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동해 유전 논란...'잭팟' 터진 가이아나는 어땠나
가이아나, 해상 유전 개발로 GDP 3배 증가해 영일만, 가이아나 리자 지역과 유사한 트랩구조…가능성 있어 환경 문제·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수익 감소 등 변수 고려해야
산유국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 여겨지던 대한민국이 영해 원유 대량 매장 가능성에 들썩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국정브리핑을 통해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매장량이다. 천연가스는 전국민이 29년, 석유는 4년간 쓸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상업화만 성공한다면 막대한 국익이 뒤따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 단위 ‘로또’나 다름없다.
대형 발표에 국내외에서 우려와 의문점이 제기되며 갑론을박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보다 먼저 대량의 원유 발견·시추에 성공하며 ‘대박’을 맞은 국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0년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나라, 가이아나다.
성공률 16% 기적…개발도상국 도약 준비하는 가이아나
가이아나는 본래 농업에 의존하던 남미의 최빈국이었다. 지난 2016년 국내총생산(GDP)가 42.8억원(약 5조900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 2008년부터 가이아나 인근 해역에서 석유 탐사를 이어오던 엑손모빌이 2015년 5월 ‘리자 광구’를 발견하면서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이후 2017년 파야라, 2019·20·21년에 각각 옐로테일·우아루·휩테일 광구가 발견됐다. 리자 광구는 2019년부터 본격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나머지 광구들은 올해부터 오는 2027년까지 차례대로 가동 예정이다. 총 110억배럴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이는 최빈국 가이아나의 GDP를 단숨에 개발도상국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리자 2차 프로젝트가 가동된 2022년 가이아나의 GDP는 153.6억달러로, 석유 발견 시점인 2016년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1인당GDP 역시 2016년 5500달러에서 2022년 1만8900달러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유럽 국가인 루마니아는 1만5800달러, 그리스 2만달러 수준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세다.
심지어 지난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과 미국 사우디 증산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마이너스을 기록했을 때에도 가이아나의 경제 성장률은 43.5%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가이아나의 경제가 2028년까지 연평균 2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원유가 가져오는 경제적 이득은 상당하다. 한국은 가이아나의 경제력 차이가 큰 만큼, 가이아나와 같은 GDP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다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연평균 96.4%에 달하는 에너지 빈국에서 탈출해 에너지 자립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은 뜻깊다. 지난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수입액의 23%를 에너지가 차지했다. 약 203조원 규모다.
관련 전방산업의 공급망 안정도 기대할 수 있다. 연이은 중동 정세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등락을 반복하자, 정유·석화 등 주요 수요처들의 실적도 매번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정유 4사는 지난 1분기 정제마진 강세로 호실적을 거둔 바 있지만, 2분기 들어선 유가 하락에 따른 정유마진 약세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정적 원유 공급처는 국제 정세에 따른 산업계의 충격에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지난 70년대 오일쇼크에 시달려본 바 있는 대한민국으로선, 영일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건은 성공 가능성이다. 이러한 청사진은 모두 ‘개발이 성공했을 때’ 실현가능하다. 영일만의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대표는 “유전 개발 가능성은 20%”라며 실패 확률이 더 크다고 말했다.
가이아나의 도약을 견인한 ‘리자 프로젝트’는 성공확률이 불과 16%에 불과했지만 성공했다. 아브레우 대표는 “영일만과 리자 지역은 비슷한 트랩구조(석유층에 탄화수소를 쌓이게 하는 지질학적 구조)를 보였다”며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이아나 인근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 여러 산유국이 산재한 유망지역인 반면, 영일만은 인근에 동해 가스전 하나만 존재하는 상황이라 가능성이 더 유망성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지난 2007년부터 시추해본 영일만 인근 주작, 홍게, 방어 시추공에서 끝내 탄화수소가 발견되지 않은 점도 불안요소다. 호주 최대 석유회사 우드사이드가 조광권을 계약 체결 후 탐사를 이어오다 2022년 철수하기도 했다. 결국 영일만도 직접 시추공을 뚫어 탄화수소 누적을 확인해야만 한다는 게 아브레우 대표의 설명이다.
한편 정부는 이르면 12월부터 시추에 들어갈 예정이다. 시추공은 총 5개를 뚫는다. 개당 최소 1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투입된다.
환경과 국익 사이, 신규 해상 유전 개발 프로젝트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엔 항상 환경 파괴 문제가 뒤따른다. 오랜 시간 최빈국으로 머물다가 근래 들어 겨우 성장을 시작한 가이아나마저도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한민국 역시 개발 단계에서 수많은 내외부적 의문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해상유전은 늘 유출사고 가능성과 함께한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 맥시코만에서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이 폭발하며 87일간 490만배럴이 해상에 유출되기도 했다.
탄소 배출과 국익 사이에서 가치판단이 갈리기도 한다. 영국 BBC는 지난 3월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을 인터뷰하며 “가이아나의 석유 개발로 탄소 배출이 가속화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알리 대통령은 “가이아나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만큼의 숲이 있으며, 산업혁명 이후 환경을 파괴해 온 선진국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유전 개발로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권리”라고 반박했다.
가이아나 내부에서도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존재했다.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시추 주관사 엑손모빌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가이아나 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국가 성장 기회 앞에 부통령까지 나서 해당 판결을 비판하는 등 여론이 개발로 쏠리는 분위기다.
환경 시비는 가이아나뿐 아니다. 학술지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에 올라온 ‘탄소 폭탄 - 주요 화석 연료 프로젝트 매핑’ 논문은 현재 세계 각지에서 추진 중인 화석연료 신규 프로젝트 425건만으로도 기후 마지노선 ‘1.5도’ 달성에 필요한 탄소 예산을 2배 이상 초과한다고 지적한다.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각국에서도 신규 개발을 점차 중단하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시추로 인한 지진 가능성이 제기되며 지난 4월 자국내 가스전에서 시추를 영구 중단했다. 노르웨이는 그린피스 등 기후단체와의 소송전 끝에 신규 해저 유전 및 가스전 개발이 무산되기도 했다. 환경단체들은 영일만 역시 해상 환경파괴와 탄소배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내 비영리 기후단체 플랜 1.5는 정부의 영일만 발표 직후 즉각 성명을 내며 “140억배럴을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약 47억7750만톤이 배출된다”며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해야 하는 시점에서 역행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저무는 석유 시대…영일만의 수익성은?
가이아나와 달리 영일만은 에너지 전환에 따른 화석연료의 실질적 수익 감소도 고려해야만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석유 및 가스 산업의 넷제로 전환 특별 보고서’를 발표하며 글로벌 석유 수요는 2022년 하루 9650만배럴에서 2050년에는 하루 2400만배럴로 75%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가스 수요도 마찬가지로 75% 가량 줄어들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무탄소 대체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신하며 탄소중립을 이끄리란 전망이다.
IEA는 석유 가격도 자연스레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22년 배럴당 평균 98달러를 기록한 후 2050년에는 25달러까지 내려오며 74% 떨어지리라 예측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40억배럴의 가치를 삼선전자 시총의 5배로 추산한 것은 현재 가치 기준”이라며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을 고려하면 다소 낙관적인 추정치”라고 말했다.
IMF 등이 가이아나의 경제성장률을 높게 평가하며 수익성 청사진을 제시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시선이다. 수익 반영 시기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가이아나는 2019년부터 본격적인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에너지 전환이 예고된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국제 원유 수요는 늘고 있기에 수익이 보장된 셈이다. IEA 역시 원유 소비는 당분간 꾸준히 증가하다 2025년 정점에 도달한 후, 2026년부터 감소세로 전환하리라고 예측한 바 있다. 반면 영일만의 상업개발 예상 시기는 2035년이다. 이미 석유 수요가 꺾인 이후부터 수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석유의 수요와 수익성은 보장된 상태라고 보고 있다. 에너지 전환 시대임에도 글로벌 대형 석유회사들이 연이은 ‘메가딜’을 성사시키며 신규 석유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엑손모빌 파이오니어를 약 80조원에 인수한 데 이어, 쉐브론 역시 헤스를 70조원에 인수했다. 쉐브론은 이후 엑손모빌에 이어 가이아나 광구 운영에 뛰어들어 생산량을 13% 확대했다.
하나증권은 석유 메이저들의 메가딜에 대해 “글로벌 석유회사들은 2030년경 석유 수요 최고점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보고,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기차로 대체 가능한 휘발유 이외의 납사나 항공유 등은 대체품의 연구와 사업성 개발이 아직 미진한 수준이라, 대체재 위협도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국제적인 고금리와 인플레로 인해 신재생에너지의 수익성이 부진하며 에너지 전환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안정적인 신규 공급원 확보 필요성을 자극하고, 신규 유전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덴마크의 대형 해상풍력업체 오스테드는 지난해 11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공급망 불안정을 이유로 미국 뉴저지 2.2GW(기가와트) 풍력발전 프로젝트를 취소한 바 있다.
영일만에서 나오는 원유가 ‘최상품’인 경질유로 예상되는 점도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동해 가스전에서는 소량이지만 경질유가 나왔다. 동해 가스전은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순이익 1조4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영일만 역시 동해 가스전과 같은 지층대로 판단되는 만큼, 개발 비용 대비 경제성이 뛰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현재 대한민국은 미래 50년 에너지 정책 향방을 바꿀 수 있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다. 20%의 성공률은 낮지만, 성공 시 이득은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감가를 감안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주관사의 적격성 논란 등 각종 정쟁에 휘말린 이때, 적법하고 철저한 검증을 걸쳐 ‘제 2의 가이아나’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