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비트코인 동반 랠리...금융위기 전조인가

은행 시스템 불신으로 전통 안전자산과 가상화폐에 돈 몰려

2023-03-21     김경태 기자
국제 금값이 1년만에 다시 온스당 2000달러를 넘어서는 등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부실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는 가운데 금과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어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4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온스당 한 때 2014.90달러를 기록, 지난해 3월 이후 1년 만에 2000달러를 넘기며 올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거래소(KRX)에서는 1kg짜리 금 현물 1g당 가격이 20일 8만3490원을 기록, 2014년 3월 KRX에서 금 거래가 시작된 이후 최고가를 찍었다.

관련업계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은행권 부실이 연이어 도마 위에 오르며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 증가 등으로 금 가격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 역시 20일 한 때 2만8000달러를 넘어서며 올 들어 최고가를 기록했다. 비트코인은 연초 대비 70% 가량 급등한 상태다.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일종의 피난처로 인식해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과 비트코인이 동반 상승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금은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혔고 비트코인은 대표적인 ‘위험자산’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다소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과 비트코인은 코로나19가 발발했던 2020년에도 동반 상승한 적이 있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 쇼크를 벗어나기 위해 경쟁적으로 돈 풀기에 나서자 당시엔 주식 금 비트코인 부동산 등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함께 올랐다.

최근 금과 비트코인 가격의 동반 상승은 은행시스템 불안으로 미국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이 주춤해지거나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은 혼조 내지는 하락세라는 점에서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던 2020년 상황과는 다소 다르다. 더욱이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지난 1년간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데 안간힘을 써왔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자산가격이 올라가던 때와 지금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으로 20일 한 때 2만8000달러를 돌파했다.  출처=연합뉴스

그럼 안전자산인 금과 위험자산인 비트코인 가격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유인은 무엇인가. 이는 최근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은행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은행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과거 사실상 화폐 노릇을 했던 금과 중앙집권적 금융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탄생한 가상 화폐에 새삼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지역은행에 대한 불안이 발생하는 등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림에 따라 뱅크런의 위험이 없는 자산인 비트코인과 금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며 “특히 비트코인의 경우 탄생 배경이 은행시스템과 정부의 금융 개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위험’이라는 측면에서 상반돼 보이는 금과 비트코인이 불안한 은행 시스템에 대한 대안이라는 측면에서는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은행 시스템의 위기는 곧 달러의 위기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SVB가 파산한 것은 보유중인 미 국채 가격의 하락과 고객들의 급격한 예금 인출 요구가 몰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통 털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졌던 미 국채 투자가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미 국채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과 이자를 받는데 문제가 없지만 만기 전 가격은 금리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금리가 급등하면 다른 채권과 마찬가지로 가격은 크게 떨어진다. 코로나 등으로 시중에 너무 많은 돈을 풀었다가 연준이 뒤늦게 기준금리를 급등시켜 국채 가격을 급락시킨 것은 달러를 관리하는 미국 정부와 연준의 능력을 의심케 하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달러의 위기로 볼 수도 있다.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이 보유중인 국채나 모기기채권 등의 미실현 손실은 6200억달러(82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엄청난 뇌관이 여전히 잠재해 있다는 얘기다.

기축통화인 달러가 흔들리니 전통의 안전자산이자 과거 통화 역할을 했던 금과 기존의 통화시스템을 대체 내지 보완하겠다며 탄생한 가상화폐에 돈이 몰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트코인이 강세를 지속하자 낙관론이 잇따르고 있다. 온체인 분석 기업 크립토퀀트는 "비트코인 보유자들의 평균 온체인 수익률 지표인 '미실현순수익'의 60일 이동평균이 365일 이동평균을 넘어서는 골든크로스를 형성했다"며 "비트코인이 강력한 상승 랠리를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3개월 내에 100만달러까지 오른다”(발라지 스리니바산 코인베이스 전 CTO)는 믿기 어려운 전망까지 등장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금이나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는 기분 좋은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는 것은 기존의 금융통화 시스템, 달러 시스템의 위기를 알리는 전조일 수도 있다. 금과 비트코인이 ‘탄광의 카나리아’ 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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