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봇' 선언한 연준...한은, '카드' 줄었다[편집국에서]
미국, 유럽, 러시아 등 30여개국이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이른바 '중앙은행 슈퍼위크' 기간 동안 부각된 주된 골자는 경기침체 우려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멕시코, 페루, 필리핀, 대만 등 모두 합해 세계 경제 60%를 차지하는 국가들의 기준금리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중앙은행 슈퍼위크'는 내년 전세계 금리 방향성 및 경제전망을 가늠해 볼 수 있고 이에 세계 금융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수년간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벌여온 대다수 중앙은행들은 이젠 금리인하에 대한 시장의 과도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를 우려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시장에 균형 있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하는 분위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예상을 깨고 강한 비둘기적 발언을 했다. 경기둔화가 시작됐다는 점, 금리 인하 시기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공식화 한 것이다. 아울러 연준은 점도표 상에서 내년 금리를 3회 인하할 것을 시사했다. 월가의 일부 투자은행(IB) 전망치보다 인하 횟수가 더 많다.
파월 의장이 매파적 스탠스에서 강한 비둘기로 돌아온 배경은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예상치에 부합하며 둔화세를 이어간 반면 지역은행 파산, 부동산침체, 장단기 금리역전에 이어 그간 고금리에도 견조한 흐름을 유지해 온 소비마저 약화되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긴축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에 더해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리스크까지 확대되면 파월 의장이 마주하게 될 금리 인하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점도표대로 연준이 내년 3차례 금리를 내리면 내년말 예상금리 중간값은 4.6%로, 한국(3.5%)과의 금리 역전폭은 기존 2%P보다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그럼 한미간 금리 역전폭이 줄어들게 되니까 안도할 상황이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과거 수년간 금리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큰 요소가 물가였다면 앞으로는 환율에 무게 중심을 둬야할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2월 FOMC 직후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개장과 동시 23.9원이나 급락하며 원화 강세를 예고했다.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병이후 세계 주요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은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서라도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서였고 소위 환율전쟁을 벌여서라도 각국은 무역수지를 개선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그간 미국만큼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리진 못했지만, 우리나라 역시 점차 금리 인하 시점을 고민할 시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내수 위축으로 경기 진통이 계속되는 등 경기 침체 우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현재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2%P나 낮은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금리인하를 한다해도 그 여력이 크지도 않다. 고금리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부담 및 부동산 문제 등의 이유로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리와 재정당국과 금융당국의 구조적 해결 및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도 금리인상에는 미온적이었다. 언젠가부터는 이 총재가 매파적 발언을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그의 발언을 믿지 않는 분위기마저 감지됐다.
전세계 주요국이 금리 인상속도를 높이는 동안, 우리나라는 금리인상도 구조조정도 참 어중간한게 되버린 상태다. 통화정책의 딜레마를 넘어 금융감독정책의 잠식 우려마저 포함된 '금융 트라일레마'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이 부동산PF 대출 부실화 문제를 시장의 원칙에 따라 정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작 이 총재가 구조조정을 강조할 때 감독당국은 오히려 정상화에 방점을 두는 모습이었지만, 세계적 피봇(금리정책전환)에 직면하면서 기조를 빠른 속도로 바꾼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슈퍼위크를 지켜보며 세계적 금리정책 변화 속에 통화, 재정, 금융당국의 엇박자가 우려스럽다. 지금까지 엇박자였더라도 금리 인하기에 상대적으로 인하 여력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더욱 우려가 크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일단 이론상으로만 염두하는게 낫겠다. 거시건전성 정책 협의체를 제도화하는 등 중앙은행과 금융당국간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총재도 이미 강조한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