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경영-시에서 배우는 틈 경영

2008-12-24     이재훈 기자

시와 경영

시에서 배우는 틈 경영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 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속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하릴없이 구름이나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프고 내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 김기택 <틈>

요즘 시간 경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시간은 한자로 때 시(時)와 사이 간(間)이다. 한자를 보면 時와 時의 사이다. 말하자면 1시와 2시 사이 등을 의미한다. 이 사이는 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시간 경영은 곧 틈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시간을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달려있다면 이는 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패 여부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틈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까. 먼저 틈이 뭔지 아는 게 중요하다. 김기택 시인의 <틈>이라는 시에 따르면 틈은 ‘튼튼한 것 속에서 태어’난다.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서도 / 숨쉬고 돌아다닐 길’이 있듯 틈은 어디든지 존재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바빠도 철근과 같은 튼튼한 존재인 時와 時에 반드시 틈이 있다는 얘기다.
틈이란 것은 이처럼 매우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도 ‘빛을 우겨 넣고 / 버팅겨 허리를’ 펼 수 있다. 튼튼한 것의 어디든 그들을 비집고 들어가 ‘모두 금이 가게 하고 갈라지게 하고 무너지게’ 하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나약하지만 강한 존재’인 것이다.
이는 틈이란 기존의 자신을 일순간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를 창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틈에서 ‘새로운 나’를 창출할 것인가. 시적 리듬을 도입해 보라. 시적 리듬은 우리말로 가락이라고도 한다.
시에는 외형률이든 내재율이든 가락이 있다. 어디 시뿐인가. 산문에도 가락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번 긴 문장을 사용했으면 다음에는 중문이나 짧은 문장을 쓰는 게 좋다. 그래야 문장이 읽기 쉽고 명료하게 된다. 이것이 문장 길이의 섞음으로 만들어지는 문장의 가락이다.
이를 틈 경영에 그대로 적용해 보는 것이다. 수많은 시간 경영 혹은 시간 관리 책에 나오는 내용을 무작정 따라하다간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고 건강마저 해칠 수 있다. 이럴 때 이들 내용을 자신의 체질과 성향에 맞는 방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구성됐다면 이제 가락을 활용해본다.
CEO가 직원관리 할 때 늘 긴장만 시키지 말고 급격한 긴장과 적당한 긴장, 그리고 즐거움을 번갈아가며 줘야 한다.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면 이에 걸맞은 보너스와 휴가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직원에게 흥이 일어난다. 직원이 일하는 데 흥이 나면 회사의 발전은 저절로 이뤄진다. 이것이 가락을 활용한 틈 경영 방법이다.
CEO 자신도 늘 일에만 몰입하지 말고 굳건한 시와 시의 틈 속으로 가락이 흐르게 해야 한다. 그 틈의 가락은 자신이 목표하는 정점으로 더욱 빠르게 가게 하는 정보와 아이디어와 건강을 줄 것이다.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소 대표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