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승용차 업체들 “한국의 전기차 인증절차, 담당자마다 상이”

유럽상의 승용차위원회, 간담회서 소신발언

2022-09-28     최동훈 기자
28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의 규제환경 백서 발간 기념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최동훈 기자

일부 유럽 승용차 업체들이 한국에서 다소 모호하게 이뤄지고 있는 수입 신차 인증절차를 개선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신차의 안전성, 규제 적합성 등을 분석하기 위해 준용하는 규정이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 다른 잣대를 갖다대는 실정을 지목했다.

28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의 2022 규제환경 백서 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지난 2015년부터 매년 산업별 규제를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건의하는 내용을 담은 규제환경 백서를 발간해오고 있다. 올해 백서에는 18개 산업군에서 수렴한 건의사항 96건이 담겼다.

지난 2019년 이후 올해 3년만에 대면 방식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는 승용차, 상용차, 식품 등 산업 분야별 위원회의 일부 위원장들이 참석했다. 각 위원장은 해당 분야의 주요 건의사항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이 중 승용차, 상용차 등 두 분야별 위원회의 대표로 김홍중 위원장(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상무)과 박강석 위원장(볼보트럭코리아 대표)이 참석했다.

유럽상의 승용차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홍중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상무가 발표하는 모습. 사진=최동훈 기자

유럽 승용차업계 “전기차 인증 때마다 히터 온도 다르게 설정”

김홍중 위원장이 이날 각 위원회 대표 중 가장 먼저 건의사항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저공해차·무공해차 보급목표 달성 준비기간 부여, 자동차 인증 심사절차 명확화, 자동차 에너지소비효율 신고절차 개선 등을 주요 건의사항으로 제안했다.

이 중 자동차 제작사에게 부여하는 저공해차·무공해차 보급목표를 최소 도입하기 2년 전에 고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환경부는 매년 해당 연도 1년치나 차기 연도까지 2년치에 달하는 보급목표를 고시하고 있다. 유럽상의 승용차위원회는 이를 매년 3개년치 규모로 고시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각 자동차 제작사들이 보급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물량 확보 계획을 수립하는 등 준비할 기간을 부여해달라는 취지다.

이와 함께 신차를 국내 출시하기 위해 해외에 들여오기 위한 인증절차를 더욱 세부적으로 명문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전기차의 경우 현재 내연기관차를 염두에 두고 구축된 인증 체계로 심사함에 따라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자료를 제출해야하는 등 행정소요가 늘어나는 점을 지목했다. 업체들은 이에 따라 신차 인증절차를 당초 계획보다 길게 진행하는 등 어려움을 종종 겪고 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전기차에 관해 포괄적이고 상세한 인증체계를 별도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정부도 현재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연구·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승용차위원회는 이밖에 각 사가 신차를 출시하기 앞서 당국에 신고하도록 규정된 에너지소비효율(연비) 관련 절차가 사실상 승인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국이 각 업체의 신차별 연비를 검토한 뒤 신고확인서를 발급받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신고확인서가 의무사항으로 읽힐 소지가 존재하는데다 신차 출시 일정이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승용차위원회의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현행 규정에 따르면 자동차 제작사가 당국으로부터 신고확인서를 받은 후에야 수입 차량을 통관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며 “이는 신고제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제도를 정비할 것을 건의한다”고 말했다.

승용차위원회가 건의한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신차 인증 절차 과정에서 담당자의 주관이 개입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의 저온 주행거리를 인증할 때 히터 온도를 매번 다르게 설정해 켜놓은 뒤 주행거리를 측정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각 차량의 주행거리가 공통적인 환경 속에서 분석되지 못할 수 있어 신뢰성을 잃을 수 있다. 신차 인증 관련 서류를 업체에 추가 요청하는 것도 담당자 재량에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절차를 구체적으로 명문화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유럽상의 상용차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강석 볼보트럭코리아 대표(오른쪽)가 규제 개선 건의사항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최동훈 기자

유럽 상용차업계 “차폭 규제 해소위한 3자 기술용역 검토”

승용차위원회에 이어 상용차위원회의 박강석 위원장이 회원사를 대표해 업계 건의사항을 발표했다. 박강석 위원장이 발표한 주요 건의사항 중 하나는 국내 운행차량에 대한 너비(차폭) 규제를 개선하는 점이다.

현행법상 국내 운행되는 차량의 차폭은 2.5미터를 초과할 수 없다. 다만 유럽에서 제작된 특수·일반화물차와 승합차 등의 일부 차종은 유럽 규제치인 2.55미터에 맞춰 설계됐다. 이에 따라 국내 수입 상용차 업체들이 해당 제원의 차량을 들여오지 못하는 난관에 처한 상황이다.

볼보트럭코리아의 경우 이미 지난 2019년부터 유럽 등 주요 시장에 순차 출시한 순수전기트럭을 한국에 들여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용차위원회는 앞서 지난해에도 너비 규제를 유럽 규제 수준으로 완화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너비 규제를 완화했을 때 교통안전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스웨덴 예테보리에 위치한 볼보트럭 익스피리언스 센터에 도열된 볼보 전기트럭들. 사진=최동훈 기자

상용차 위원회는 올해 업계 관련 규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새롭게 검토할 방침이다. 제3자에 기술용역을 맡겨 너비 규제를 유럽 수준으로 완화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분석한 뒤 결과를 정부에 전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강석 위원장은 “앞서 호주가 차폭 변화에 따른 도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임시로 너비 규제를 완화하기도 했다”며 “(한국 정부가) 그런 사례를 참고하고 유럽 등 국제 표준과 한국 기준을 조화시켜 친환경 차량을 국내에 빠르게 도입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검토해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건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각 위원회에는 업계별 일부 업체들이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승용차 위원회에는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르노코리아자동차, BMW그룹코리아, 폭스바겐그룹코리아, 포르쉐코리아, 스텔란티스코리아, 폴스타오토모티브코리아, FMK, 기흥인터내셔널 등 9개사가 참가했다.

상용차위원회에는 볼보트럭코리아를 비롯해 만트럭버스코리아, 다임러트럭코리아, 이베코그룹코리아 등 네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