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인민재판...'정경유착'이라 딸이 기여했다?"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후폭풍'

1조3800억원 재산 분할 결정 "노태우 비자금으로 성장한 것을 딸의 기여로 볼 수 있는가" 비공개 재판 원칙도 무너져..SK그룹 앞길은?

2024-05-31     최진홍 기자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의 후폭풍이 거세다.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가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가운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위자료와 재산분할도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재판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 SK가 도움을 받아 크게 성장했다는 '정경유착'을 공개적으로 말하면서 이를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 관장의 기여로 책정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정경유착의 실체가 확실하다고 말하기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는데다 그 기여분을 노 관장의 몫으로 책정하는 것은 미묘한 판결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판결로 4대 기업 중 하나인 SK그룹의 경영전략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도 초미의 관심사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 사진=연합뉴스

역대급 이혼 소송
1심 재판부는 2022년 최 회장에게 노 관장을 대상으로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어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단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 후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가액 산정 가능 부분만 해도 219억 이상을 지출하고 가액 산정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며 “혼인 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한 1심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최 회장에 대해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2019년 2월부터는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소송 과정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재판부는 또 최 회장이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의 관계가 시작된 시점은 노 관장과 이혼한 2008년 11월 이전이며 노 관장이 2009년 5월 암에 걸린 원인 중 하나도 이에 따른 정신적 충격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노 관장과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김 이사장과의 공개적 활동을 지속해 마치 유사 배우자 지위에 있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와 같이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지속하며 공식화하는 등 헌법이 보호하는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최 회장이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통해 김희영 이사장의 취직을 지원하고 SK 이노베이션을 움직여 노 관장의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퇴거를 요구한 것도 정신적 고통을 준 행위라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최소 십수년간 이런 태도와 행위를 통해 노 관장의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현저히 침해했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고의적 유책행위로 노 관장에게 발생한 손해배상은 이뤄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개인민재판인가

2심 판결이 나온 후  노 관장 대리인 김기정 변호사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 주의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해주신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며 "무엇보다 거짓말이 난무했던 사건이었는데 실체적 진실을 밝히느라 애써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커지고 있다. 특히 재판부가 비공개 가사 재판의 원칙을 무시한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재판부가 다툼의 여지가 있는 현안에 대해 확정적이고 공개적으로 거론했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2심 판결 후 최 회장 변호인단은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노 관장 측의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하나하나 공개했다"면서 "단 하나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향적으로 판단한 것은 심각한 사실인정의 법리 오류이며, 비공개 가사재판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경유착 단언한 재판부..."논란 더 키워"

재판부가 정경유착을 통해 SK가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논의가 나오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마치 정경유착이 사실인 것처럼 확정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노소영 관장이 노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서 노태우 정부와 SK의 정경유착 논란이 불거졌던 것은 사실이다. 1992년 SK가 대한텔레콤을 통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을 때도 이른바 '특혜 몰아주기'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최태원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을 맡고 있을때라 이러한 비판은 더욱 컸다. 그러나 당시 SK는 정경유착 비판이 거세지자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도로 반납했고, 1994년이 되어서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통신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최근 HBM으로 주가를 올리는 SK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SK는 오히려 인수합병으로 몸을 키운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 외에도 정경유착으로 SK가 성장했다는 것은 아직 '카더라' 수준에 머물러 있다. 비록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기는 했으나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은 1988년 결혼할 때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유연애결혼이라 밝히기도 했다.

한편 재판 과정에서 노 관장 변호인단이 언급한 6공(共) 비자금도 논란이다. 1990년대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343억원이 고 최종현 전 회장과 최태원 회장에게 전달됐으며 그 자금으로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대한텔레콤을 매입했다는 주장이다.

정경유착의 증거라는 것이 노 관장 변호인단의 논리다.

그러나 이 역시 확인된 사안이 아니며 아직은 추측의 영역이라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일각에서 '6공 비자금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직접 회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야냥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 회장 변호인단도 "6공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면서 "오히려, SK는 당시 사돈이었던 6공의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하였고, 노 관장 측에도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해왔다"고 말했다.

정경유착이라 노 관장이 기여? "앞뒤 맞지 않아"

정경유착에 대한 이견의 여지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과 노 관장 변호인단의 주장대로 만약 정경유착이 사실이라고 해도, 노 관장이 그 기여분을 가져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재판부는 정경유착을 비판하면서 그 정경유착의 결과물을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 관장의 기여분으로 인정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정한 배경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정경유착이 부정한 것이라면 그에 따른 기여도에 있어 노 관장의 몫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에게 범죄수익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재판부가 처음부터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듯 그간 편향적이고 독단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는 최 회장 변호인단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다.
 
공은 대법원에...소버린 사태 재연 막아야 

재판부의 2심 판결이 나온 가운데 SK그룹의 미래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당장 1조3808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하려면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7.73%를 가진 SK 지분을 매각하면 2조원이 넘는 현금을 쥘 수 있으나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29.4%의 SK실트론과 3.21%의 SK케미칼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유의 '사촌경영'을 통해 무난한 전략을 펼치는 방안도 거론되며, 이 참에 후계구도를 짜기 위한 로드맵이 그려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최 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2003년 사상 초유의 소버린 사태가 다시 반복될 경우 한국경제에도 돌이킬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법원 판결에 SK는 물론 모든 재계의 시선이 집중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