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 5회 우승’ T1…정상 재정복의 비결은?

선수단부터 감독 코치진까지 한 마음으로 우승 향해 달려 모기업 SK 탄탄한 지원 뒷받침 e스포츠 파급효과 ‘기대 이상’

2024-11-04     박상준 기자
​T1 선수단. 사진=라이엇 게임즈T1 선수단. 사진=SK

4시드의 기적이 일어났다. 챔피언의 기억을 잊지 않은 제왕이 또다시 왕관을 썼다. 한국의 T1이 2024년에도 리그오브레전드 세계 최정상에 서며 전무후무한 5회 우승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별들의 전쟁, 2024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월즈)이 11월 3일 (현지시각) 영국 런던 O2아레나에서 성황리 마쳤다. 지난 1년간 치열한 경쟁을 이어온 각 리그 최상위 팀들이 총출동해 챔피언을 가린 가운데, 한국의 T1이 LPL(중국 리그) 1시드 BLG를 상대로 접전 끝에 승리하며 우승을 달성했다.

언제나 최고는 아니었고, 암흑기로 불리는 부진했던 시기도 있었다. 월즈 출전 전 2024년 정규시즌도 서머리그 3위에 그치고, 월즈 선발전에선 디플러스 기아에게 밀려 4시드로 간신히 출전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나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T1이다. 어떻게 가능했던 일일까.

‘제오페구케’부터 감독 코치진까지 제 몫 다해

결국 T1의 선전의 중심엔 ‘선수’가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데뷔해 지금까지 T1의 미드라인을 맡고 있는 ‘페이커’ 이상혁의 존재감이 빛난다. T1이 기록한 5번의 우승은 모두 이상혁이 주전으로 뛴 해다.

이상혁은 이번 월즈에서도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모든 팬과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MVP다. T1이 승리한 모든 세트에는 이상혁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1세트와 3세트를 중국 2세트 사일러스를 기용하고 ‘오너’ 문현준의 녹턴과 함께 상대 진형을 파고들며 구도를 붕괴시켰다.

4세트는 흡사 구국의 영웅이었다. 초반부터 불리하게 시작하며 시종일관 밀리던 T1이지만 라칸의 궁극기를 훔친 이상혁의 사일러스가 상대 딜러진을 묶는 절묘한 진입을 선보이며 단번에 역전, 경기를 풀세트 접전으로 끌고 갔다.

마지막 5세트에서는 갈리오를 꺼내고 T1이 불리한 교전마다 끝까지 살아남아 상대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왜 ‘전설’인지 여실히 증명했다.

MVP를 수상한 페이커 이상혁. 사진=라이엇 게임즈

이번 우승으로 이상혁은 리그오브레전드 e스포츠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여럿 세웠다. 세계 최초 월즈 500킬, 최초 월즈 5회 우승 선수, 1시드부터 4시드까지 모든 시드로 출전해 우승한 최초의 선수까지 다양하다.

함께 로스터를 구성한 ‘제우스’ 최우제, ‘오너’ 문현준, ‘구마유시’ 이민형, ‘케리아’ 류민석도 모두 자신의 역할을 100% 소화했다. 한국 탑라이너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이던 BLG ‘빈’ 천쩌빈을 상대로 시종일관 앞서는 모습을 보였고, 문현준은 밀리는 게임에서도 홀로 분전하며 팀의 ‘상수’로 활약했다. 이민형은 초중반 홀로 라인에서 생존하면서도 무난하게 성장해 팀의 후반을 담당했으며, 류민석은 각 라인 시야 장악부터 변수 창출까지 ‘서포터’의 정석을 보였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과 코치진의 날카로운 밴픽(챔피언 금지·선택)도 한몫 했다. 감독을 대신해 밴픽을 도맡은 ‘톰’ 임재현 코치는 마지막 5세트 전략적으로 불리한 레드팀에서 최선의 밴픽을 선보이며 상대의 모든 픽을 카운터(상성)로 응수했다.

감독 코치진부터 선수단, 중심인 이상혁까지 유기적으로 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 강적 BLG를 꺾고 세계 최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SK그룹이 그리는 글로벌 e스포츠 리더

선수단 외적으로도 수많은 도움이 있었다. 특히 모기업 SK그룹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우승의 숨은 공신으로 주목 받는다.

최태원 SK회장은 T1 우승 직후 선수단에 축전을 보내며 “여러분의 패기와 팀워크가 전 세계 팬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이번 우승은 대한민국 e스포츠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말했다.

T1은 2024년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T1이 창단된 2004년은 e스포츠 시장이 많이 커진 현재와는 달랐다. 현재 월즈는 누적 시청자만 5억명을 기록하며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SK를 비롯해 한화생명, KT, 농심 등 다양한 대기업들이 저마다의 구단을 창단하고 후원하는 시대다.

하지만 2004년은 아직 대한민국에 e스포츠 문화가 완연히 꽃피우기 전인 시기였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팀으로 시작한 SK는 2012년 리그오브레전드 e스포츠에 가능성을 보고 창단을 시작했다. 특히 2팀으로 창단한 ‘SKT T1 K’는 오늘날 T1이 되며 무수히 많은 타이틀을 섭렵했따. 창단 멤버 이상혁은 이미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사 ‘라이엇’에서 헌정 뮤직비디오와 스킨(챔피언 치장 아이템)을 제작할 정도로 게임의 아이콘이 됐다.

SKT는 e스포츠협회 회장사로 활동하며 국내 e스포츠 환경을 다져왔다. 동시에 업계 최초로 유망주 시스템을 도입해 최우제, 문현준, 이민형 같은 우승 멤버이자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다.

SKT의 지원 아래 이들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 T1의 유니폼을 입고 호흡을 맞추면서 3회 연속 월드 챔피언십 결승 진출,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왕조를 세웠다. 각각의 게임 닉네임 ‘제우스’ ‘오너’ ‘페이커’ ‘구마유시’ ‘케리아’의 앞 글자를 딴 ‘제오페구케’는 팬들에게 새로운 왕조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T1 선수단. 왼쪽부터 '구마유시' 이민형, '페이커' 이상혁, '오너' 문현준, '케리아' 류민석, '제우스' 최우제. 사진=라이엇 게임즈

T1은 2019년 미국 거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 컴캐스트가 공동주주로 참여하며 글로벌 e스포츠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더불어 SK스퀘어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팀의 핵심인 이상혁과 꾸준히 재계약 하며 팀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브랜드’ T1의 기업가치는 자체로 눈부시다. 선수들의 스타성과 컴캐스트의 글로벌 미디어 경험을 결합해 매출 성장률 38% 기록, 지난해 346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2024년 매출 성장세는 더 가파를 전망이다. 굿즈 판매 증가율은 60% 이상으로 기대되며, 유료 멤버십 가입자는 이미 두 배로 늘었다.

탄탄한 글로벌 팬층도 확보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8강, 중국 TES와 경기 후 승자 인터뷰 중인 이상혁을 향해 현지 만원 관중이 한마음으로 ‘페이커’를 연호한 모습은 현재까지도 회자된다.

T1은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e스포츠 리딩 플레이어’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 삼고 있다.

e스포츠, 단순 게임대회 아닌 ‘문화산업’으로

리그오브레전드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롤드컵(월즈)’과 ‘페이커’는 안다는 말이 있다. 리그오브레전드 e스포츠가 단순 게임대회를 넘어 하나의 문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다.

이번 결승이 열린 영국 런던의 O2 아레나는 1만4500명 관중으로 가득 찼다. 결승전이 열리는 것만으로도 현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영국 런던 시장 직속 홍보기관인 런던앤드파트너스는 롤드컵 결승 개최에 따른 런던이 누리는 직접적 경제효과가 1200만파운드(약 214억원)를 넘는다고 추산했다. 홍보 마케팅 등 부가효과를 고려하면 2000억원을 상회하는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영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영국이 2023년 리그오브레전드의 또다른 국제대회인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을 개최한 데 이어 이번 월즈 결승까지 개최하며 2025년까지 5000억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월즈 시청자 수는 1억명에 달한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빌리빌리를 통해 시청한 4억명을 합치면 총 5억명 이상의 시청수를 확보한 셈이다. 결승전 최고동시시청자수(PCU)는 지난해 640만명을 상회하는 694만명을 기록했다.

개최국 브랜드 가치 제고에도 한몫 한다. 이번 월즈 우승팀 T1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영국의 유명 관광지와 축구팀 ‘토트넘’ 등을 언급하며 현지 관광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각국에서 모인 취재진 200여 명이 만드는 기사와 함께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다. 각 세트 시작 전후론 경기장 인근 런던의 풍경이 중계화면을 통해 5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송출됐다.

각국이 e스포츠 국제대회 개최에 적극적인 이유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7월 수도 리야드에서 e스포츠월드컵(EWC)를 거대한 규모로 개최했다. 사우디는 라이엇게임즈가 3자 국제대회 개최에 부정적이었음에도 리그오브레전드를 경기 종목에 포함시켰고, e스포츠의 상징 T1과 이상혁이 우승하는 그림을 만들며 대회 인지도와 시청자 수를 대거 확보할 수 있었다.

2025년에는 새로운 공인 리그오브레전드 국제대회 ‘퍼스트 스탠드’가 만들어진다. 지역 간의 경쟁을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요소를 적용하기 위해 기획된 대회로, 5개 지역 스플릿 1 우승팀들이 출전하는 국제 대회다. 첫 개최는 한국이 따냈다. 3월 10일부터 16일까지 한국 서울에 위치한 롤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다.

퍼스트 스탠드 로고. 사진=라이엇 게임즈

또다른 대형 국제대회 MSI는 캐나다가 개최권을 따냈다. 5개 지역에서 선발된 10개 팀이 참가하며, 6월 말 열릴 예정이다. 특히 캐나다는 국내 마땅한 리그오브레전드 강팀이 없음에도 개최 의지를 보여 리그오브레전드 e스포츠 자체의 인기를 증명했다.

이 모든 여정의 마무리, 2025년 월즈는 가장 많은 팬층을 보유한 충국 청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