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파업의사 처벌은커녕 뒤에서 달래기 급급”[ER초대석]

송기민 한양대학교 디지털의료융합학과 교수 인터뷰 정부 유례 없는 '의료사고 특례법'으로 의사책임 경감 추진 “필수 의료 수가, 지금처럼 낮아야 국민에 유리”

2024-03-12     이혜진 기자

“응급실을 운영하는 많은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을 받아주지 않아 실제로 병원 관계자가 아닌 저한테까지 많은 사람들이 ‘어떤 병원을 가야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은 의료진에게 물어야지 왜 교수인 제게 묻느냐’고 해도 응급실이 정상 운영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소연한다.”

송기민 한양대학교 디지털의료융합학과 교수는 지난 7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이탈로 응급실에 온 중환자들이 응급 처치만 받고 수술 등 후속 치료를 못 받아 응급실과 중환자실, 이 병원과 저 병원을 뺑뺑이 도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송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사례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전국 종합병원 등에 12일까지 ‘회송 전담 병원(종합 병원으로부터 경증 환자를 이송받아 진료하는 곳)’ 신청 의향을 물어 100곳을 지정하기로 했다.

송 교수는 현재 질병관리청의 예방접종피해보상전문위원회에서 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예방접종 분야뿐만 아니라 국민이 의료 기관으로부터 당하는 피해에 관심이 많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 일부.

송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Q. ‘의대 증원 갈등’에서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의료계를 상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답변: 정부가 지난달 말 의사가 책임·종합보험에 가입하면 의료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을 줄여주는 내용의 ‘의료 사고 처리 특례법’ 초안을 발표하며, 이들의 파업에 대해 제대로 처벌하긴커녕 실제로는 달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부가 다른 분야를 대상으로 갈등을 푸는 방식과 비교해 공정하지 않다.

Q. 방금 전 발언은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라 보인다. 의대 증원 갈등 이슈에서 윤석열 정부가 역대 정부보다 더 강경한 노선을 펴고 있다는 의견이 많고  이것이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린다는 말까지 있는데.

답변: 현 정부에 특정해 말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의료계와의 갈등에서 결국 지기만 했단 점을 말한 거다.

Q. 그러면 역대 정부를 통틀어 윤석열 정부와 다른 정권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보나.

답변: 다른 정부보다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맞다. 하지만 아직 갈등이 끝나지 않은데다 그동안 정부와 의사의 갈등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지기만 했으니 벌써부터 성공적이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 문재인 정부가 의사들을 상대로 세게 나간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라는 대형 악재가 생겨 결국 그냥 졌다. 현 정부도 세게 나가는 듯하지만 언젠가 문재인 정부처럼 타협할 수도 있다.

“의사 달래기용 특례법, 다른 나라엔 없어…수가 올려도 소아과 의사 안 가”

Q. 아까 의대 증원 갈등과 관련해 정부가 최근 꺼낸 의료 사고 처리 특례법이 불공정하다고 하셨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답변: 세계적으로 놓고 봐도 의사의 의료 사고에 대해 특례를 둬 책임을 줄여주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Q. 많은 의사들이 의료 사고에 대한 책임을 줄여달라고 할 뿐 아니라, 현행 ‘행위별 수가(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이 의료 행위를 할 때마다 주는 돈)제’에서 가격을 올리지 않고 의사를 더 늘리면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가 정부 관계자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법을 추진해 국민들에게 욕을 먹기에 앞서 수가를 올려 의사를 달래는 것부터 했을 텐데.

답변: 말씀하신 대로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힘들고 보상은 낮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가 너무 낮아 지금보다 대폭 올려 의사를 잡아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거 정부가 흉부외과와 산부인과의 수가를 올린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나. 그래도 의사들의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현상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들이 한국의 수가가 너무 낮다고 강조하는데, 핵심은 한국에선 그 가격에 진료 행위를 무제한으로 곱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별 수가제 때문에 우리가 과로에 시달린다’는 게 의사들의 오랜 논리지만, 사실 누가 등 떠민 적도 없는데 자신들이 돈을 많이 벌려고 자초한 것 아닌가. 이렇게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고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진료 행위를 많이 하면 환자 입장에서야 비교적 낮은 가격에 의사들을 자주 볼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 의료의 양과 질이 모두 성장하는 셈이다.

Q. 한국처럼 일본도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 서비스들이 ‘급여 부문’으로 분류돼 그 가격이 수가라는 이름으로 고정돼 있다. 진료 수가는 일본도 정부가 정하는데 이와 관련해 2022년에 수가를 개정했더라. 이렇게 놓고 보면 ‘다른 나라도 수가를 바꿨으니 한국도 그래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지.

답변: 수가를 올려 성공한 나라가 거의 없다. 말씀하신 일본도 한국처럼 지역간 의료 격차와 진료 공백의 문제를 겪었다. 그런데 정책의 핵심은 수가 인상이 아닌 취약지에서 근무할 의사인력 양성을 위한 자치의대 설립에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취약지에서 9년 동안 일해야 하는데, 의무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약 68%의 높은 정착률을 보였다. 특정 진료과목과 지역 의사 편중 해소를 위해 지역정원제도도 시행했는데 이 또한 87.6%의 높은 정착률을 기록했다.

사진=김연정 객원 기자

“정부, 12월 일본에 ‘자치의대’ 관련 질의…전월엔 특례법 협의체 꾸려”

Q. 바꿔 말하면 일종의 ‘할당제’인가.

답변: 그렇다고 보면 된다. 의대생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장학금을 받는 대신 취약지에 할당되는 제도니까.

Q.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많이 따라해왔는데 이 분야에선 예외인가.

답변: 안 그래도 보건복지부가 일본 정부에 이 문제에 대해 물어봤던 것으로 안다.

Q. 최근의 일인가.

답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2월인가 일본에 간 것으로 안다. 일본에서 자치의대의성공 사례를 정부 관계자들에게 보여주며 ‘우린 문제를 이렇게 극복했으니 한국도 이러는 게 좋겠다’는 식의 의견이 담긴 자료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보냈다고 들었다. 그런데 정부가 자치의대를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을 들고 나오지 않았나.

Q. 의사 증원 갈등 문제가 워낙 크고 장기화돼 특례법에 대해선 모르는 국민이 훨씬 많을 듯 하다.

답변: 정부가 과거에 이 법의 추진을 사실상 감춰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감췄냐면 의료 사고 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관련 협의체를 만든 게 시작이었다.

Q. 언제 그런 협의체를 꾸렸나.

작년 11월부터 협의체를 운영했는데 이를 바로 공개적으로 알린 게 아니라 아마 올해 1월쯤에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기억한다. 제가 그 협의체에 처음부터 실제로 참여해서 안다.

Q.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나.

답변: 첫 회의에서 제가 ‘정부에서 의대 정원 늘려주면 의사들이 반발할 것 같으니 지금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을 추진하려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정부 관계자가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 그런데 이 말을 믿고 싶어도 회의에서 얘기가 진행되는 걸 보니 논의의 방점을 특례법 추진으로 계속 몰아갔다.

Q. 지난달 말 보건복지부가 특례법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법무부 차관도 참석했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지금 시점에선 당시처럼 의대 증원에 대한 보상책을 숨길 필요 없이 공청회라는 공개적인 행사를 통해 절차적인 단계를 거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어 보인다. 이 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인 건 알겠는데 이렇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단계까지 온 마당에 어떤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보나.

답변: 의사의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책임을 피해자와 유족에게 떠넘기는 건 법이 시행되도 그대로니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Q. 다시 의대 증원 갈등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의사를 늘리거나 자치의대 같은 국립 의대를 신설하면 의대생과 교직원에 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그 이상의 세금 부담이 생겨 ‘혈세 의대’가 될 거라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전문가가 보기에 사실인가.

“현재 의사들 평균 급여가 2억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3~4억원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계산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의대생이 2000명 더 늘어났을 때 이런 평균 급여에 곱하기 2000을 하면 사회적인 추가 발생 비용이 나오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만약 비용이 늘더라도 2001년 대비 2018년 의료인의 공급이 65%만 늘었는데 그럼 비용이 늘어나니 의대생을 증원해선 안 되는 걸까.”

Q. ‘65% 증가’라는 수치만 놓고 보면 두 연도의 시점 차이가 큰 점을 감안해도 의대생이 꽤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의료 수요량을 측정해보면 같은 기간 95%가 늘었다고 나온다. 쉽게말해 95%에서 65%를 뺀 값인 30%포인트(p)만큼 의사가 공급되지 않았단 소리다.”

Q. 맞는 수치인진 모르겠지만 아까 언급된 ‘의사 평균 연봉 4억원’이 이런 수급 불균형과 가장 관련이 커 보인다.

“그렇다. 실제로 의사 공급 부족으로 인해 의사들의 급여가 도시 근로자 평균 대비 3.5배에서 6.8배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OECD, 지난해 말 기준).”

Q. 결국 이번 의대 증원 논란의 핵심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밥그릇 싸움’인가.

“맞다. 몇몇 전공의들이 솔직히 얘기하기론 ‘내가 어떻게 해서 의대에 들어왔는데 그렇게 인원을 늘리면 밥그릇이 줄어드니 내가 열심히 들어온 이유가 없어지지 않느냐’다. 특례법이야 말로 불공정인데 이들은 나라에서 필요한 정원을 늘리는 걸 두고 열심히 공부한만큼 보상받지 못하니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본인이 환자의 곁을 떠나서 환자가 죽든 말든 그건 ‘아 몰라’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 웃기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