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잘 모르는 일본 ‘괴물 기업’ 키엔스 [주태산 서평]

‘부가가치 전략’으로 평균 영업익 50% 이상 - 평균 연봉 2억 원 이상

2023-06-24     주태산 주필

 

<부가가치> 다지리 노조무 지음, 정지영 옮김, 또다른우주 펴냄.

요즘 활황을 맞고 있는 일본 증시에서 눈길 끄는 기업이 있다. 시가총액 선두그룹 도요타, 소니, NTT 등 익숙한 이름들 사이에서 ‘키엔스(Keyence)’라는 생소한 회사가 소니와 2, 3위를 다투고 있는 것이다.

키엔스는 스마트팩토리를 선도하는 IT 기업이다. 공장자동화(FA)용 센서와 계측기 등 생산 현장의 생산성·품질 향상을 위한 기기의 제조∙판매를 주업으로 한다.

키엔스는 이미 2010년대 포브스 선정 ‘세계 100대 혁신기업’으로 주목받은 바 있고, 올해 초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번스타인’이 급성장하는 제조업 AI 분야 최고 수혜주로 꼽기도 했다. 다만, B2B 기업이라 일본 내에서도 소비자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키엔스는 1972년 기술고교 졸업장이 전부인 타키자키 타케미츠 현 명예회장(滝崎武光, 78세)이 효고현 아마가사키에서 창업했다. 처음에는 ‘리드 전기’였다가 1986년 본사를 오사카로 이전하면서 ‘Key of Science’에서 유래한 키엔스로 개명했다.

 

◇ ‘부가가치 극대화’가 성공 비법

타키자키 타케미츠는 “최소의 자본과 사람으로 최대의 부가가치를 올린다”는 경영이념을 갖고 있다. 그는 ‘부가가치 극대화’라는 경영이념을 상품 기획과 개발, 생산, 마케팅, 세일즈, 관리 운영 등 조직 전반에 구현함으로써 제조업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실적을 올리고 있다.

키엔스는 제조업체인데도 매년 영업이익률이 50%를 넘긴다. 사원 1인당 영업이익도 10억 원 이상이다. 사원들의 평균 연봉은 2억 원(10년 평균 엔화 환율 기준)이 넘었고, 입사 2년차 연봉도 평균 1억 원을 웃돈다고 한다. 타키자키 타케미츠도 2021년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서 일본 최고 부자로 등극했다.

프리랜서든, 대기업이든, 모든 사업체는 일정 가치를 지닌 재료를 구매하고(비용=원가), 여기에 가치를 덧붙여(부가가치) 시장에 내다판다. 비즈니스의 성패는 원가를 넘어서는 부가가치를 어떻게 얼마나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비용(원가) 절감 그리고 가격 인상이다. 대다수 기업은 비용 절감에 몰두한다.

하지만 키엔스의 경우 비용이 동일한 상태에서도 가격을 높여 부가가치를 높인다. 그런데도 판매량이 전혀 줄지 않는다. 키엔스의 제품 70%가 세계 최초, 혹은 업계 최초다. 대다수 제품이 경쟁 상대가 없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원천적으로 가격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가 있다. 물론 고객사들 역시 지금까지 없었던 제품을 통해 큰 이익을 얻는다.

 

◇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지는 않는다?

키엔스는 극단적인 저비용 구조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과 제품생산을 직접 하지 않는다. 키엔스는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매달리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시즈(seeds)를 구해 고객의 니즈(needs)가 확인된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한다. 시즈란 기업의 독자적인 기술력, 기획력, 노하우, 재료나 소재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생산 공장도 없다. 애플처럼 팹리스 방식으로 위탁 생산한다. 세계 최초, 업계 최초라고 말하지만, 키엔스 제품 상당수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기존 기술을 조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다. 키엔스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의 2.5% 정도에 그친다.

키엔스는 “고부가가치는 고객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잠재적인 니즈’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사실, 고객이 알고 있는 ‘현재 니즈’를 충족하는 수준의 상품은 출시 직후 심한 경쟁에 부딪혀 고부가가치를 실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키엔스는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문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용절감, 작업 자체 줄여야 ‘최대 효과’

키엔스는 “같은 이익(부가가치)을 창출하기 위해 들어가는 자본(공장, 설비, 재료)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시간(공정 수, 노동시간)은 적을수록 좋다.”고 지적한다.

부가가치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업무 효율화를 통해 비용 절감을 달성하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부가가치를 만드는 본질적인 영역에만 집중하고 표준화할 수 있는 작업은 모두 외부에서 조달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총무, 영업관리, 인사 등 백오피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령 영업사원이 매일 30분씩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에 시간을 뺏긴다면, 백오피스에서 그 업무를 표준화, 단순화해서 대폭 시간을 단축하거나 아웃소싱함으로써, 고객을 만나 판매하는 본질적인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배분할 수 있다.

인쇄회사에서 부가가치를 낳는 핵심 경쟁력이 인쇄업무가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라면, 인쇄업무를 아웃소싱해서 비용을 낮추고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주력할 수도 있다.

비용 절감은 작업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처음부터 그 작업을 하지 않으면 비용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 

우선 부가가치를 만드는 작업들을 분류한 뒤 작업 시간이 많은 항목부터 차례로 중단할 수 없는지, 좀 더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지, 횟수를 줄일 수 없는지, 자동화할 수 없는지 생각해보고,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실행할 수 있다면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

 

◇판매 대리점 없고, ‘컨설팅 세일즈’로 영업

키엔스는 고객보다 고객을 더 잘 아는 ‘컨설팅 세일즈’라 불리는 영업력으로 유명하다. 키엔스에는 판매 대리점이 없다. 영업사원이 직접 거래처를 관리하며 고객사의 고객사까지 방문한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키엔스에서는 마켓인(market in) 방식으로 신상품을 기획한다. 상품을 기획하는 순간부터 개발한 상품을 판매하는 순간까지 ‘고객은 왜 구매하는가? 정말로 그 상품·기능을 사용하는가? 사용한다면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탐색하고 반영한다.

키엔스의 영업사원은 고객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늘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상품 기획에 반영한다.

신상품을 개발할 때 시장조사와 자사 강점 분석, 경쟁사 분석 같은 통상적인 과정도 당연히 거치지만, 고객을 관찰해서 기획한 제품을 완성하기 전에 다시 거래처들을 찾아가 그 제품이 출시되면 진짜 구매할 것인지 정밀하게 조사한다.

고객이 실제로 사용하는 환경을 관찰하면 고객이 깨닫지 못한 잠재 니즈를 파악해서 먼저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제안하거나 신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상품화할 수 있다.

그런데 거래처에 특화된 맞춤 제품을 만들면 판로가 제한되고 원가가 높아져 거래처에도 부담스러운 가격이 된다. 그래서 키엔스에서는 거래처들의 세부적인 니즈를 샅샅이 조사한 후 최대 공약수의 사양과 기능을 갖춘 표준 제품을 생산한다.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최초, 업계 최초 제품을 만들어 원가를 낮추고 판로를 넓히면 많은 이윤을 붙여도 거래처들에 부담이 적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