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상반기 결산] 경착륙 우려 해소…역전세·고분양가는 숙제

“미분양 물량, 할인 분양으로 해결 가능”

2023-06-30     이혜진 기자

“(부동산) 연착륙(Soft Landing)을 위해선 규제를 빠른 속도로 풀어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한) 낙하산을 매달아 줘야 한다. 새해엔 아주 속도감 있게 (대출과 같은) 수요 규제를 풀 생각이다. (중략)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도 완화해 줘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일 한 언론사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다음날 정부는 규제지역 해제와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지 대책’을 내놨다. 대출부터 세금 완화, 전매까지 당시 할 수 있는 대책을 다 쏟아부었다.  

정부가 낙하산을 펴자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경착륙 우려는 빠르게 해소됐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취임 1년을 맞아 “부동산 시장 경착륙 우려는 해소된 것으로 본다”고 자평했다.

원 장관이 이 같이 말한 이유는 실제로 지난해 4월부터 계속된 미분양 주택 증가세가 1년여 만에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성 미분양’으로 부르는 준공 후 미분양(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하는 것)은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 매입과 전세사기·역전세(계약만기시 전셋값이 하락하는 현상), 고분양가 등 올 상반기에 논란이 됐던 부동산 이슈를 크게 셋으로 압축해 짚어봤다.

지난 30일 개관한 서울 동대문구의 한 견본주택.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이 단지는 고분양가 논란과는 무관한 곳이다. 사진=이혜진 기자

#1 미분양 아파트 매입 논란

“필요한 곳에 규제를 하니 사업하는 사람들이 규제 없는 곳에 가서 해보려다 미분양이 생겼다.”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3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의 모든 주택사업이 중단되면 서민경제에 치명적 영향이 온다며 ‘미분양발 서민경제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올해도 미분양 사태 등이 겹쳐 국내 경제가 복합불황에 빠져들 수 있단 위기론이 제기됐다. 이에 건설업계에선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사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런 진단이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게 국토부의 의견이다.

지난달 원 장관은 취임 1년을 맞아 “앞으로 3∼4개월 안에 미분양 주택 때문에 주택 시장과 금융기관이 충격을 받고 건설사에 경색이 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분양가를 낮추거나 (미분양 주택을) 등록임대로 전환하는 (건설사의) 자구노력이 우선돼야 미분양이 해소될 수 있다”고 일침했다.  

앞서 1월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울 강북의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한 것을 두고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엔 안 산다”고 꼬집기도 했다.

다만 준공 후 미분양에 대한 경고음은 계속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30일 발표한 ‘5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한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전월(8716채)보다 2.0% 증가한 8892채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 2009년 3월(5만1796채)과 비교해 6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다 업계 요구가 지나치기까지 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분양 문제는 만약 주택 경기가 좋았다면 건설사들이 그대로 돈을 벌었을 사안임을 유념해야 한다”며 “주택 경기가 가장 좋았던 때의 물량 수준이 유지되도록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쉽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주택 시장의 불황만 지나가면 이런 문제는 어찌어찌 잘 넘어갈 것”이라며 “미분양 물량이 계속 안 팔리면 할인 분양을 해서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 덧붙였다.

#2 문제아로 떠오른 전세

원 장관은 ‘미분양발 위기론’을 일축했지만 ‘전세 폐지론’을 쏘아 올렸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전세 사기에 대해 “전세는 수명을 다한 제도”라고 말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논란이 일자 원 장관은 “전세를 폐지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수습했다. 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선 이를 믿지 않고 있다.

전세가 ‘문제아’가 된 이유는 최근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8일까지 10개월간 이뤄진 단속 결과 공식적으로 확인된 전세 사기 피해자는 2996명이다. 피해자들이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많다. 피해 금액은 약 4599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피해 규모를 언급하며 전세 사기가 빗발친 이유에 대해 “전 정부의 반시장적인 정책 때문”이라고 문재인 정부와 야권에 재차 날을 세웠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사태의 주범은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을 강행해 멀쩡하던 전세 시장을 망친 민주당과 정의당”이라며 지난 정부의 정책이 반시장적인 이유가 이 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다른 한편에선 문제는 임대차 3법이 아니라 전셋값과 보증률에 상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맞선다. 금융권에서 세입자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세금의 최대 90%를 빌려줘 이 돈이 집주인의 주택 투기 자금으로 활용된 것이 문제라고 강조한다. 집주인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돈을 반환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 사기보다 부동산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역전세가 꼽힌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에 따르면 전셋값이 떨어져 올 들어 5월까지 전세 계약이 신고된 서울 연립·다세대(빌라) 3건 가운데 1건은 종전 보증금보다 하락한 금액에 거래된 것으로 집계됐다. 아파트뿐 아니라 다른 주택에서도 역전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장준혁 다방 마케팅실장은 “2021년 하반기 전세 거래와 올해 1~5월 전세 가운데 같은 조건에서 발생한 거래를 놓고 비교해도 약 50.7%의 거래에서 전셋값이 떨어졌다”며 “올해 하반기에도 역전세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3 잇따른 고분양가 논란

올해도 도심 속 재개발‧재건축 단지 등에서 고분양가 논란이 계속됐다. 대표적인 곳은 내달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서 분양하는 ‘광명센트럴아이파크’(광명4구역 재개발)다. 이 아파트의 전용 면적 84㎡는 최고 12억7000만원으로 지난달 최고 금액인 10억4000만원대(같은 면적 기준)에 나온 ‘광명자이더샵포레나(광명1구역 재개발)’보다 2억원 가까이 비싸다.

지난달 용인시 기흥구에서 분양된 ‘e편한세상 용인역 플랫폼시티’는 전용 84㎡가 최고 12억3000만원대였다. 동일한 면적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영등포자이디그니티(양평12구역 재개발)’는 지난 2월 최고 11억7900만원에 나왔다.

일부 단지에서 분양가가 높게 나타난 원인은 이들 사업지의 상당수가 주택 호황기 때 덤핑으로 수주한 사업지여서다. 최근 기준으로는 앞서 1월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분양가상한제(분상제)가 폐지된 것도, 재개발·재건축 조합 측에서 추가 부담금을 줄이려고 일반분양가를 높이는 것도 원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배짱 분양가’때문에 많은 무주택자들이 청약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며 “이는 미분양 증가와 같은 소비자의 반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