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 정면도전한 ‘승부사’ 전창원 빙그레 대표이사[CEO파일]
기업 인수로 단숨에 ‘빙과 2강’ 확정 유연한 사내문화로 선순환 구조 확립
날씨가 더워지며 주목 받는 기업이 있다. 바로 빙과회사다.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더위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 6월 10일 대구를 포함한 영남 8개 지역에서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일주일 빠른 수준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여름 폭염이 평년(10.2일)보다 일주일 가까이 많은 14~16일 동안 발생할 전망이다. 국내 빙과 양강 빙그레와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 실적이 주목되는 이유다. 빙과 양강 구도를 만든 것이 전창원 빙그레 대표이사다. 재무전문가인 전 대표는 철저한 분석에 따라 시장을 내다보고 판을 키워왔다는 평가다.
인구축소 대안…덩치 키우기
2010년대만 해도 빙과업계에서 빙그레의 위상은 지금보다 낮았다. 그 당시만 해도 롯데웰푸드, 해태아이스크림과 3강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2020년 빙그레는 별안간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며 단숨에 업계 1위, 매출 1조원을 찍었다.
잠잠하던 빙과업계는 빙그레로 인해 요동쳤다. 3강 체제 속에서 업계 1위 공고히 하던 롯데제과가 롯데푸드와 합병 카드를 꺼내들 정도였다. 2022년 롯데 빙과 계열사가 합병하고, 2023년 롯데웰푸드로 사명도 변경했다.
사실 빙그레의 해태아이스크림 인수에는 저출산으로 인한 고민이 숨어있다. 아이스크림의 주 소비층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저출산으로 주 소비층이 감소하는 시장 변화가 감지되자 대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가 ‘외형확장’이라는 분석이다. 외형확장은 구매와 유통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 대표는 2016년 최고재무책임자(CFO)이자 부사장을 담당하다 2019년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인수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양사 합병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외형성장과 함께 도약을 점치는 시선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소비층이 무너지며 매출과 이익 모두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심지어 합병 이듬해 빙그레는 희망퇴직까지 진행할 정도로 실적 타격이 컸다.
실제 빙그레는 해태아이스크림 인수 이후 매출 성장에도 영업이익은 난조를 보였다. 최근 5년간(2019~2023년) 매출액은 8783억→9591억→1조1474억→1조2677억→1조3943억원이다. 인수 전인 2019년에 비해 지난해 58.7%나 급증했다. 동기간 영업이익은 458억→398억→262억→394억→1122억원으로 조사됐다. 인수 초기 힘들었으나 4년만인 지난해 체질개선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빙과 수출 70%가 ‘메로나’
체질개선의 큰 공은 ‘메로나’가 세웠다. 메로나는 빙그레가 1992년 출시한 유제품 빙과류로 당시로서는 희귀한 멜론맛과 쫀득거리는 식감이 특징이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국내 아이스크림의 3분의 2가량이 메로나일 정도로 수출도 선전하고 있다. 미국 메로나 매출액은 ▲2018년 70억원 ▲2020년 160억원 ▲2022년 270억원 등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실적 성장이 기대된다.
수출도 전 대표 아래서 부쩍 성장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빙그레의 최근 4년(2020~2023년)간 아이스크림 수출액은 365억→427억→594억→688억원으로 우상향 기조다. 3년새 2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다. 빙그레 해외 법인인 중국 상하이, 미국, 베트남 매출도 2020년 710억원에서 지난해 1080억원으로 52.1% 증가했다. 지난해 해외 매출만 13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체 매출의 약 10%에 해당한다.
이경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외수출 매출액 성장률은 전년 대비 19.4%를 기록하는 등 마진레벨 개선 요인이 추가되는 사업포트폴리오의 방향성이 긍정적”이라며 “해외 수출의 경우 주요 지역에 대한 수출 물량이 상반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나 일부 분기 측면에서의 영업실적 변동에도 중장기 성장 기반으로서 유의미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연한 사내 문화…사내 복지도 好
2019년 전 대표가 취임하고 빙그레의 “워라밸이 좋아졌다”는 말이 나온다.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며 이른 금요일 퇴근이 일반화된 것이다. 빙그레 임직원은 월~목까지 좀더 일하고 금요일 퇴근 후 여가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됐다. 눈치 보지 않고 유연근무를 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내 문화의 유연함을 알리는 방증이다.
업무과정에서도 사내 문화의 면화가 감지됐다. 먼저 건배사와 상시 카톡방 개설이 금지됐다. 이는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전 임직원 20~30명을 선정해 만든 TF(Task Force‧임시 조직)팀에서 정한 사항이나 전 대표 취임 후 확실히 지켜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업무 카톡방도 필요할 때만 개설하고 프로젝트 마무리 후 없애는 문화가 정립됐다. 젊은 임직원들의 부담을 없애기 위해서다.
이렇게 유연한 근무환경 속에 나온 것이 바로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짐(빙그레우스)’ 캐릭터다. 2020년 혜성처럼 등장한 ‘빙그레 왕국’ 후계자 빙그레우스는 세계관을 통해 빙그레 히트 상품을 알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빙그레는 B급 유머로 인스타그램을 도배하고, 뮤지컬 형식으로 상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고객 반응도 상당하다. 빙그레 공식 유튜브에서 6월 20일 현재 관련 영상인 ‘메로나는 메로나 이상이다’(2022.5.2)가 824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메로나 공작이 자아도취에 빠져 춤을 추며 지난 30년간 메로나의 협업물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대부분 댓글에서 고객들은 공작의 모습에 깔깔 웃다가도 메로나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브랜드를 돌아본다. 상명하복식 사내 문화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마케팅 방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내 복지는 이전부터 전 대표가 신경 써 온 부분 중 하나다. 전 대표는 2001년 인재개발센터장 근무 당시 사원 이익분배제도를 도입했다. 부서별로 회사와 연간 목표이익을 설정해 초과 달성하면 초과금액의 10%를 회사가 연말에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이익분배제도와 동시에 성과를 낸 직원의 진급을 보장하는 ‘발탁인사제’도 도입했다.
2005년에는 임직원 대상으로 5억원을 훌쩍 넘는 이익분배도 이뤄졌다. 같은해 3월 이익분배 수여식을 열고 직원 98명에게 5억6000만원 상당을 수여한 것이다. 1인당 평균 570만원을 지급받아 화제를 모았다. 빙그레는 제도 적용을 영업‧마케팅‧연구직에서 전 직종으로 확대하고 지급율도 최고 10%에서 20%로 상향조정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사업다각화 측면에서는 평가가 갈린다. 전 사장은 취임 당시 ‘사업 모델 재창조’ 기치를 내걸고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관련 브랜드 ‘TFT’를 론칭하고 ‘비바시티’, ‘마노플랜’, ‘더: 단백’ 등을 선보였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식품업계를 비롯해 제약바이오업계까지 건기식 시장에 뛰어들며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