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한국경제의 새해 화두 '운외창천'

2024-01-02     임혁 기자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 넷플릭스 서비스로 ‘VIVANT’라는 일본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일본의 비밀정보기관 요원이 국제 테러 단체를 수사하는, 꽤 복잡한 플롯의 드라마다. 2회분에 발칸이라는 가상 국가 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주인공을 포함함 주요 인물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치듯 지나가는 화면 속에 ‘운외창천’(雲外蒼天)이라는 글씨가 쓰인 액자가 눈에 꽂혔다.

운외창천은 “구름을 벗어나면 푸른 하늘이 있다”는 뜻이다. 어려움을 견뎌내면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주 송년호의 Editor’s Letter에서 소개한 영어 속담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과 일맥상통한다. 

각설하고, 운외창천은 새해 한국경제의 화두로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5.8%가 2024년의 사자성어로 운외창천을 꼽기도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중소기업계가 그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 중소기업들만이 아니다. 재벌 그룹과 대기업 역시 2024년을 맞는 분위기에 비상한 위기감이 감돈다. 지난 연말 재계에서는 임원 승진 감축, 상여금 삭감 등의 소식이 이어졌다.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한국 경제가 이같은 먹구름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연말연시에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2024년 전망에 비친 한국 경제의 기상도는 여전히 먹구름 속이다.

일례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한국은행은 2.1%로 내다봤고 기획재정부는 2.4%로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은 2.2% 성장을 전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전망도 마찬가지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8개 IB의 2024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2.1%였다.

종합하면 결국 한국 경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2% 초반의 저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는 1950년대 전쟁 혼란기 이후로는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위기 상황에서만 체험했던 현상이다. 이를 두고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같은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우리 경제가 회복 탄력성을 상실해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예측은 예측일 뿐이기 때문이다. 현자들이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며 내놓은 예언이 현실과 어긋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대표적 사례가 1997년 세계경제포럼(WEF)이다. 매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글로벌 정치 경제의 거물들이 모여 세계경제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1997년 행사에서는 경제가 가장 활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나라로 대한민국이 꼽혔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그해 12월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1997년 1월의 낙관적 전망이 현실에서 빗나간 것처럼 2024년 벽두의 비관적 전망도 얼마든지 현실에서 달라질 수 있다. 새해 한국 경제의 화두로 운외창천 네 글자를 추천하는 이유다. 비관적 전망에 매몰돼 무기력증에 빠지지 말고 희망차게 새해를 출발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경제에는 펀더멘탈(fundamental)보다 멘탈(mental)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에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