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모집인 ‘1사 전속의무’ 폐지…과도한 영업 경쟁 우려”

금융사 통제력 감소…관리‧감독 체계 변화 불가피 “모집인, 대출 보조할 뿐…가계대출 증가 주범 오해”

2024-09-23     강예슬 기자
23일 오전 은행회관에서 열린 ‘대출모집인 제도 발전 방향’ 세미나에서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가운데)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강예슬 기자

대출모집인 1사 전속의무를 폐지하면서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불건전 영업행위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금융당국은 대출 중개업자에 대한 기존 관리‧감독 체계에 많은 변화가 생길 가능성에 주목하는 상황이다.

이길성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총괄국장은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대출모집인 제도 발전 방향’ 세미나에서 대출모집인 1사 전속의무 폐지에 따라 “규제 폐지 초기 대출 중개업체가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과도한 영업 경쟁을 하고,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대형화‧과점화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며 “금융회사와 대출 중개업체의 갑을 관계가 바뀌면서 소비자의 편익을 저해하는 불공정 영업행위가 많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모집인 1사 전속의무는 대출모집인이 대출 모집업무 위탁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금융회사를 1곳으로 제한하는 제도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직속 기관인 규제개혁위원회는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업계 경쟁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대출모집인의 1사 전속의무 폐지를 권고했다.

이 국장은 “일부 은행의 경우 신규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대출의 50%에서 많게는 7~80% 정도까지를 대출모집인에게 의존하는 상황”이라며 “은행권 대출에서 대출 중개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중개 수수료가 상승하면서 대출금리도 올라 차주의 부담도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출모집인 1사 전속의무를 폐지하면 대출 중개법인이 대형화‧과점화하면서 크게 성장하고, 금융사의 통제력은 전보다 떨어질 거라고 본다”라며 “기존 금소법에 따른 관리‧감독 체계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대출모집인 제도 현황 및 발전 방향’에 대해 발표한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소비자연구실장도 “대출모집인 1사 전속의무 폐지 시 복수의 상품을 동시에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편익이 증대될 수 있다”면서도 “여러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충분히 대응해 소비자 보호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규제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전속의무를 폐지했던 보험 중개 시장에서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제도 도입 후 불건전 영업행위가 발생했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개별 모집법인의 1사 전속의무는 폐지하되, 단기적으로 업권 간 교차모집은 금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2금융권 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차이 등 업권 간 규제 차이 등을 활용한 과잉 대출 권유 발생 가능성을 고려해 대출 모집법인이 각 금융업권의 대출만 취급하도록 규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속 법인에 대해서는 강화된 규율 체계를 도입하되, 온라인 대출 모집법인과 전속 모집법인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항은 모두 적용해 규제 차익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실장의 주장이다.

그는 “대출모집인 ‘개인’은 금융사 혹은 모집법인을 통해 1사 전속의무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모집인 개인에 대해서도 복수 계약을 허용할 경우 금융사‧모집법인 간 관리책임이 불분명해질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모집인 개인에 대한 관리‧감독을 금융당국이 직접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1사 전속의무에 따른 우려 사항으로 ▲복수 상품 동시 비교에 따른 이해 상충 행위 발생 ▲모집법인 대형화로 중개 수수료 인상 압력‧금융회사 대상 우월적 지위 남용 가능성 ▲판매 경쟁 심화로 불완전판매 증가‧자격 미달 모집인 진입 등을 언급했다.

대응 방안으로는 ▲비교·설명의무 도입 ▲중개 수수료 비교·공시 ▲우월적 지위 남용금지 업무 수행 기준 신설 ▲모집인 일탈은 금융사·모집법인을 통해 관리·감독 ▲과잉 대출 방지 의무 신설 ▲내부통제 기준 강화 ▲소비자 보호 기준 마련 ▲자격시험 난이도 조정 ▲주기적인 보수교육 등을 제시했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소비자연구실장이 23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대출모집인 제도 발전 방향’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강예슬 기자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주요 은행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절반이 대출모집인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신규 전세자금 대출, 정책대출, 집단대출 포함 전체 주담대 잔액은 23조135억원으로, 그중 11조4942억원(49.9%)이 대출 모집인을 거쳤다.

이날 오프라인 대출 모집법인 대표자로 토론에 참여한 주은영 베스트엘씨 대표는 “최근 언론을 통해 대출모집인이 가계대출 증가세의 주범으로 지목됐는데 매우 큰 오해”라며 “대출모집인은 각 은행의 규정과 금리, 한도 내에서 대출 취급 업무를 도울 뿐 가계대출을 늘리는 데는 단 1%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밝혔다.

주 대표는 “온라인 대출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비대면 대출이 크게 늘었지만 100%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며 “금융 취약 계층이나 온라인 취약 계층 등을 위해 대출모집인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는 “1사 전속의무 폐지에 대해 여러 가지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공감한다”면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우수 대출 상담사 양성과 교육에 책임감을 느끼며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에는 “온라인을 통한 미등록 대출모집인의 무분별한 대출 광고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큰 상황”이라며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거나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