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H 전관 업체 모두 53곳…‘붕괴 아파트’ 감리 맡은 회사가 또 감리
47개 건축 사무소에 포진…6개 건설사도 들어가
철근을 빼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들의 설계와 감리를 LH 출신 ‘전관(前官) 업체’들이 맡은 것으로 밝혀져 부실시공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LH 퇴직자들이 다니는 전관 업체가 지난 2020년말 기준 53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드러난 단지들이 최소 3~4년 전 LH가 발주해 시공한 곳임을 감안하면 이 업체들 중 6개 건설사(동부‧코오롱‧우미‧계룡‧극동‧신동아)를 제외한 건축사 사무소에 영입된 전관들이 철근 누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 중 한 업체는 작년에 붕괴 사고가 발생한 광주 아이파크 단지와 4개월 전 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 아파트를 감리했던 회사고 다른 곳은 수 차례에 걸친 부실 감리에도 입찰을 제한받지 않았다.
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총 47곳의 건축 사무소(표 참조)와 6곳의 건설회사에 LH 퇴직자들이 근무중이거나 오랜 기간 대표 혹은 임원을 역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하 근무업체와 근무자 현황은 2020년말 기준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
LH의 경기도 수원당수 단지를 설계한 ‘이어담’과 지난해 1월 붕괴 사고가 일어난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및 지난 4월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인천 검단 아파트의 감리를 맡았던 ‘건축사사무소 광장’ 등이 바로 그런 회사들이다. 이어담은 LH 처장 출신인 엄모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광장은 충남도청이전신도시와 오산세교2지구의 임대아파트 등 다른 공공 사업도 감리했다. 이 회사는 지난 5년 동안 LH에서 총 23건의 감리용역을 따내 428억원을 벌었다. 대표를 포함해 LH에서 과장을 지낸 주모 씨와 부장을 지낸 한모 씨, 고모 씨 등 4명의 전관이 근무 중이다.
광장과 더불어 검단의 주차장을 감리했던 ‘목양종합건축’도 철근이 빠진 LH 단지 세 곳에서 감리를 맡았다. 이 곳엔 LH에서 사업단장을 지낸 허모 씨와 처장을 역임한 이모 씨 등 LH 전직 임직원 약 20명이 재취업해 있다. 지난 5년 간 LH로부터 받은 수주액은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LH가 발주한 사업에서 부실 감리로 2018년부터 4년 동안 6차례에 걸쳐 지적을 받았지만 입찰을 제한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여름 1400채가 입주한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 LH 임대 아파트엔 지하주차장 기둥 12곳의 철근이 누락됐는데 이곳을 설계한 ‘SI그룹’ 회장 박모 씨는 LH에서 공공주택 사업을 총괄하는 이사를 역임했다.
이 단지를 감리한 ‘건원’에선 LH 부사장을 지낸 권모 부회장과 단장을 역임한 민모 씨, 처장을 지낸 권모 씨 3명이 일하고 있다. 공동 감리사인 ‘한빛종합건축’엔 LH에서 팀장을 역임한 황모 대표와 처장 출신인 박모 씨, 이사를 지낸 강모 씨가 근무 중이다.
앞서 4월 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를 설계한 ‘유선엔지니어링’은 같은 달 3일 1100만원 규모의 경기도 양주 회천 복합용지(복합1) 가설계 제작 용역 수의계약을 LH와 맺었다. 이 업체는 LH에서 본부장을 지낸 홍모 씨가 전관으로 들어왔다. 작년엔 98억원 규모 수의계약 두 건에 계약자로 이름이 올라갔다.
154개 기둥 모두 철근이 누락된 경기 양주회천 LH 아파트 담당 설계사(범도시‧유앤피), 감리사(다인)도 전관 기업이다. 3사 중 LH 출신이 가장 많은 곳은 다인으로 경기본부장을 지낸 이모 씨와 부장을 역임한 방모 씨 외에 손모 씨, 정모 씨 등이다.
최근 LH의 설계공모에 선정된 PAC건축(수방사 군부지 개발)과 DA(서울 도심복합사업), 창릉신도시 밑그림을 그린 해안도 LH 퇴직자가 들어앉았다.
압구정 4구역 재건축 설계 입찰에 뛰어든 가람과 토문도 전관 업체다. 그 밖에 유탑엔지니어링건축과 한빛엔지니어링, 해마종합건축, 스탭건축, ANU디자인, KD엔지니어링, 행림, 도심엔지니어링, 선엔지니어링, MAP한터인, 대경, 다솜, 동일, 성현, 에이플러스, 소도, 간송, 포스트원, 아키코드, 시그에이, 디앤비도시, 서종, 원건축, 예인, 삼연, 삼전, 우재, 위더스 등이다.
한편 LH는 전날 오후 공공 아파트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강도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건설 카르텔을 척결하기 위해 부실시공, 설계 감리 업체는 한번 적발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같은 날 당정은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의혹이 제기된 단지를 모두 조사하고 입주자에겐 손해배상, 입주예정자에게는 계약해지권을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