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노의 25일, 아쉽다 [ER인사이드]

전략적 오판 난무...더 신중했어야

2024-08-02     최진홍 기자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가 1일 조합원들에게 현업 복귀 지침을 전했다. 지난달 8일 총파업에 돌입한 이후 지난달 29~31일 사측과 임금 인상, 휴가 제도, 성과급 지급 방식 등을 논의했으나 결국 합의 불발에 그치자 장기 투쟁으로 전환한다는 설명이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장기 플랜으로 전환할 시점”이라며 “끝장 교섭 결렬로 파업 투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투쟁의 성공을 위해 지속 가능한 게릴라 파업과 준법 투쟁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총파업 선언 후 25일이나 지났다. 노사 합의가 불발되며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살아있다는 점은 불안하지만 최소한 총파업이 진행되는 것은 막았기에 다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AI를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막 시작되려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이재용 회장 자택서 시위하는 전삼노. 사진=연합뉴스

다만 '장기 플랜'으로 들어간 전삼노가 남긴 25일간의 상처는 깊고 아프다. 특히 전략적 오판이 뼈 아프다.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이재용 회장 자택 앞으로 몰려가 기자회견을 연 것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의 직접 해결을 요구하며 '이슈 파이팅'을 통해 사회적 이슈화로 파업 동력을 키우려 했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왔다. 사실 이 회장은 프랑스 파리 올림픽 출장으로 집을 비우지 않았나. 그럼에도 기어이 집 앞으로 찾아가 "회장 나와라"고 외친 것은 누가봐도 노조 특유의 투쟁공학적 접근에 불과하다. 

포털 뉴스 한번 검색하면 다 아는 내용을 전삼노가 몰랐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빈집으로 찾아가 주변 주민들에게 민폐까지 끼치며 이슈 파이팅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친 것은 명백한 전략적 오판이다. 오는 5일 대표 교섭권이 상실되는 마당에 마음이 급했겠지만 선은 지켰어야 한다. 심지어 총파업 집회에서는 이 회장에게 '바지 회장'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두고 이제 와 "해결하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략이 오락가락한다.

마지막 협상이 결렬된 것도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전략적 오판이다. 당초 전삼노는 △성과급 제도 개선 △노동조합 창립 휴가 1일 보장 △전 조합원 기본 인상률 3.5%(성과급 인상률 2.1% 포함 시 5.6%) △파업에 따른 조합원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을 요구했으며 사측은 이에 대해 △노조 총회 4시간 유급 노조활동 인정 △전 직원 50만 여가포인트 지급 △향후 성과급 산정 기준 개선 시 노조 의견 수렴 △연차 의무사용일수 15일에서 10일로 축소 등을 제시, 전삼노 안을 상당 부분 수용한 바 있다.

여기서 협상이 타결됐다면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삼노는 교섭 막판 삼성전자 임직원 자사 제품 구매 사이트인 '삼성 패밀리넷' 200만 포인트를 추가로 요구하며 판을 흔들었다. 사측은 50만원을 제시했으나 200만원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전략적 오판의 백화점이다. 당장 파업 과정에서 대리급은 400만원, 과장급은 500만원의 임금 손실을 봤기에 전삼노의 200만원 주장은 심정적으로 이해는 간다. 그러나 주요 요구안을 대부분 관철시켰음에도 막판에 200만원에 협상이 결렬된 것은 뼈도 내주고 살도 내주는 결과일 뿐이다. 더욱 냉정했어야 했다. 심지어 200만원 요구 자체가 노사 모두 동의하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전삼노가 5일 단체 교섭권을 상실하는 상황에서 막판 협상의 주도권은 일부 사측에 있었다. 조금 더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는가. 

결국 남은 것이 무엇인가. 총파업은 장기 플랜이 됐고, 협상 결렬에 따른 성과도 없으며 노조원들만 막대한 임금 손실 피해를 입었다. 명분과 실리 모두 잃었다. 나아가 앞으로의 정국 주도권은 더욱 사측에 넘어가게 생겼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이 1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직원 성과급 인상을 시사하는 한편 근원적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새로운 조직문화인 C.O.R.E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리 모두 잃어버린 전삼노와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차분히 대안을 제시하는 사측. 노조원과 직원들은 누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겠는가.

노동조합(勞動組合)은 근로자의 최후보루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의 주체이다. 나아가 근대 자본주의사회가 형성되는 과정부터 지금에 이르는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투쟁의 최전선에서 많은 사람들을 지켰다. 노조는 옳다.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수 많은 전략적 오판을 저지르면서 또 하나의 이익공유 카르텔이 되어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삼전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1등 기업이자 최고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는 삼성전자 노조가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한 번정도 돌아돌 필요도 있었다. 특히 외부에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 어떤 프레임을 들이댈 것인지 생각하며 전략적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억울하겠지만 더 신중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앞으로도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정당한 노조활동을 생각하면 더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