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온다 [ER인사이드]
서방 무기 앞세운 러 본토 진격...파죽지세 씁쓸한 서방, 노드스트림 파괴 논란에 미 대선도 변수
우크라이나군이 파죽지세로 러시아 영토로 진격하고 있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진격 11일째로 넘어가는 16일(현지시간), 국경에서 북쪽으로 약 11㎞ 떨어진 러시아 쿠르스크주 글루시코보 마을 인근 세임강을 건너는 다리를 폭파했으며 일부 지점에서 1∼3㎞ 추가 진격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외국군대에 본토진입을 허용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전선의 전투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면서 "전반적인 상황을 통제하는 중"이라 말했다.
셈법 복잡해진 서방
우크라이나군은 이번 러시아 진격으로 지금까지 쿠르스크주의 82개 마을, 면적으로는 1150㎢를 장악했다고 공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7월 31일 프랑스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절대 영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최근 중국을 방문한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을 통해 러시아와의 직접협상을 시사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동부전선에서 벌어지는 소모전의 양상이 심각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전격적인 '러시아 직공'을 택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고르 클리멘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은 지난 14일 “(공격으로 확보한 완충 지대는) 매일 적대적인 포격을 받는 우리 국경 지대 마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해당 지역의 영구 장악에는 선을 긋기도 했다. 결국 협상용이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가 모처럼 전쟁의 판을 흔들며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하는 가운데 서방의 셈법은 역설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진격을 시도하며 영국이 제공한 챌린저2 전차, 미국의 브래들리, 스트라이커는 물론 독일산 마다르 등 장갑차들을 대규모로 동원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무기들이 러시아 침공에 사용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장 영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불법 공격에 맞서 자위권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 본토 내 작전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그 외 다른 동맹국들도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며 양측의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태다. 자칫 서방의 무기를 사용한 우크라이나군의 작전으로 전쟁 장기화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쿠르스크 지역 침공 초기부터 배후에 서방이 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익명의 미국 관리는 로이터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의 작전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고 불만을 제기한 후 “조건을 밝히지 않고 러시아로 진격할수록 (미국의) 무기 정책은 더 복잡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상치않은 독일
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막대한 지원에 나서던 독일이 심상치않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등 현지 언론은 17일(현지시간)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추가 지원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액을 올해 80억유로에서 내년 40억유로로 줄인 상태에서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 미리 선을 그은 셈이다.
이리스-T(IRIS-T) 방공망 레이더를 생산하는 독일 군수업체 딜디펜스가 이미 방공 시스템 납품을 중단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막대한 지원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논쟁까지 벌어진 가운데 독일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1월 예산안에 위헌 결정을 내리며 부채한도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라 경고한 것이 결정타였다.
일각에서는 2022년 벌어진 노드스트림 파괴 사건의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소식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러시아의 전쟁수행자금을 벌어들이는 노드스트림을 파괴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가 나온 후 현지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진 것이 사실이다. 독일 검찰이 최근 노드스트림 파괴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우크라이나 다이빙 강사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한 가운데,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의 에너지 안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노드스트림 파괴 사건을 두고 유럽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물론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공식 부인했으며 독일 정부도 해당 사건이 우크라이나 지원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기습적인 러시아 공격에 있어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은 물론 미국에도 사전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며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던 차였다. 이런 가운데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불승인을 내린 것은 그 자체로 심상치않다는 평가다.
클라이막스가 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불확실성은 날로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진의'에 대해서 국제 외교가에서는 "짐작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17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전력 기반 시설에 대한 상호 공격을 중단하는 획기적인 합의에 대한 협상을 위해 카타르 도하에서 협상을 할 예정이었으나 6일 우크라이나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도했다.
전쟁이 시작된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간망을 정밀타격했고, 우크라이나도 쿠르스크주를 기습하면서 가스관 시설이 있는 수자 지역을 점령하는 등 '민감한 에너지 전쟁'을 벌인 바 있다.
여기서 양국이 카타르 도하에서 관련된 협상을 했다면 부분정전까지 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우크라이나가 기습작전을 통해 그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빼앗긴 영토를 찾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생각이 확고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도 달리 새로운 선택을 하기는 어려웠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확전을 자제하고 싶은 미국 등 서방에게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좌충우돌이 골치아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사전고지없는 전쟁, 노드스트림 파괴 사건 논란까지 겹치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분위기를 두고 '인과관계가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더욱 리스크를 키우는 상황'으로 보기도 한다.
영토 수복을 원하는 우크라이나와 양국의 치열한 에너지 전쟁에 따른 유럽 전체의 에너지 안보, 제어할 수 없는 전투 양상, 전쟁 피로증에 따른 서방의 지원 약화 등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전쟁이 소위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측할 수 없는 변곡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각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매듭짓는 최후의 '미장셴'은 11월 미 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