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원 벌자고 사기 친 공인중개사…한국은 왜 전세사기에 관대할까” [북앤북]

‘전세지옥’ 최지수 지음, 세종 펴냄.

2023-11-18     이혜진 기자

지난해를 전후로 주택 유형을 가리지 않는 전세 사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른바 ‘빌라 왕 사태’ 등이다. 

사기꾼들이 악랄한 작전을 짰고 여기에 주로 청년들이 희생됐다. 하지만 사기꾼들을 처벌하긴커녕 사건의 전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전세지옥>은 전세 사기가 어떻게 발생했고 피해자들은 왜 사기에 휘말렸는지 말하는 ‘르포르타주(reportage·기록 문학)’다. 한국 사회가 전세 사기를 예견하거나 피해를 구제하는 데 얼마나 서툰지 보여주는 고발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임대차 계약 당시 사고가 나면 공인중개사가 책임을 지고 배상한다는 ‘부동산 공제증서’를 받고 안심했다. 하지만 증서에 적힌 보증한도액 1억원은 저자에게 한 빌라를 소개한 중개사무소에서 담당한 연간 거래 전체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었다.

책에서 저자는 “당시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5000만원 이하 계약이니 5800만원으로 계약한 난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중개사무소) 사장은 마치 최우선변제금 17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열변을 토했다.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뭘까. 하지만 무료법률상담을 받아보니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건 공인중개사의 과실이 아니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또 “내가 낸 중개수수료가 29만원인데, 그 돈을 벌자고 공인중개사의 기본 덕목인 위험 안내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장은 내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내 인생이 나락으로 간 것과 상관없이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사기꾼들에게 관대할까”라고 썼다. 

저자에게 집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면허가 없는 영업인에 불과했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중개사무소에서 근무하고 매물을 소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2금융권에서 받은 근저당(계속적인 거래관계로부터 생기는 불특정 다수의 장래 채권을 결산기에 일정한 한도액까지 담보하는 저당권) 대출 33억 원을 안고 있던 빌라를 취업준비생인 저자에게 권했던 그 사람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며 계약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집주인과의 만남을 주선하지 않은 채 계약서를 제시했다.

전세자금 중 단 한 푼도 되돌려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건물 주인이 가진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낙찰금액으로 금융사의 근저당을 우선 갚고 입주를 빨리 한 순서대로 배당에 대한 우선순위가 생기는데, 저자는 입주한 시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늦었기 때문이다. 

전세자금을 빌리기 위해 받은 대출금 4640만원은 더 큰 금액의 빚으로 불어났다. 연 이자율 10%가 넘는 카드론 3300만원을 받아 전세자금대출을 갚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는 약 300만원에 달한다. 

이를 갚기 위해 저자는 헝가리의 한 기업을 퇴사해야 했다.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연인과의 관계도 끝이 났다. 저자는 “나는 빚쟁이가 됐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청년들처럼 결혼은 물론 연애까지 포기하기로 했다”고 썼다.

이후 저자는 자신이 한국에서 살던 빌라의 다른 입주자들과 건물주, 중개사무소 사장을 고소했다. 고소를 한다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우선변제금도 못 받게 되자 관할 경찰서에 형사 사건으로 소장을 접수해야 했다.

저자가 포기했던 것은 결혼과 연애뿐만이 아니다. 삶까지 포기할 뻔했다. 저자는 “실제로 옥상 난간에 올라간 적도 있다. 다만 그날 이후로는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홧김에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았으니까. 죽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라고 고백했다.

수 개월 전에는 지방에 소재한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살아갈 힘이 없지만 차마 죽지도 못해 살고 있다”며 “내 가슴에 생긴 구멍은 어떻게 메워야 할지, 돈이 술술 새는 통장은 어디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극단적 선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고도 말했다. 저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인터뷰의 절반 정도는 거의 오열 속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다만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해서 꿈마저 포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전세 사기 피해를 완전히 극복하는 순간은 돈을 온전히 돌려받는 날이 아니라, 조종사 훈련을 시작하는 첫날일 것이다. 이 책도 비로소 그 때 완성될 것이다.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저자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관련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피스텔과 원룸, 생활형 숙박시설을 다수 보유한 사람과 이들 건물의 대출 문제를 국회에서 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두 채만 가져도 다주택자가 돼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된다. 그런데 현행법상 이들 주택은 수백 채를 가져도 가산되는 세금이 없다. 집이 아무리 많아도 그 중 한 채만 보증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제도가 시정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투기꾼들은 은행 돈으로 자신들의 배만 불릴 것이고 평범한 세입자들은 계속해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며 “빌라, 오피스텔 다주택자에게도 반드시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해야 한다. 또한 다주택자들에 대한 대출 한도도 법적으로 규정해, 만약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세입자들이 경제적 살인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조처에도 최근 피해자 주택의 경매 입찰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조처가 특정 지역에만 실시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인천 건축왕 전세 사기 사건’ 관련 아파트·빌라의 경매 중지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 사기 피해자 2479세대 중 은행권과 상호금융권 등에서 갖고 있는 대출분에 대해 경매를 유예하는 조처가 내려졌다.

저자는 “전세 사기 피해자는 전국 곳곳에 있는데 정부의 시선은 인천까지만 닿나 보다”라며 “왜 내가 사는 지역은 경매가 중단되지 않았을까. 인천 미추홀구처럼 우리 건물에서도 누구 한 명이 죽어야 경매가 중지되는 것일까”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