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따른 ‘거주지 분리’ 심해졌다…집값‧청약 경쟁률도 양극화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 거주지 분리 탓

2023-08-17     이혜진 기자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서로 사는 지역이 달라지는 ‘거주지 분리’가 심해지고 있다. 특히 부자들의 거주지가 갈수록 폐쇄적으로 분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연구원은 전국 평균 거주지 분리지수가 2017년 0.013에서 2021년 0.015로 올랐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2021년 기준으로 거주지 분리지수가 가장 높은 권역은 광역시(0.019)였다. 이어 수도권(0.018)과 비수도권(0.013) 순이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한 부동산사무소 앞에 아파트 매물을 안내하는 홍보물이 붙어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이 기간 시‧군‧구 평균 근로소득 지니계수(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하락(0.514→0.470)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지수가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국토연구원 측은 “2009년 이래 소득불평등 수준이 개선됐음에도 소득 수준에 따른 공간 분리 정도는 되레 심해졌다”며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 거주지의 분리가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대도시는 고소득층 중심의 ‘게이티드 커뮤니티(외부인의 유입을 막은 단지)’가 도시경관‧공공 서비스를 배타적으로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문제”라며 “도시 내 자연경관이나 공공이 제공하는 기반시설 등 누구나 누려야 할 도시 요소를 공공성을 우선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주지 분리 지수 변화. 자료=국토연구원

서울 청약 경쟁률은 79 대 1...수도권·지방 일부 단지는 ‘미달’

지역별 양극화 현상은 청약 시장에서도 확연해지고 있다. 17일 청약홈에 따르면 전날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래미안 라그란데’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79 대 1의 평균 경쟁률, 84㎡C(약 25평) 타입에서 194.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면 충남에서 2차분을 분양 중인 ‘북천안 자이 포레스트’는 0.23 대 1에 그쳤다(2일 기준). 인천 미추홀구에 분양하고 있는 ‘포레나 인천 학익’은 0.34 대 1이었다(9일 기준).

집값에서도 지역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1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강서’ 아파트 전용 면적 77.74㎡(약 24평)는 2014년 2월 신고가 2억5200만 원보다 115.7% 급등한 5억5000만원에 지난 7일 거래됐다.

강동구 성내동 ‘비앤비’ 전용 66.39㎡(약 20평)는 앞서 4일 6억3000만원에 팔려 2009년 3억1200만원의 신고가 거래에서 2배 넘게 올랐다. 중랑구 묵동 ‘고덕골든빌(101동)’ 95.31㎡(약 29평)는 2016년 신고가(4억1500만원)보다 95.2% 오른 8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노원구 공릉동 ‘서경하누리’ 60.68㎡(약 18평)는 4억4000만원으로 2015년 2억3500만원의 신고가보다 87.2% 뛰었다.

반면 경기도에서는 아파트값이 내림세를 보인 곳이 많다. 하남시 망월동 ‘미사강변도시 16단지’ 59.67㎡는 지난 5월(6억8000만원) 신저가보다 29.0% 하락한 4억8300만원에 팔렸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안양광신프로그레스리버뷰’ 59.04㎡는 지난해 신저가 5억9000만원 대비 28.8% 빠진 4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시흥시 신천동 ‘청담예가’ 48.05㎡(약 15평)는 작년 신저가 2억4500만원과 비교해 22.4% 내려간 1억9000만원에 매매가 성사됐다.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지축역 중흥S-클래스북한산파크뷰’ 84.98㎡(약 26평)는 2021년 신저가 10억원에서 21.0% 떨어진 7억9000만원에 팔렸다.

지난 13일 오후 충북 청주 오송역 일대에 신축 아파트들이 위치해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지방 인구의 서울 유입 추세, 양극화 더 심화시킬 것”

지방에선 특히 부산에서 아파트값이 신저가를 갱신한 곳이 많다. 지난 한 달 간 전국에서 신저가를 새로 쓴 단지 상위 50곳 중 6곳이 이 지역에 있다. 부산 금정구 부곡동 ‘엘스퀘어’ 59.27㎡가 2017년 신저가 2억580만원과 비교해 27.1% 줄어든 1억5000만원에 지난 3일 거래된 게 대표적이다. ‘개금미네스트’와 ‘어반힐즈’ 등도 직전 신저가보다 20% 이상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과거 집값 급등에 따른 거품이 아직 덜 꺼진 상황에서 수요자가 더 경쟁력 있는 지역의 부동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장은 “집값은 주택 경기가 호황이었던 지난 2021년에 버블(거품)이 생긴 뒤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을 맞아 30% 정도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일부 상급지에서 다시 소폭 오른 상태”라며 “그래서 여전히 집값에 대한 고평가 논란이 있고 데드 캣 바운스(dead cat bounce·죽은 고양이가 튀어 오르듯 하락 국면에서 잠시 회복)처럼 집값이 일시적으로 오른 상태인데, 돈이 많은 수요자라면 어딜 선택하겠느냐. 결국 경쟁력이 있는 서울, 그 중에서도 상급지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돈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지방에서라도 집을 사고 싶어도 최근 집값의 낙폭보다 과거 오름폭이 훨씬 커 이조차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지방 인구가 서울로 유입되는 추세도 이런 격차를 벌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