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이 끝난 고려아연 공개매수…장기전 시나리오는?
기보유 자사주 우호지분 처리 가능성 주목돼 품절주 등극 후 주가 고공행진…장내매수 부담 높아져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MBK파트너스(MBK)·영풍 연합이 벌인 주식 공개매수전이 승자 없이 끝났다. 조 단위 자금을 동원했으나, 양측 모두 확실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향후 경영권 분쟁은 주주총회에서의 본격적인 의결권 확보 대결로 전환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10월 23일 마감한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총주식의 11.26%인 233만1302주를 획득했다고 28일 공시했다. 자사주는 9.85%이며, 전량 소각 예정이다. 우군인 베인캐피탈이 나머지 지분 1.41%를 확보하며 고려아연 측 우호 지분은 기존 33.99%에서 35.4%로 높아지게 됐다.
앞서 MBK 연합은 지난 10월 14일 공개매수를 먼저 마감한 영풍·MBK 연합은 확보한 지분율은 38.47%다. 이번 고려아연 공개매수까지 종료되며 양 측의 지분율 차이는 약 3%로 백중세를 유지하게 됐다.
고려아연으로선 당초 66만원에서 시작한 공개매수가를 89만원으로까지 올리며 경영권 적극 방어에 나섰으나, MBK 연합에 5% 가량을 빼앗기며 반쪽짜리 승리에 그치게 됐다.
다만 영풍정밀을 놓고 벌인 공개매수전에서는 고려아연이 승리했다. 영풍정밀의 고려아연 지분은 1.9%지만, 고려아연 자사주 소각을 고려하면 2.1%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MBK 연합에 지분율이 다소 밀리는 고려아연이 영풍정밀을 놓쳤다면 패색이 짙어질 수도 있었다.
고려아연이 이번 공개매수에서 획득한 자사주 9.85%를 소각하면 전체 주식 수는 2070만주에서 1800만주로 줄어들게 된다. 이를 반영하면 고려아연과 MBK 연합의 지분율은 동시에 올라간다. 증권가에서는 고려아연 40%, MBK 연합 42%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 중이다.
결국 고려아연에게는 주주총회 전까지 우호지분을 1%라도 더 늘려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다. 몇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먼저 기보유 자사주 처분 여부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를 통한 자사주 매입 이전부터 2.41%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2024년 초 한국투자증권과 체결한 자사주 신탁계약에 따른 물량이다. 1차에 1.4%, 2차에 1.01%를 매입했다. 이를 우호지분에 처리해 주주총회 전까지 의결권을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금융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복수의 자사주 신탁계약이 있는 경우 가장 최근 계약 체결일을 기준으로 6개월간 신탁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자사주 처리를 위해선 신탁계약을 해지하고 증권사로부터 주식 현물을 돌려받아야 한다. 신탁해지가 풀리는 시기는 2025년 4월 말이다.
다만 자본시장법상 임직원 대상 상여금으로 자기주식을 교부하거나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하는 경우 6개월 제한에서 자유롭기에 고려아연의 행보가 중요해졌다.
현재 증권가에서는 실질적으로 1차 신탁 물량인 자사주 1.4%까진 추가 의결권으로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1월 초 신탁계약 종료기 때문이다.
남은 5% 남짓의 유통주식을 누가 차지하느냐도 관건이다. 이미 공개매수전으로 품절주가 된 지 오래다. 통상 유통물량 20% 미만인 경우 품절주라 부른다. 실제로 28일 기준 고려아연 주식 거래량은 12만1892주로, 전체 유통물량의 0.57%에 그쳤다.
소량의 유통물량과 향후 분쟁 가열 기대감이 겹치며 고려아연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28일 종가 기준 130만1000원이다. 공개매수전 하루 전인 9월 12일 종가 55만6000원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뛰었다. 장내 추가매수를 해서라도 의결권을 더 확보하고 싶지만, 높아진 주가로 남은 물량의 총액은 1조원을 상회한다. 이미 조 단위의 자본조달을 거친 양 측으로서는 부담되는 금액이다.
결국 진검승부는 주주총회에서 벌어지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MBK 연합은 속전속결을 택했다. 고려아연 공개매수 청약 물량이 공개된 28일, 고려아연에게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했다. MBK 연합 측이 추천하는 14명의 이사진 선임과, 집행임원제도 전면 도입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요구했다.
영풍이 제시한 기타비상무이사 2인은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 부사장이다. 나머지 사외이사 후보 12인에는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손호상 포스코 석좌교수, 이득홍 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다만 MBK 연합이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하더라도 최윤범 회장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임시주총은 열릴 수 없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진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인사 12명과 MBK 연합 측의 장형진 영풍 고문 1인으로 구성돼 있다.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최대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고려아연으로선 주총 소집이 늦을수록 대응안 마련이 편해지기에, 임시주총 반려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경우 영풍·MBK 연합이 법원에 주총 소집 허가를 신청해야 하므로 실제 주총 시기는 내년 초 또는 내년 3월 정기주총까지 밀릴 수 있다.
고려아연 지분 7.83%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지난 주주총회에 이어 이번 분쟁에서도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당초 국민연금은 고려아연의 주주총회에서 우호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지난 5년간 주총 안건의 92.5%에 동의했다.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고려아연 측의 배당 정책에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다만 여느 때와 달리 경영권 향방이라는 초유의 리스크가 걸린 일인 만큼, 국민연금의 의중을 속단하긴 힘들다.
고려아연은 국민연금의 선택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국민연금의 판단은 국민연금의 몫이다”면서도 “국정감사 때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과 수익률 제고 등의 관점에서 판단을 하겠다고 했으니 그것을 믿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 10월 18일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와 관련한 의결권 행사에 대해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고려아연은 이날 영풍의 임시주총 소집 청구에 대해 “회사의 앞날을 망칠 게 뻔한 MBK와 영풍의 적대적M&A로부터 회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의결권 확보 노력으로 임시주총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 것”이라며 “기어이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한 MBK와 영풍은 쓰디쓴 결과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