 2028년 완공 계획으로 개발 중인 서울 상암 DMC 미래형 복합쇼핑몰은 이미 토지 비용으로 2000억원이 투입됐다. 사업 기간도 향후 2~4년에 집중돼 있어 사업비 마련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유통군 이외에도 바이오, 케미칼 등 사업 부문에서 투자를 확대 중이다.
실제 신용평가사도 롯데의 투자에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지난해 3월 NICE신용평가의 ‘투자확대 진행 중 나타난 실적저하, 롯데그룹의 신용위험은?’ 리포트에 따르면 “유통부문 및 호텔부문 모두 코로나 완화에 따른 매출액 및 수익성 회복이 나타나고 있으나, 소비심리 저하, 온라인 소비 증가에 따른 매출 정체 등으로 인하여 수익성 개선 수준은 제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매출 정체 극복을 위한 투자, 계열관련 자금소요 등에 따라 유통 및 호텔부문의 높은 재무부담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구조조정과 함께 투자를 추진하는 롯데의 사업 방향성에는 합격점을 줬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매업의 미래 중 하나가 ‘국내외 서비스로서 유통(RaaS, Retail as a Service)’인데 롯데가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인천 등지의 개발 사업을 통해 이러한 비전을 내세운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다만 소매 명가로서 포지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업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