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재계판 ‘징비록’을 기대하며 -한경협 출범에 부쳐[특별기고]

권오용 전경련 동우회 회장 특별기고

2023-08-23     임혁 편집인
권오용 전경련 동우회 회장

전경련 기획본부장으로 재직 시 오피니언 리더, 주로 언론계와 학계를 대상으로 전경련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극명했다. 조사 대상자의 절반 정도는 전경련이 시장경제의 본산으로서 그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창의와 혁신의 원동력으로서 우리 경제에 계속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나머지 절반 정도는 극단적으로 전경련 해체까지 주장했다. 예의 정경유착에서 부의 대물림까지 전경련 때문에 시장이 왜곡되고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고 했다.

예견했던 바였지만 이 상반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새 회장의 몫이 됐다. 전경련의 새 수장이 된 최종현 회장은 이를 자율개혁이라 명명하고 재계 차원의 대대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때만 해도 민주화가 됐다지만 권력은 정부였다. 개혁은 전경련이 자율적으로 할테니 창의와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은 정부가 없애달라고 했다.

전경련은 개혁 중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대 중소기업 협력을 꼽았다. 우선 중소기업중앙회의 정기총회에 회장이 직접 참석했다. 그리고 양 단체 회장단 차원에서의 상시 협의기구를 제안했다. 중소기업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대기업이 참여해 문제를 풀어가자고 했다. 무엇보다도 금융 부분이 시급했다. 정부나 금융기관의 개입없이 중소기업의 금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협 파이낸스가 설립됐다. 중소기업 전담 금융회사로 출자는 전경련이 모두 했다. 중소기업 스스로 시장의 변화를 읽을 수 있게 중소기업연구원의 설립도 이뤄졌다. 인력의 양성을 위해서 중소기업 연수원도 설립했다. 연수원 건립은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이 스스로 떠맡겠다고 했다.

전경련 차원의 성의 있는 대책이 나오자, 중소기업계가 반색했다. 지방 중소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순회 간담회를 전경련과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양 단체 회장이 참석했음은 물론이다. 중소기업 중앙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파트너라고 했다. 직선제로 선출되는 중소기업 회장은 대기업 욕을 해야 당선에 유리한데 오히려 거꾸로가 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소기업회장이 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의 시장은 왜곡돼 있었다ㆍ좋아진 대중소기업 관계를 반영, 전경련 회원사들도 납품 대금 지급, 기술 탈취 등 대기업이 욕을 먹는 분야는 스스로 고쳐갔다. 전경련 회장단 차원의 선제적 행동이 회원사 실무자들의 생각까지 바꿨다.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가 생겼다.

정치권의 반응도 조사했다. 전경련은 대기업 오너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오해였다. 전경련의 수많은 실무위원회는 오너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전경련은 항상 대기업 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보면 외국기업과의 역차별, 중소기업이 중소기업으로 그대로 머무르는 피터팬 증후군, 만난 적도 없는 사돈의 팔촌까지 묶어 규제하는 특수관계인 제도 등을 고치자는 것이었다. 규제를 혁파해 국민경제의 파이를 키우자는 얘기가 재벌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됐다. 그래서 아예 대기업 규제를 30대 기업에서 5대 기업으로 축소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30대 기업 중 5대 기업은 자산이나 매출 등에서 거의 3분의 2에 이르렀다. 규제의 효과는 살리되 부작용은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5대 기업으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래도 회장단은 이를 해냈다. 그러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바빠졌다. 그대로 30대 기업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여론은 매서운 비판을 쏟아냈다. 재벌의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공정위의 집단이기주의라는 표현도 나왔다. 신문만 펴면 보이던 대기업 비판이 누그러지고 사라졌다. 그만큼 전경련의 행동에는 용기가 있었다.

정부를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김우중 회장은 전경련에 와서 문민정부 첫해만이라도 무역수지를 흑자로 만들자고 했다. 그래야 정부의 자신감이 생기고 위기 극복의 불씨가 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전경련에 종합상사 사장단을 모아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이 직접 참석해 회장단의 결의를 전했다. 그러자 그해 우리나라는 국제수지 흑자를 이뤘다. 국제통화기금(IMF) 시절 국제수지 500억 달러 흑자 실현을 주장한 것도 전경련이었다. 500억이라는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국민적 자신감의 상징이었으며 정치가 잃어버렸던 경제주권을 기업이 되찾아 오겠다는 결의의 표명이었다. 위기 극복은 전경련의 눈이 세계를 향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경련의 저력은 경제 분야에서가 아니라 사회, 국제적 분야에서 더욱 돋보였다. 질병과 가난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래서 돈이 없어 아픈 몸을 치료받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기업 의료 보험제도는 전경련의 주장으로 우리나라에 도입이 됐으며 이는 오늘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K-건강보험의 근간이 됐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해 만들어진 것이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였고 전경련이 설립을 주도했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사회가 누리게 되면서 우리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라는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역대 전경련 회장

전경련 회장을 10년간 역임했던 정주영 회장은 자신의 재임 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서울올림픽 유치를 꼽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IOC 위원조차 회의적이었던 지구촌 최대축제를 우리 나라에 유치한 정 회장은 전경련이 아니었으면 못 해냈을거라고 술회했다. 그만큼 전경련이 구축한 민간경협 채널은 다양했고 요긴할 때마다 우리 나라에 큰 도움을 줬다. 한일월드컵, 여수엑스포, 평창올림픽 등도 모두 전경련의 압도적 지지를 확인한 연후에나 출사표가 던져질 수 있었다. 해외 토픽감이었던 미국 대사관 앞 노숙 풍경을 없앤 것도 전경련이었다.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한미비자면제협정을 성사시킨 것은 전경련이 아닌 국민의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재계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전경련의 이 모든 빛나는 순간은 국정농단 사태로 모두 묻히고 말았다. 사회의 쇄신을 주도했던 전경련이 적폐로 몰려 존폐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새로 출범한 전경련 제39대 류진 회장은 이러한 과제의 해결을 취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후손답게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재계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를 기대해 본다.

차제에 취임 100일 동안 전경련의 모든 직원이 500여 모든 회원사를 방문해 새 회장에 대한 기대와 역할을 조사해 보면 어떨까? 그러고 보니 외부를 대상으로 전경련에 대한 기대를 조사는 했어도 정작 회의 주인인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는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경련과 회원사는 당연히 한 몸이겠거니 했겠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회원사간 반목이 생기고 재계가 구열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경협으로의 출범과 함께 모든 회원사의 의사를 반영한 새로운 전경련 상(像)을 정립하고 이를 '국가의 미래'라는 가치에 맞춰 풀어낸다면 재계와 국민의 일체감이 형성되고 우리 경제에 또 다른 자신감의 원천이 될 것으로 보인다. 류진 회장의 13대 선조인 류성룡 선생이 집필한 ‘징비록’의 21세기 재계판이 나오는 셈이다.

과거 전경련회관의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중앙 회전문은 한국경제 도약의 상징이었다. 1961년 설립 당시의 명칭과 초심으로 돌아간 전경련이 새 수장을 맞아 다시 한번 우리 경제의 견인차로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약력
1955년생,고려대 졸업
1980 전경련입사,국제경제실장, 기획홍보본부장등 역임
2004 SK그룹 사장등 역임
2013 효성그룹 고문 
현재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