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프랑스로 간 이유는 [종횡무진 K-ICT②]
ICT 생태계 강화...유럽과의 연대로 제3지대 목적도
글로벌 빅테크 업계의 핵심은 미국 실리콘밸리다. AI를 비롯해 반도체, 메타버스, 블록체인, 네트워크 등 시대를 선도하는 다양한 기술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해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오롯이 '미국의 힘'으로 축적되는 중이다.
물론 미국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도 있다. 화웨이를 비롯한 강력한 5G 네트워크 강자들이 포진한 상태에서 AI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 전반에 중국의 존재감이 강해지고 있다.
하늘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는 법. 두 ICT 슈퍼파워는 격돌하고 있다. 두 슈퍼파워는 국제외교 및 군사적 가치를 두고 충돌하고 있으나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ICT 기술 영역에서의 신경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패권전쟁의 행간이다.
여기에 세 번째 태양의 지위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 바로 한국이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의 역량이 판을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라 강력한 동맹군이 절실하다. 그 연장선에서 유럽과의 연대가 강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프랑스로!
K-ICT 진영이 유럽 프랑스로 달려가고 있다. 오는 17일까지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리는 '비바 테크놀로지(비바테크) 2023'이 열리는 가운데 다수의 기업들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전망이다.
비바테크는 유럽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이며 말 그대로 유럽 ICT의 미래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비바테크는 한국을 '올해의 국가'로 선정해 적극적인 연대의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올해의 국가'로 선정되면 메인홀 중심부에 전시관이 마련되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프랑스가 활짝 문을 열자 한국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당장 한국 대표 스타트업 45개사는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마련된 'K스타트업 통합관'에서 부스를 운영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도 적극 지원한다. K스타트업관'에 C랩 전시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설명이다. 임직원 대상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 인사이드' 과제 1개와 외부 스타트업 대상 프로그램인 'C랩 아웃사이드'로 육성한 스타트업 4개가 프랑스 ICT 미래로 진격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도 함께한다. 네이버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 4팀이 비바테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웹 기반의 3D 디자인 협업 솔루션이며 3D 엔진을 자체 개발한 기업으로, 비전문가도 간편하게 고품질 3D 에셋을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한 엔닷라이트를 필두로 ‘애드옵스(AdOps)’ 플랫폼을 개발하는 글로벌 애드테크 기업인 아드리엘이 풍운의 일보를 내딛는다.
국내 최초의 크라우드소싱 기반 AI 데이터 플랫폼인 크라우드웍스와 3D 패션 제작 및 시뮬레이션을 제공하는 지이모션도 등판한다.
나아가 KT도 비바테크 한국과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유럽과의 연대
유럽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긴밀한 정보공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ICT 기술적 측면에서는 실리콘밸리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과 정부 차원에서 협력하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유럽인들의 개인정보 등을 활용해 궁극적으로 유럽 ICT 영토를 넘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기류가 강하다.
유럽연합이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월 아일랜드 데이터보호위원회(DPC)의 메타에 대한 과징금 부과로 볼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12억유로(약 1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이는 역대 최고금액이다. 여기에는 데이터 활용에 대한 기본적인 정책 방향은 물론, 유럽을 공략하려는 실리콘밸리 기업에 대한 견제의식이 깔렸다.
유럽연합에서 세계 최초의 AI 규제법 도입이 가시화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주요외신은 유럽의회가 14일(현지시간) 표결을 통해 AI 규제법안 협상을 두고 찬성 499표, 반대 28표, 기권 93표로 가결시켰다고 보도했다. 법에는 AI를 활용한 안면 인식 프로그램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으며 조만간 EU 회원국을 대표하는 이사회와 집행위원회 간 3자 협상(trilogue)을 거쳐 법안이 완성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이 AI 규제와 관련된 발 빠른 행보에 나선 것을 두고 디지털 전환의 큰 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그 이면에는 실리콘밸리 중심으로 발전하는 AI 산업에 대한 유럽연합의 견제구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유럽에 구축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통해 사실상 유럽을 ICT 속국으로 만들 수 있는 공포감 세계 최초의 AI 규제법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미국에서도 AI 규제 논의가 의회를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다만 GDPR(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 침해 방지는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유럽인 데이터 확보에 제동을 걸었던 것처럼, 이번 AI 규제법에도 다양한 함의가 들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유럽은 홀로 미국 실리콘밸리와 대적할 수 없다. 중국 수준의 기초체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시도는 한 적이 있다. 프랑스가 구글에 대항해 검색엔진 분야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려는 정책을 펼친 적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일과 협력해 `나는 찾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콰에로(Quaero)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구글, 야후 등 미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검색엔진 시장에 프랑스와 독일이 대항해야 한다"고 말해 유럽의 자체 검색엔진 개발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다만 콰에로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미디어 서비스 및 장비 회사인 톰슨과 프랑스의 국가 과학연구센터(NSRC)가 팀을 이루고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을 내세운 독일의 팀이 의욕적으로 힘을 합쳤으나 구글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유럽도 동맹군이 필요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연장선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 ICT와의 연대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무엇보다 유럽의 문화권력을 가진, 비영어권 국가인 프랑스가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는 한국 ICT와의 연대에 있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실리콘밸리에 이은 제3지대 ICT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바테크가 '올해의 국가'로 한국을 택한 배경 중 하나다.
한국 ICT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과의 연대를 통해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된 글로벌 빅테크 시장의 '간격'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이버가 인상적인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북미 등 다양한 지역에서도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는 가운데 프랑스를 기점으로 하는 다양한 가능성 타진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AI 벨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대한 연대의 스펙트럼을 키우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한국과 유럽, 특히 프랑스와의 ICT 연대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